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세르 대륙(完)(117)
-
ED. 맹세
눈이 정말로 그쳤다. 예신은 약속을 지켰다. 얼음 나비는 완전히 모습을 감췄고, 봄이 돌아왔다. - 1년이 지난 밤, 나는 로샤의 손을 잡고 별궁의 정원을 거닐었다. 일음 나비와 눈보라는 어느새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졌다. 얼음 나비가 사라지고 난 뒤, 무슨 일인지 마탑의 마법사들이 시름시름 앓다 죽어갔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었던 카이로스는 죽기 전 마탐을 봉쇄했다. 진실도 마탑과 함께 봉인됐다. [로샤] 눈이 그치고 봄이 왔어. 그대도 내 곁에 있고 말이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밀리 선생님과 엘리스, 카이로스 그리고 떠나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남몰래 괴로워했다. 실버나이트와 눈보라는 이제 사라지고 ..
2024.02.17 -
23화. 사라진 눈보라
그것은 마지막 눈보라였다. 나는 예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나] 당신을 이길 수 없다는 것쯤은 알아요. 하지만, 당신의 발목을 붙잡고 시간을 끄는 정도는 할 수 있겠죠. 이렇게 마주보고 보니 생각보다 당신을 대하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네요. 내가 예신을 상대하는 사이, 로샤와 카이로스는 착실하게 강림 마법진을 발동할 준비를 마쳤다. [나] 제물이 다 모였으니 곧 통로가 열릴 거예요. 성 밖의 사람들은 다른 세계로 전송되겠죠. 나를 겁주고 위협하면 이전처럼 고분고분 당신의 말대로 움직일 줄 알았나요? 천만에. 똑똑히 봐둬요. 나는 죽음을 무릅쓰고 당신을 저지할 거예요.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당신도 나와 같은 능력의 소유자잖아요? 같은 제물 신세가 될 수도 있겠는데요? 예신이 돌연 초조한 기색을 ..
2024.02.17 -
22화. 일생의 행복
내가 황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월계절 아침이 밝은 뒤였다. 강림 의식은 오늘 거행될 것이다. 아인의 말대로, 거리 곳곳은 반란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광경과 마주했다. 실버나이트가 여기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당당하게 앞장서서 반란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다소 혼란스러워 생각을 정리하던 때, 그가 더없이 우아하게 손짓했다.그 순간, 그를 따르고 있던 반란군들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수많은 얼음 나비떼가 일제히 날아들었다. 중앙광장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서 제 부하들을 마지막 한 명까지 도륙해댈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 예신!? 예신을 저지하고자 달려 나갔지만, 그는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검은 안개에 휩싸인 변종..
2024.02.17 -
21화. 선물
백성들을 일일이 설득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폭군의 명 따위는 듣지 않겠다며 강경하게 반발하는 사람들의 고집은 상상 이상이었다. 선황의 적자인 아인이 직접 나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남은 신민들을 모두 태운 마차 행렬은 대규모 병력의 호위를 받으며 무사히 황성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마차에서 내려 아인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나] 일을 다 마쳤으니 나는 이만 돌아갈게요. 행운을 빌어요. [아인] 잠깐. 그 자식에게서 부탁받은 게 있어서 말이지. 황성을 빠져나가면 아까 그걸 열어보게 하라더군. [나] 황성을 빠져나가서... 열어보라고 했다고요? [아인] 그래. 군말 말고 열기나 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장식품의 정교한 접합부를 비를자, 달각 소리와 함께 백조 모양의 크리스털 조각..
2024.02.17 -
20화. 먹구름
몰려드는 얼음 나비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순간, 흩날리던 눈송이가 공중에서 한데 뭉치더니 얼음 송곳으로 변해, 일시에 땅으로 쏟아졌다. [엘리스] 얘들아, 엎드려! [나] 엘리스...? 엘리스! 엘리스는 바닥에 엎드린 아이들을 제 몸으로 감싼 채 보호하고 있었다. 뾰족한 얼음덩 어리들은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다. [나] 안돼!! 지표면엔 구멍이 생길 정도로, 공격은 막강한 위력을 과시했다. 온통 아수라장이었지만, 유독 내 주변만 멀쩡했다. 모든 공격은 나를 비껴갔다. 예신이 말한 대로였다. 나는 한달음에 엘리스에게로 갔다. 그를 구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제발 늦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엘리스는 이미 피투성이였다. 공포에 질린 아이들은 도망쳐버렸고, 나는 엘리스의 몸을 끌어안고서 가만히 그의 이름..
2024.02.17 -
19화. 밀리의 부탁
이른 아침, 빈민가에 얼음 나비가 밀집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지원에 나섰다. 과연, 엉망이었다. 나는 서둘러 그림 소울을 소환해 전투를 준비했다. [불안한 엄마] 아가! 어서 이리 와! 그쪽엔 얼음 나비가 있어! [겁먹은 소년] 엄마, 무서워요! 으앙...! 안 돼, 이러다 당하겠어! 서둘러야 해! 아이의 엄마는 앞뒤 재지도 않고서 곧장 달려가 소년을 낚아챘다. 그러곤 온몸으로 아이를 감싸 안아 보호했다. 얼음 나비는 곧장 그들에게 달려들었지만, 공격 양상이 이전과는 달랐다. 그것들은 음산한 보랏빛을 띄고 있었고, 냉기도 발산하지 않았다. 변종인가? 일단 처리하자! - 상황을 정리한 뒤, 나는 모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아이 엄마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오한과 발열,..
2024.02.12 -
18화. 3일의 재앙
카이로스는 작정을 한 듯했다. 고위 마법사들을 포함해 마탑의 마법사들을 대거 동원해 퇴로를 완벽히 차단해버렸다. 그들은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어내 강한 마력으로 예신을 결박했다! 예신의 움직임이 차단된 순간을 틈타, 로사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찰나, 시간이 멈춘 듯했다. 로샤의 검은 예신의 몸을 그대로 관통했다. 막상 그 모습을 직접 보자 머릿속이 하얗게 바랬다. 로샤가 기회를 잡은 건 잘된 일이지만, 아무리 적이라 해도 예신이 다치는 것을 보니 가습이 아팠다.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지르다 얼른 입을 들어막아버렸다. 예신은 그런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예신] 네 표정을 보니 일부러 당해준 보람이 있네. 평범한 인간의 무기로 나를 해칠 수는 없...? 갑자기 예신의 표정이 변했다. 고통스러운 ..
2024.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