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7. 19:39ㆍ다음 역, 에덴/안내 (로샤)
어두운 밤, 나는 눈을 떴다. 거대한 방랑자가 내 바로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익숙한 그 눈빛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큰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다.
눈을 떠보니, 로샤가 놀란 나를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
...다행이다. 그냥 꿈이었구나.
에덴 관리 시스템(MSE): 방랑자가 곧 습격합니다. |
나는 긴장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면에 비친 달빛이 은빛으로 번져 있었다. 바람마저 멈춘 새벽의 호수는 유난히도 조용했다. 이상한 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로샤]
아무래도 우리가 장소를 맞게 고른 모양이야.
아주 먼 곳에서 괴물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불빛이 번쩍였다. 블랙 스트릿이 있는 방향이었다. 능력자를 향한 공격은 전날보다도 거세졌다. 하지만 호숫가엔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겨우 숨을 돌리며 자리에 앉으려던 그 때, 눈앞의 호수가 무언가에 의해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내 호수 전체가 크게 출렁이더니...
[나]
...뒤에도 있어요!
사방에서 튀어나온 검은 그림자들이 배를 덮쳐오며 거칠게 하얀 포말을 만들어냈다. 그 그림자가 지척까지 다가오고 나서야 그 괴물들의 모습을 또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첫날 만났던 방랑자들과 달리, 이 괴물들은 물고기처럼 늘씬했으나 하체는 건장했으며, 머리에는 산소마스크처럼 생긴 것까지 달려 있었다. 전혀 조화롭지 않은 신체 부위들이 한데 모여 끔찍하고도 기이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쉬익거리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그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소음을 내고 있었다. 언뜻 들으면 익숙한 단어들이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로샤]
놈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
배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물고기 방랑자들이 아래서부터 배를 들이받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배가 가라앉을지도 몰라!
[나]
로샤, 배 잘 보고 있어요!
더는 지체하지 않고, 곧장 그림 소울을 소환했다.
뭍에 있을 때에 비하면 방랑자의 수는 확연히 적어졌다. 다행히 아직은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전투는 내 예상보다 힘들었다. 난 수상 전투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위해 로샤는 최선을 다해 배를 안정시켰고, 내게 최대한 많은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계속해서 어두운 밤이었지만, 나는 몇 번이고 시간을 확인했다. 째깍째깍 재촉하는 듯 움직이는 시간은 내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곧 밝아올 여명을 기다리며 끈질기게 버텼다.
방랑자들이 하나둘 물 속으로 사라지자, 수면에 잔잔한 물결이 겹겹이 일었다. 동이 트기 전, 희미한 빛이 구름을 뚫고 수면에 닿았다. 하지만 그 빛은 순식간에 어두운 호수에 집어삼켜져 흔적조차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