다음 역, 에덴(51)
-
4화. 불청객
어제와 마찬가지로 용병들은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로샤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방으로 들어와 보고하라 지시했다. 안전 시간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멀지 않은 곳에서 잇따라 총성이 울렸다. 약탈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창가에 서서 칠흑 같은 골목 어귀를 내다봤다. 창문에 비친 카운트다운은 여전히 착실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나]284400, 284399, 284398...[로샤]에덴의 카운트다운을 보고 있나? [나]저 시간이 끝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나요? ...잠깐, 미리 말해두는데, 이건 정식 질문 아니에요! 질문 횟수로 계산하지 말아요. [로샤]구두쇠네, 계산 철저하기는. 나는 퉁명스럽게 콧방귀를 뀌었다. [로샤]좋아, 알려줄게. 저건 에덴의 주인이 에덴으로 ..
2024.07.06 -
3화. 놀이공원
자정이 됐을 쯤, 나는 통신기의 진동에 놀라 눈을 떴다. [Warning]에덴 관리 시스템(MSE): 방랑자가 곧 습격합니다. 어둠 속에서 통신기가 미친 듯이 번쩍이고 있었다. 소파를 확인했지만, 이미 로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 침대에서 뛰어내려 문 앞으로 가자, 문밖에서 지시를 내리는 로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로샤]세 사람은 도로, 너희들은 옥상으로 가고, 나머지는 문 앞을 지 키도록. 잠시 뒤, 그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한 마디 말을 당부했다. [로샤]그것들이 내 집을 망가뜨리지 못하게 해. 그럼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거든.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하고 문만 살짝 열어보았다. [로샤]잘 잤나? [나]방금 통신기를 봤는데... '방랑자'가..
2024.07.06 -
2화. 수집가
겁에 질린 세 사람을 보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나]시간이 없어서요. 이제 지나가도 될까요? 그들은 아무 말 없이 허등지등 일어나, 눈 깜짝할 사이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들을 물리치고 나자 조금 진정이 되었다. 움직임만 신중히 한다면 이곳에서도 내 한 몸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다. 짝짝짝. 해 질 녘의 공기를 가르고 맑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나]또 누구야?!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바로 앞 골목에서 로샤가 팔짱을 낀 채 여유로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눈을 마추친 그는 휘파람을 불었다. [로샤]멋진걸. 데이트를 방해하는 녀석들은 저런 꼴을 당해도 싸단 말이지. 나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나]언제 온 거..
2024.07.06 -
1화. 핑계
두 사람은 내 선택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카이로스를 따라가든, 아인의 레지스탕스에 합류하든, 결국 다른 한 쪽에게는 미안해지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로샤가 보낸 문자에 도리어 안심이 되었다. 나는 통신기에 떠오른 내용을 확인했다. 오늘 밤, 저녁 어때? 이 문자를 보니, 이 초조한 상황 속에서도 겨우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결심이 선 나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유감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죄송해요, 여러분. 동료가 기다리고 있어서 오래 머무를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들은 생각보다 쉽게 날 놔주었다. 아인은 아무 말도 없었고, 레지스탕스 단원들도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곳을 떠나는 순간, 그 누구도 내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하리 라. [카이로스]조심해. 나는 그에..
2024.07.06 -
6화. 사막의 꽃
나와 예신은 에덴의 문을 나섰다. 난 계속 예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우린 떠나는 열쇠가 바로 '안일한 마음을 버리는 갓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 뒤에 필쳐진 저 에덴은 평온과 안일함, 언제든 머무를 수 있는 작은 세계를 의미했다. 이 작은 세계 안에서 우리는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 없이 서로를 보살폈고, 서로의 눈에는 상대를 제외한 다른 것은 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떠나야만 한다,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모래바다로 걸 어가야 한다. 안일함을 버리고 죽음의 위험을 마주 봐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우린 아득하게 펼쳐진 모래바다로 걸어들어갔다. 그러자 휘몰아치는 모래 바람으로 인해 내 시야가 흐릿해졌다. 우린 걸음을 멈추지 않고, 서로 손을 맞잡은 재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나아갔다. 얼마나 ..
2024.06.27 -
5화. 히아신스
또 어느 평화로운 날이었다. 어느 날, 예신과 함께 에덴을 돌아다녔다. '열쇠'를 찾아보자고 했지만, 누구도 열쇠를 찾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늘이 높고 구름이 엷은 화창한 날이라서, 예신의 손을 잡고 함께하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문득 풀숲에 히아신스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여긴 예신이 처음 에덴에 나타났던 곳이었다. [나]제가 에덴에 막 왔을 때, 여기서 예신을 만났었죠. 그때 예신의 발밑에 이 파란색 히아신스가 피어 있었어요. 예신이 고개를 숙여 발밑에 핀 파란색 꽃을 내려다봤다. 파란색 히아신스는... '생명'을 상징한다. 예신은 한참 그 꽃을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나]예신? 내가 고개를 들자, 예신은 바이올렛을 닮은 눈동자로 날 바라봤다. 우린 정신 세계..
2024.06.27 -
4화. 에덴
난 그렇게 예신과 함께 에덴에서 지내고 있다. 우린 여전히 '열쇠'를 찾아 다녔지만, 성공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우린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 구경도 하고 피크닉도 하면서 휴일이라고 생각하며 즐기곤 했다. 대부분은 집에 머물렀다. 난 예신을 불러서 함께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함께 디저트나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예신과 함께 있으면 매일이 그렇게 지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령 오늘처럼... 예신은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아서 나와 함께 책과 시집을 공유했다. [예신]"눈 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쉼없이 떨어지는 초침을 난 믿어야했다." [나]"어지러이 읽힌 선과 뒤들린 형상 속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난 확신해야했다." [예신]"차가운 태양과 뜨거운 눈을 난 바라봐야했다." 나는 예신의 ..
2024.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