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밀리의 부탁

2024. 2. 12. 23:05에르세르 대륙(完)/아이리스의 장 (로샤)

 

 이른 아침, 빈민가에 얼음 나비가 밀집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지원에 나섰다. 과연, 엉망이었다. 나는 서둘러 그림 소울을 소환해 전투를 준비했다. 

 

[불안한 엄마]

아가! 어서 이리 와! 그쪽엔 얼음 나비가 있어! 

 

[겁먹은 소년]

엄마, 무서워요! 으앙...! 

 

안 돼, 이러다 당하겠어! 서둘러야 해! 아이의 엄마는 앞뒤 재지도 않고서 곧장 달려가 소년을 낚아챘다. 그러곤 온몸으로 아이를 감싸 안아 보호했다. 얼음 나비는 곧장 그들에게 달려들었지만, 공격 양상이 이전과는 달랐다. 그것들은 음산한 보랏빛을 띄고 있었고, 냉기도 발산하지 않았다. 변종인가? 일단 처리하자! 

 

-

 

 상황을 정리한 뒤, 나는 모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아이 엄마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오한과 발열, 심한 호흡곤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발병과 진행... 로샤가 이야기했던, 전형적인 역병의 증상이었다. 

 나는 보랏빛 얼음 나비가 날아왔던 골목 어귀로 달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몸을 덜덜 떨고 숨을 몰아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변종 나비가 몰고 온 역병이 틀림없다. 한파에다 역병까지... 과거의 일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사흘 뒤, 황성은 제2의 스나이트 성이 될 거다."

 

예신은 더없이 잔인한 방법으로 로샤를, 그리고 모두를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황궁으로 돌아갔다. 우연히 알카이드와 마주쳤다. 변종 얼음 나비에 대한 정보를 들은 그는 예상치 못했던 소식을 내게 전했다. 

 

[알카이드]

실은... 그 변종 나비가 폐하의 침전에도 침투했습니다. 다행히 폐하께서는 무사하시지만, 수행원 한 명이 당했습니다. 가망이 없는 모양이더군요. 폐하께서 무적 상심하셨습니다. 

 

알카이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 나는 황제 침전으로 뛰어들었다. 밀리는 장백한 안색으로 로사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로샤는 그녀의 곁을 지카고 있었다. 로샤는 그녀의 손을 잡고서 토닥이며 계속해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로샤]

선생님, 괜찮으실 겁니다. 곧 눈이 그치면 다 괜찮아질 거예요. 

 

그가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밀리는 오한으로 덜덜 떨면서도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밀리]

그럼요... 도련님을 믿...어요. 곧 다 괜찮아...질 거예요, 반드...시. 

 

밀리는 나를 보더니 손짓했다. 

 

[밀리]

도련님... 잠시... 아가씨와 이야기를 좀... 

 

로샤는 밀리의 손을 내게 쥐여주며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로샤]

따뜻하게 해드려. 

 

나는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새겨져 있는 밀리의 손을 살며시 쥐고서 어루만져주었다. 로사는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밀리]

둘이서...만 할 얘기랍니다. 

 

로샤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마침내 침전을 나갔다. 밀리는 자기 가슴 위, 심장께로 내 손을 끌었다. 

 

[밀리]

아가씨... 나는 의사예요. 내가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요. 

 

[나]

......

 

[밀리]

괴로워 말아요. 살 만큼 살았고, 충분히 ...좋은 인생이었어요. 전에 나와 나누었던 이야기... 기억하지요? 도련님에겐 함께할 사람이 필요해요. 가없은 늙은이의... 마지막 소원을 부디... 우리 로샤 도련님을 부탁해요, 아가씨...

 

[나]

선생님, 곧 좋아지실 거예요, 그런 말씀 마세요, 흑!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앞이 보이질 않았다. 

 

[나]

걱정 마세요, 선생님.

 

나는 그녀의 손을 꼬옥 붙잡고서 약속했다. 

 

[나]

적어도 눈이 그칠 때까지는. 로샤 옆에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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