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7. 21:50ㆍ다음 역, 에덴/안내 (로샤)
공격이 멈췄다. 호수 위엔 더 이상 방랑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한꺼번에 지령이라도 받은 듯, 그들은 일제히 사라졌다.
[나]
괴물들이 물러난 것 같아요.
[로샤]
몇 시지?
통신기의 시계는 새벽 4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의아해진 나는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
아직 다섯 시가 안 됐는데... 공격 명령이 일찍 끝난 걸까요?
로샤는 내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배 밑을 가리켰다.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배 밑과 수면이 맞닿은 곳을 바라보았다. 파문이 천천히 흩어지고 있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뽀글'
호수 표면에 물방울이 일었다.
'뽀글뽀글'
물방울이 또다시 올라왔다. 괴물들이 아직 밑에 모여 있어!
쿵!
배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방랑자들이 의도적으로 배를 공격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더 이상 무질서하게 배의 측면으로 부딪혀오지 않았다. 모두 배의 밑바닥을 노리고 있었다.
쿵!!
부딪혀 오는 힘은 점점 더 강해졌다.
쿵!!!
배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면서 뱃머리가 높게 치솟았다. 물에 빠지기 직전, 배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기울며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차가웠다. 차가운 물이 콧속으로 들이겠다. 처음 든 생각은... 사막의 오아시스가 살을 엘 정도로 차갑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두 손이 나를 붙잡고 물 위로 끌어당겼다. 물 밖으로 겨우 머리를 빼낸 나는 허겁지겁 숨을 들이켰다.
[로샤]
겁내지 말고 힘 풀어. 나 여기 있어.
로샤는 곧장 내 곁으로 헤엄쳐 와, 나를 배 위로 밀어주었다.
[로샤]
먼저 올라가!
그는 힘껏 나를 배 위로 밀어주었다. 배에 오른 나는 몸을 돌려 그를 끌어올리려 했다.
[나]
로샤, 손 줘요.
그는 갑자기 나를 항해 미소를 지었다.
[나]
빨리, 손 내밀어요!
로샤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이 그의 손가락에 닿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방랑자의 머리가 물 위로 튀어나왔다. 놈은 지느러미 같은 것을 뻗어 로샤를 단단히 붙잡아 물 아래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
[나]
조심해요, 로샤!!!
뻗어나간 내 손은 허공을 스쳤다. 고작 몇 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재반응할 새도 없이 로샤는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물 속으로 뛰어들었고, 곧장 로샤가 있는 방향을 향해 있는 힘껏 헤엄쳤다.
물은 가슴을 압박해오고, 폐는 욱신욱신 쑤셔 왔다. 하얗게 비어버린 내 머릿속은 오로지 물에 빠지기 직전 로샤가 짧게 지어 보였던 미소로 가득했다. 이곳에선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사라져버렸다. 생명도, 동료도, 심지어는 가장 단순한 즐거움까지도... 하지만 난 그 웃음을 돌려받고 싶었다... 그 웃음을 돌려 받아야만 했다.
그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로샤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힘 없이 감긴 속눈썹 아래로 죽음과도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에게 입을 맞추고 숨을 홀려보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두려움, 슬픔...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터져 나왔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듯 눈이 시큰거렸다. 나는 로샤의 등 뒤로 돌아가 그를 안고 밝은 곳으로 헤엄쳐 갔다.
조금만 더 버티자... 아주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주변에 물결이 세차게 일며 수초들도 함께 빠르게 흔들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수면 아래에서 거대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환청인 줄로 알았던 그것은 방랑자의 울음소리였다. 가늘게 이어지는 그 소리는 노랫소리 같기도 했고, 비명 같기도 했다.
[방랑자]
돌아...가, 바다...로. 바다로... 돌아가. 돌아가... 돌아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의식이 없는 괴물이 아니었나...? 어째서 사람의 말을 하는 거지? 하지만 괴물은 내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이 순간에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비근 것한 열기는 내 뺨을 간질이고 있었고, 그들이 호수를 휘젓는 탓에 주변은 잘 보이지 않았다. 로샤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어서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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