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역, 에덴(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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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동행
알카이드의 정원을 빠져나온 뒤, 나는 로샤에게 물어봤다. [나]알카이드랑 무슨 얘기를 한 거예요? 당신한테 뭘 하라고 한 거죠? 로샤는 대답 없이 조용히 걸어갔다. 나는 그가 얼렁뚱땅 넘기려는 태도에 불만을 느꼈다. 몇 번이고 다시 물어보자, 그는 결국 걸음을 멈췄다. [로샤]안전 시간이 지났어. 계속 떠들면 적들이 눈치챌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나]알카이드가 뭘 하라고 한 건가요? 로샤는 미간을 좁히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쳤지만, 그는 내 뒷통수를 잡고 더는 물러설 수 없게 막았다. [로샤]에덴을 떠나 사막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어. 오늘 밤에 바로. 너도 같이 가자. 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고, 다시는 내 질문에 대..
2025.03.28 -
10화. 뱃지
로샤와 알카이드가 떠난 뒤, 나는 내 고집 때문에 로샤에게 모든 부담이 돌아갔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사람을 구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탓이다. 짧은 순간, 알카이드를 공격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가 에덴에서 얼마나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걸 떠올렸다. 그곳에서 무사히 벗어날 자신이 없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정원이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그 안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느꼈다. - 정신을 차리고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두 사람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알카이드, 당신! 알카이드는 마치 모든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알카이드]당신은 제 생각보다 훨씬 강하군요. 다시 고..
2025.03.28 -
9화. 보상과 교환
걸음을 늦추자, 곧장 내 상태를 눈치챈 로샤 역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그때 분명... 어떤 일이 생겨도 절대 그에게 도움을 구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로샤는 지난번에 분명 그렇게 충고했었다. [로샤]맞아. 지금도 내 생각은 그대로야. 하지만 이 아이를 구하려면, 에덴에선 그 녀석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어. 어떡할 거야? 들어갈 거야, 아니면 이 녀석을 바닥에 내려두고 돌아설 거야? 나라면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하겠지만. 차갑게 말을 내뱉은 로샤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로샤]...빌어먹을. 널 만날 줄 알았다면 에덴에 절대 돌아오지 않았을 거야. 이런 말까지 하다니, 창피해 죽겠군. 마치 지금 일어난 이 모든 일에 무력한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하는 말 같았다. [나]알려줘서 고마워요, 로샤..
2025.03.28 -
8화. 소년
나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방랑자를 물리셨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로샤의 생명도 위험해질 것이다. 마침내 통신기가 빠르게 진동했다. 통신기를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안전 시간이 찾아왔다는 알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패배한 방랑자들은 핏빛 돌로 변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저들은 이제 두 번 다시 빛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호수는 금세 평온을 되찾았고, 전투의 흔적은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 나와 로샤는 여전히 물 위에 떠 있었다. 체력이 손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사라졌다. 물에 떠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쳐, 도저히 배를 향해 갈 수가 없었다. 무게를 분담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좀처럼 손에 잡히..
2025.03.28 -
7화. 만류
공격이 멈췄다. 호수 위엔 더 이상 방랑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한꺼번에 지령이라도 받은 듯, 그들은 일제히 사라졌다. [나]괴물들이 물러난 것 같아요. [로샤]몇 시지? 통신기의 시계는 새벽 4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의아해진 나는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아직 다섯 시가 안 됐는데... 공격 명령이 일찍 끝난 걸까요? 로샤는 내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배 밑을 가리켰다.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배 밑과 수면이 맞닿은 곳을 바라보았다. 파문이 천천히 흩어지고 있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뽀글' 호수 표면에 물방울이 일었다. '뽀글뽀글' 물방울이 또다시 올라왔다. 괴물들이 아직 밑에 모여 있어! 쿵! 배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방랑자들이 의..
2025.03.27 -
6화. 호수의 유령
어두운 밤, 나는 눈을 떴다. 거대한 방랑자가 내 바로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익숙한 그 눈빛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큰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다. 눈을 떠보니, 로샤가 놀란 나를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다행이다. 그냥 꿈이었구나.에덴 관리 시스템(MSE): 방랑자가 곧 습격합니다. 나는 긴장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면에 비친 달빛이 은빛으로 번져 있었다. 바람마저 멈춘 새벽의 호수는 유난히도 조용했다. 이상한 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로샤]아무래도 우리가 장소를 맞게 고른 모양이야.아주 먼 곳에서 괴물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불빛이 번쩍였다. 블랙 스트릿이 있는 방향이었다. 능력자를 향한 공격은 전날보다도 거세졌다. 하지만 호숫가엔 여..
2025.03.27 -
5화. 또 다른 집
시간은 끊임없이 자정을 항해 흐르고 있었다. [로샤]그만 가야 할 것 같아. [나]간다고요? 어디요? [로샤]위치가 발각됐고,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여기에 계속 머무는 건 위험해. 행선지는... 네 말을 빌리자면 내가 소유한 또 다른 '부동산'이야. 로샤의 판단이 옳다. 우리 둘만으론 우리를 노리는 다른 능력자들을 상대할 수 없다. 어젯밤에 상대한 수많은 방랑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어둠이 내려앉은 밤을 틈타 비밀 기지를 떠났다.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로샤는 큰길을 피해 조심스레 움직였다. 빼곡한 총성과 참혹한 비명은 몇 번이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왔지만, 단 한 번도 정면에서 부딪히지 않았다. 소음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나는 우리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졌다는 것을 ..
2025.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