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스토리-2024/천추도(천년을 건너)(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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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개화하는 땅
민박집은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다. 커튼을 걷자, 어둠 속에 잠긴 산림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자연산소 휴양지' 콘셉트를 살리려는 듯, 방 안에도 화분이 많이 놓여 있었다. 탁자 위에는 다기(茶器)와 티백, 그리고 노란빛이 감도는 금귤 한 접시가 있었다. 나는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그것들을 유심히 살폈다. [알카이드] 로지타, 뭘 찾고 있어? [로지타] 이걸 좀…… 고개를 돌려 알카이드를 본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는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온 듯, 머리가 다 마르지 않아 끝부분이 축축했다. 그가 내게 다가올 때마다, 촉촉하고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로지타] ……탁자에 가격표가 있나 찾아보고 있었어요. 이 금귤이 민박집에서 제공하는 무료 과일인지 아닌지 궁금해서요. ..
2025.03.24 -
4화. 정확한 알림&길은 언제나 조심히 보기!
지도를 열어 길 안내를 확인하는데, 화면 상단의 알림 창에 푸시 메시지가 떴다. [로지타] 맥주 생선을 많이 먹으면 음주 운전으로 판정될까요…… [알카이드] 확률은 낮지만, 그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 두리안이나 리치 같은 음식도 가짜 양성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 걱정된다면 여기서 좀 더 걸으며 소화도 시킬 겸 시간을 보내도 돼. 알카이드와 나란히 거리를 걸었다. 저녁노을이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로지타]방금 맥주 생선을 먹고 나자마자 이런 푸시 알림을 보다니, 대체 얼마나 내 생활을 들여다보고 있는 거야, 빅데이터…… 예전에도 그랬어요. 온갖 고양이 용품을 추천해 주는 건 물론이고…… '어떻게 하면 남자친구에게 애교 부릴 수 있을까' '단 한마디로 남자친구..
2025.03.24 -
3화. 전용 서비스
랑카 마을까지 가려면 밤을 새워 하루 종일 운전해야 했다. 운전 경로를 계획한 후, 우리는 첫 번째 목적지로 양성을 선택했다. 오래된 양성의 거리를 걸으며, 나는 오랜 운전으로 뻐근해진 팔다리를 쭉 뻗었다. [로지타] 이게 랜덤 여행의 달콤한 대가일까요? 경치는 정말 아름다운데, 제 몸은 이미 산산조각이 난 것 같아요…… 알카이드는 내 어깨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알카이드] 후후, 자, 너의 전용 서비스에 마사지가 추가되었어. [로지타] 체험해 보니 꽤 괜찮네요. 오늘 밤 마사지 예약할게요. [알카이드] 님, 버튼을 눌러 현재 조작을 확인해 주세요. ……이건 또 무슨 신기한 설정이지? 셀프 서비스 시뮬레이션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찔러 보았다. ..
2025.03.24 -
2화. 랜덤 길안내
3년이 지나면서 ‘캐리어를 끌고 군고구마를 사러 가는’ 일에 더욱 능숙해졌다. 길가에서 군고구마를 다 먹은 후, 나는 알카이드와 함께 페리를 타고 셀레인 섬을 떠났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렌터카 플랫폼에서 예약한 차를 픽업하는 것이었다. [알카이드] ……운전 여행? [로지타] 네, 우리의 상황에 맞춰 초랜덤 여행의 진행 방식을 최적화했어요. 나는 휴대폰을 열어 배에서 만든 전자 룰렛을 알카이드에게 보여주었다. 룰렛의 바늘은 ‘비행기’와 ‘고속철’을 피해 ‘자동차’ 영역에 멈춰 있었다. [로지타] …랜덤으로 교통수단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이에요. 나는 운전석 쪽 문을 거침없이 열고 들어가 핸들을 가볍게 두드렸다. [로지타] 탑승하세요! 알카이드는 얌..
2025.03.24 -
1화. 여행준비
알카이드가 내 옆에 앉자, 엘리샤 선생님의 시선이 우리 사이에 놓인 손을 향했다. 그제야 내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고, 이제야 깨달았다. 연인 사이에는 종종 어떤 서로를 끌어당기는 자기장 같은 효과가 존재한다.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게 되는 것처럼. [엘리샤] 정재한 군은 작년에 올해는 꼭 여자친구를 데리고 집에 가겠다고 장담했었지. 며칠 전에 다시 물어봤더니, 애매하게 얼버무리며 계속 피하더라. 엘리샤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엘리샤] 너희처럼 마음이 통하는 연인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올해는 같이 신성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알카이드는 내 손을 자연스럽게 감싸 쥐고 고개를 저었다. [알카이드] 부모님께서 일찍이 설 연..
2025.03.24 -
프롤로그. 또 한 해
셀레인 섬에 세 번째 눈이 내릴 때, 세인트 셀터 학원의 전공 시험이 끝났고, 모든 겨울 축제 일정도 마무리되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약 40일간의 긴 방학이 다가오면서, 학생들은 새해를 맞아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천문학과 여학생 A] 우리 집은 남서쪽 산악 지대에 있어서, 교수님께서 관측 데이터를 좀 가져가 달라고 하셨어…… [법학과 여학생 B] 우리 지도교수님이 최고야! 그냥 새해엔 잘 먹고 잘 마시고, 아직 출근 안 하는 동안 최대한 세뱃돈을 많이 받으라고 하셨어! 어딘가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렁찬 목소리의 남성] 원예 이발소 20% 할인 행사! 예약 환영합니다! 섣달엔 이사 금지! 정월엔 머리 자르지 않기! 지금이 머리 손질하기 가장 좋은 시기입니..
2025.02.21 -
[SSR] 다시 만난 청산 6화. 참상의 움직임
다시 화정현의 땅을 밟았을 때, 나는 이곳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12년 전, 여기서 화정이라고 불리기 전, 아직 위상이라 불리던 시절…어머니는 나와 함께 송과를 사러 가곤 했던가? 나와 이웃집 아이들이 학당에서 뛰쳐나갔다가 선생님에게 쫓긴 일이 있었던가?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의 기억은 그 해 원절의 큰 불길에 의해, 그를 미궁으로 이끌었던 천기검서와 함께 깨끗이 타버린 듯했다. 하지만 그가 유독 기억하는 것은 불꽃이 피부를 태우던 그 고통, 비단옷을 입고 있던 포식자에게서 느꼈던 청성파의 문장이었고, 무너지는 집 기둥 아래에서 부모님이 그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눈빛이었다… 그는 그 검서가 불에 타기 전에 그의 눈에 새겨진 글자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알카이드는 그 당시의 자신이 ..
2025.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