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운기원/경칩 편 (알카이드)(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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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타워
요란한 조명과 부딪히는 술잔 소리로 가득 찬 카지노. 사방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퍼지며 짜증을 유발하는 배경 소음이 되었다. 이런 답답한 실내의 더운 공기 속에서도 이유 모를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는 아마 내 감각이 잘못된 거겠지. [로지타] ……뭐라고 했어요? 카를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카를] 타워에서 알카이드가 처형당하던 날. 그날이 우리가 도망칠 찬스였어. 그 전까지는, 자아를 유지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타워의 실험실로 하나씩 끌려갔지. - [청년 A] 우리도…… 그렇게 되는 거예요? 기억도, 감정도, 의지도 없는…… 그런 존재로? 청년은 무심코 몸을 움직였으나, 등뼈에 연결된 관이 그를 붙잡으며 금속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옆에 있던 사람은 이미 저항..
2025.01.09 -
3화. 튜링
목걸이에 새겨진 이세계 좌표를 기준으로 공간을 가로질렀다. 눈앞의 풍경이 선명해지는 순간, 나는 숨이 잠시 멈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냉혹하고도 살벌한 풍경은 꿈에서 본 것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꿈속에서 이미 잊혀졌던 장면들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다시 떠올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행인들은 꿈에서처럼 서로 아무런 교류 없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기억이 되살아난 후 직접 이곳에 도착하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전 경험에 비추어보면 꿈에서 본 풍경은 대개 아직 발생하지 않은 예고를 의미하곤 했다. 상황이 위험하긴 하지만, 여행자의 능력을 활용하면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건 아니다. 모든 것을 되돌리려면 무엇보다도 지금 알카이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했다. 나는 꿈속에서 보았..
2025.01.09 -
2화. 어렴풋한 기억
[로지타] 알카이드!!! 눈을 번쩍 뜬 나는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빠르게 뛰는 심장에서 격렬한 진동이 전해졌고, 손바닥은 온통 땀으로 젖어있었다. 몸 전체가 산소를 받아들이기 위해 가쁘게 오르락거렸다. 눈 앞에 보이는 건 익숙한 침대 시트, 벽, 가구들... 방금 본 것들은 너무나도 생생한 꿈이었다는 걸 깨닫자, 생각이 현실로 돌아오며 점점 잊혀져간다. 나는 온통 울려대는 이마를 부여잡고 휴대전화를 들어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러나... 누구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지? - [???] 이번 출장은 조금 갑작스럽게 와버려서, 며칠 뒤 떠나게 되었어. 그렇게 말한 이는 일어나 컴퓨터 앞자리를 내게 양보했다. 나는 메일을 잠시 훑어보다 하단에 낮선 이름을 보고 그에게 물었다. [로지타] 선배한테 이 ..
2024.02.09 -
1화. 폭발음
신운기원- 경칩편 길을 잃은 이는 왜 자신의 길을 관철하는가? 기억은 집착을 갖고, 그 갈증은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러니 그 갈망을 버려라. 과거를 버림으로서 비로소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으리. 사방이 기괴한 고요로 가득찬 거리를 걷는다. 주위를 둘러보자, 시선이 닿는 곳마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이 푸른 빛에 반사되어 냉랭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무에서 오는 것이 아닌, 군중들의 무관심에서 오는 고요함은 소름끼칠 정도였다. 내 주위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마치 저마다 정해진 궤적이 있는 듯 소리없이 질서정연하게 걸어갔고, 나는 그 사이에 서 눈앞에있는 마천루를 바라보았다. 그 곳으로 한걸음씩 발을 내딛었다. 로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차가운 기계음이 윙윙 울리기 시작했다. [기계음] 해석 진행률. 90퍼..
2024.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