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스토리-2022/여경서(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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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R] 청구월원 4화. 추락
산꼭대기에서 돌아온 뒤, 나는 줄곧 알카이드를 따라다녔다. 그가 앉으면 나도 앉고, 그가 일어서면 나도 곧장 일어나 따라 나섰다.하지만 밤이 되면 나는 여전히 제시간에 잠들었고, 허벅지를 세게 꼬집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행히도 눈을 뜰 때마다, 항상 그는 내 곁에 있었다. 며칠 전부터 나는 알카이드 몸에 난 상처들을 보게 되었다. 그 상처는 점점 많아지고, 더 눈에 띄게 되었다. 그가 혼자 상처를 처리하면서 내는 낮은 신음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내가 방에 들어서면 그는 곧바로 옷으로 상처를 가리며 내가 보지 못하게 했다. 나는 핑계를 대고 그가 있는 방의 연못 물을 갈겠다고 하며 여러 번 들락날락했는데, 알카이드는 내가 진심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익숙하다는 듯이 은은한 미소..
2025.06.02 -
[SSR] 청구월원 3화. 달을 마시다
겨울 동지가 어느새 다가오고 있었다. 산림은 서리로 덮이고, 멀리 보이는 하늘도 쓸쓸해 보였다. 나는 문득 아득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을에 살던 그 시절로부터 지금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 걸까? 내 시간은 부서진 조각들처럼 이어지지 않았고, 조각들 사이의 균열은 맞물릴 수 없을 정도로 뒤틀려 있었다. 알카이드가 방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창턱에 기대어 멍하니 있었다. [알카이드]무슨 생각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알카이드 손에 든 물건을 받으려 일어섰다. 그런데 오늘은 음식이 아니라 새 옷 한 벌이었다. 놀라며 펼쳐 보니, 그것은 소녀의 옷이었다. [로지타]이거… 제 건가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옷의 무늬를 여기저기 손끝으로 만져보았다.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지만, 내 작..
2025.06.02 -
[SSR] 청구월원 2화. 포획
[로지타]여기는… 당신 집인가요? 나는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이해할 수 없어 알카이드를 쳐다보았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구미호는 지금쯤이면 몰락한 여우일 텐데… 산속에 이런 궁궐 같은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 [알카이드]잘 봐. 이건 백골로 쌓아 올린 궁전이야. 알카이드는 느닷없이 그렇게 말했다. [로지타]…정말인가요? 나는 새하얗고 투명한 벽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만져보려 손을 뻗었지만 어딘가 불안해서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알카이드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알카이드]거짓말이야. 로지타, 너처럼 겁 많은 애가 어떻게 혼자 야생에서 살아남았어?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진지하게 대답했다. [로지타]이런 쪽에서는 제가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제가 당신을 만났을 ..
2025.06.02 -
[SSR] 청구월원 1화. 소문
지금까지도, 나는 그 소년을 처음 보았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는 오랫동안 인적 없는 들판을 혼자 걷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입안에는 형언하기 힘든 쓴맛이 맴돌았고, 코 아래엔 언제나 벌레 같은 무언가가 어른거렸다. 하지만 손을 뻗어 쫓아보면,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마치 본능에만 의지해 살아가는 동물로 퇴화해버린 듯했다. 황야를 떠돌며 먹을 수 있는 것을 찾고 있었고, 눈에 띄는 것들은 무엇이든 입에 넣었다. 파충류, 풀뿌리…… 혀가 뾰족한 가시에 베어도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차 주변 환경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운이 좋게도, 나를 집어삼킬 야수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아마 그들조차, 나 같은 존재는 맛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광막한 ..
2025.06.02 -
5화. 국궁
다음으로 들를 곳은 연병장이었다.. 깃발, 활, 북소리... 여긴 거의 영화 세트장처럼 보이는데? 공터에 있는 체험 프로그램은 활쏘기 체험으로, 전통의상을 입은 관광객들이 과녁 앞에 서서 기대에 차 있었다. [로지타] 출궁은 품에 안긴 달과 같고, 평전은 줄에 매달린 저울과 같네. 루 소장군, 활을 당겨보지 않겠어요? 알카이드의 시선이 맞은편의 과녁에서 내게로 옮겨왔다. [알카이드] 장군의 복장을 했는데, 왜 '소'라고 부르는 거야? [로지타] 음… '소'라고 하면 좀 더 친근하고 귀엽잖아요… 만약 그게 장군이라는 호칭이랑 안 어울린다고 느껴지면… 루 작은 오라버니는 어때요? [알카이드] 음… 우리 누이께서는 장난을 좋아하는 듯 하네. 내 손이 살짝 떨려서 방금 건네받은 전통 활을..
2025.03.28 -
4화. 판다
[로지타] 선배… [알카이드] 음… …사실, 꽤 귀여운데? 나는 손에 든 자수를 보고, 책상 위에 있는 내 도안과 비교했다. 솔직히 말하면,차이가 꽤 컸다. 이것은 숙련된 미술인이라도 금세 자수 장인으로 변신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로지타] ……이런 작품을 보고도 귀엽다고 칭찬하시는 걸 보니, 알카이드 선배가 언젠간 절 버릇없게 만드실 것 같아요. 알카이드는 놀이공원에서 산 탄산음료 한 병을 내밀었다. 나는 탄산음료를 받아 들고, 수놓다 만 실크 천을 알카이드에게 건넸다. [알카이드] 네가 쉬는 동안 내가 이어서 할게. 알카이드는 익숙하게 받아 들고, 나를 대신해 완성해줄 생각인 듯했다. [알카이드] 연극 동아리에서 가끔 의상을 관리하다 보니 바느질을 좀 배웠거든…… ..
2025.03.28 -
3화. 자수 도안
홍보 책자의 소개에 따르면 수예 테마의 소형 전시관이 화선에서 열릴 예정인데, 이는 드문 취재 기회이다. "화선에 발을 들여놓으면, 안에는 별개의 동굴이 있고, 바람이 창살을 뚫고 붉은 커튼을 흔들고, 방울이 달린 커튼이 땡땡 소리를 낸다." 각양각색의 자수품이 여러 개에 질서정연하게 진열되어 있어 관광객들이 감상할 수 있다. [로지타] 이거 봐요, 구름 낀 산천에 작은 다리와 흐르는 물…… 마치 공필화 같아요. 나는 한 폭의 수예작품을 가리켰다. 작품은 꽤 넓었고, 촘촘한 바늘땀이 산맥과 시냇물, 작은 다리 아래 흐르는 경쾌한 배까지 한 땀 한 땀 엮어내고 있었다. [로지타] 여기 것도요, 전부 양면이에요. [알카이드] 이게 전통 수예야. 보통 유명한 화가가 도안을 디자인하고, 자수 장인이..
2025.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