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운기원/경칩 편 (알카이드)(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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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경충
이 공간의 가장 깊은 곳, 오직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나는 조용히 기억 속의 조각들을 뒤적이며, 시간을 거슬러 알카이드가 내게 남긴 메시지를 찾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 모든 것을 나누었고, 서로의 곁에 있었지만, 각자 방주 세계로 들어선 이후로 기억할 수 있는 일들이 극히 적었다.같은 세계에 살면서, 같은 전투를 마주했지만, 시간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내가 경험한 것은 단지... 기억 속에서 날카로운 고통이 밀려왔고, 그로 인해 주위에 떠다니던 빛과 그림자들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앞섶을 꽉 쥐었다. 그 감각은마치 피로 물든 칼날을 쥔 듯했다. 그것을 잡고, 그것을 꽉 쥐고, 그것으로 가장 직면하기 어려운 진실을 헤쳐 나가야 했다.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내가 여기 도달한 첫..
2025.02.18 -
17화. 공간
그 공간에 들어선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이 텅 빈, 고요하고 끝없는 공간 속에서 나는 수많은 희미한 빛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것들은 고정된 형태나 색깔, 위치가 없었고, 그저 무질서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조용해 보이던 그것들이 다음 순간에는 마치 끝없는 생명력이 꿈틀대는 듯했다. 단지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다가가서 만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될 거야.“ 찰나의 순간,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가장 가까운 빛 덩어리에 다가가 보았다. 그 순간, 그것은 사람 형태와 비슷한 윤곽을 드러냈다. 나는 손을 들어 그것에 닿아 보려고 했다. 손끝이 그것에 닿는 순간, 마치 맑은 ..
2025.02.18 -
16화. 테스트
‘학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더 평온하고 냉담해 보였다. 나는 그의 눈동자 깊숙이 잠시 스치는 듯한 푸른빛의 그림자를 포착했다. 지난 일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학자를 위해 한 공격을 막아내다가 나는 기절했고, 이후 그는 나를 타워로 데려왔다.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로지타] 알카이드…… 나는 무심결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알카이드?] 실험이 종료된 후에는, 실험에 참여한 샘플은 보통 회수됩니다. 실험…… 샘플? 익숙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은 학자의 상태였다. 그의 감정은 완전히 사라진 듯 보였다. 그는 이제 경화인처럼 보였다. 의식이 점점 돌아오며, 내 시야에 다른 풍경이 또렷해졌다. ..
2025.01.12 -
15화. 거품 속 그림자
마치 기억의 홍수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듯 했다. 방주가 출항할 때, 과거의 숲의 정령은 연료의 일부가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삶도, 다음 세상도 원하지 않았다. 스스로 흩어져간 영혼의 파편은 그물처럼 펼쳐져 방주를 보호하고, 세상의 생명력을 지켜냈다. 그래서 영의 세계가 완성된 이후로는 숲의 정령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의 영주 4인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그러던 중 ‘조물주’가 '요광'이라는 식물 군락에서 깨진 영혼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것은 이 세계의 여러 다른 위치와 서로 연결되며, 연약한 그물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그물은 조물주가 세상의 질서를 구상한 방식과 정확히 일치했다. 산산이 흩어진 영혼의 파편이 포획되고, 모아지고, 엮여 새로운 규칙 속에 쓰여졌다. 이로 인해 세계는 더..
2025.01.11 -
14화. 입국
총알이 가슴을 강타했다. 충격과 충돌, 폭발의 여파가 가득했다. 거대한 기류가 나를 뒤로 밀어냈고, 익숙한 가슴팍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학자] 로지타! 귀에는 폭발 이후의 날카로운 소음이 가득 차 그의 목소리를 분간할 수 없었다. 극심한 고통이 내 모든 생각을 차지했고, 무수한 생각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이를 붙잡으려 애썼다. 익숙한 광경이 떠올랐다. 지금 이 상황은 내가 한 번 본 적 있는 가능성 중 하나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손을 뻗어 알카이드의 옷깃을 잡았다. [로지타] 상황이… 이상해요. 가슴 속에서 나오는 한 음절 한 음절이 마치 불길에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심한 어지럼증이 밀려왔지만, 나는 의식을 겨우 붙잡으며 ..
2025.01.11 -
13화. 선택
[로지타] 당신……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말이 끊겼다. 내 몸이 무언가의 힘에 이끌려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비틀거렸다. 학자가 나를 잡아당긴 순간, 총알은 내가 서 있던 자리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 총알은 내 몸을 뚫고 그의 가슴을 관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가슴에 부딪힌 사람은 나였다. 심장은 제어할 수 없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 앞에 있는 사람 때문인지, 아니면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저격수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로지타] 방금 그건…… 누구였죠? 내 말은 깨지기 쉬운 꿈속을 산산이 부수는 것 같았다. 학자의 표정은 다시 차가워졌고, 그의 눈이 미세하게 좁혀지는 것을 보았다. 그의 말투에서 희미한 냉소를 감지할 ..
2025.01.10 -
12화. 과거
학자는 고개를 숙이며 나를 바라봤다. 손목에 익숙한 힘이 느껴졌다. 그 힘은 전에 내가 내 목숨을 담보로 그를 협박했을 때와 같은 힘이었다. 그는 내가 다치기를 원하지 않으며, 또한 내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로지타] 제가 닿는게 싫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고, 예상대로 손목에 가해지는 힘이 더 강해졌다. 학자의 미간은 깊게 찡그려졌으나,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로지타] 저를 거부하시나요? 그는 여전히 침묵했다. 내 시선이 그의 속눈썹에 머물렀다. 긴 속눈썹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짧은 침묵 후, 우리는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알카이드] ...왜? 이것은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의문이었다. 그는 마치 두 갈래로 나뉜 것 같았다...
2025.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