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의 장/용성 편 (아인)(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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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수상한 소년
그래, 그녀와 그는 함께 가면을 쓴 채 꼭두각시를 연기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높은 곳에 앉아 있지만,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며 미소로 마음을 감추고 적 앞에서 무대를 필진다. 아인이 다실에 앉자, 꼭두각시의 껍데기를 쓴 그녀도 그를 따라 옆에 앉았다. [나] 악당 연기를 이렇게나 잘할 줄은 몰랐네요. [아인] 원래는 악당이 아니고? [나] 당연하죠. 소녀는 웃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 옛날에 무대회에서 다들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도, 내가 선배를 찾아냈던 거 기억 나요? [아인] 그때, 네가 그랬었지.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넌 알아볼 수 있다고. [나] 당연하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사람들은 선배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안타깝네요. [아인] 난 오히려 아무도 몰라줬으면 좋겠는데. ..
2024.03.23 -
10화. 분노
얼마 후 기계들은 아인과 꼭두각시 소녀의 손에 섬멸되었다. 그리고... [용성그룹 4구역 책임자] 저, 저게 뭐야... 사람도 기계도 아니잖아... 극심한 두려움에, 자신이 처한 상황도 잊은 모양이었다. [용성그룹 4구역 책임자] 저, 저 얼굴은... 그 배신자...? 괴물... 괴물이다!! [아인] ...그만! 아인은 손을 떨고 있었고, 그에게 구출된 청년은 고맙단 인사만 남긴 채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아인] 네가 감히... 지직. 꼭두각시 소녀가 4구역 책임자의 곁으로 달려가, 그를 전기 충격으로 기절시겼다. 거리에 또다시 침묵이 내려앉았고, 주변에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인] ...... 아인은 상대가 죽을죄를 짓지 않은 이상 손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전에는... '괴물..
2024.03.23 -
9화. 도발
아인과 그녀의 재회 후, 몇 달 뒤. 아인은 그녀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소녀의 자아 데이터가 이식된, 그녀를 똑 닮은 꼭두각시였다. 경호와 통신 수단으로 쓰라고 보낸 것이겠지. [아인] ...... ["나"] 회장님, 4구역에서 기계 에너지 파동을 감지했습니다. 감정 채집장 근처에서 싸움이 난듯합니다. 아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연락할 시간이 없는 모양이다. 이렇게 딱딱한 기계의 보고만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는 걸 보면 경계 밖 손님 녀석들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을 터. 아인은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나"] 4구역에 가볼까요? 아인이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니터에는 전쟁에 패배한 시간이, 그리고 그 옆에는 코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가 떠난 뒤, 검붉은 ..
2024.03.23 -
8화. 재회
과거 소년이 입은 검은색 외투에는 용 한 마리가 조용히 똬리를 들고 있었다. 잠룡물용, 경거망동하지 않고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 아인은 그 말을 잘 알고 있었다. [미래의 나]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아인] 오랜만입니다, 장관님. 소녀의 새로운 모습에, 아인은 작게 동요했다. 생기를 잃어버린 얼굴에 그린 듯한 미소를 띈 재 감정 없이 그를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소녀. 아인은 순간 그녀와 자신에게서 무언가 동시에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성장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죽음을 항해 달리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후자여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이 가면을 쓰면서까지 원한 것은 바로 새로운 삶이 있으니까. [감시자] '회장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간 우리가 만나던 곳은 전쟁터였지만,..
2024.03.23 -
7화. 과거
이 모든 건 언제 시작된 것일까? 1307일 전. 황폐한 그날 아침, 아인은 학생일 때 입던 옷을 입고 지상의 폐허에 왔다. [아인] !!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온 그는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손이 꽁꽁 얼어붙었을 쯤에야, 그는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래의 나] 나 여기 있어요. 아인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얼어붙었던 그의 손이 그녀의 체온으로 녹고 나서야, 그는 천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 [미래의 나] 저 성공했어요. 경계 밖 손님과의 전쟁은 오늘로 끝이에요. [아인] 정말로 담합에 성공한 거야? [미래의 나] 네. 하지만 둘 다 기뻐하는 기색 없이, 침묵에 잠겼다. 아인이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목소리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인] 조건은? [미래의 ..
2024.03.23 -
6화. 배신자
비행선으로 돌아온 아인은 다음 지부로 향했다. 회장은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는 가차없었다. 그러나 그저 살고자 하는 이에게는 특정 화제에서만 냉랭하게 굴뿐, 무심한 척 경계 밖 손님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곳의 아인은 내가 아는 그와 많은 부분이 달랐지만, 닮은 점도 있었다. 그는 마치 두꺼운 가면을 쓴 것처럼 때론 웃거나 고민하고, 위협을 하거나 화를 냈다. 아인 곁에 있는 기계소녀를 보고 있자니, 참 당혹스러웠다. 미래의 나는 나와 닮은 꼭두각시를 아인의 옆에 둔 채, 용의 도시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아인이 경계 밖 손님에게 한 일이나 용성 그룹의 허위 광고... 모든 게 너무나도 이상했다. 대체 왜? - [소녀] 엄마, 나도 저런 등불 가지고 싶어요... 종이 등불은 금방 더러워지고 망가진단 말이..
2024.03.07 -
5화. 감정
[뚱뚱한 중년 남성] 용성 그룹 3구역 지부 보고드립니다. 새로운 장비는 성공적으로 작동 중 입니다! 용성 그룹 지부라는 걸 보니, 이곳의 사장인가 보다. 아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남자는 친화력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띈 채 보고를 이어갔다. [뚱뚱한 중년 남성] 딱 하나 문제가 있는데, 지금 이대로라면 지상의 분들이 요구하는 이번 달 조공 분량은 채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감정의 힘을 이렇게 채집해서는, 점점 수익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용성 그룹이 경계 밖 손님들에게 바치는 것이 감정의 힘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런데 잠깐... 광고에서 분명...'시간 투자'라고 하지 않았나? [뚱뚱한 중년 남성] 게다가 요즘 들어 우리 그룹의 광고가 사기라는 이상한 소문이 도시에 돌고 있습니다..
2024.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