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 강림 의식

2024. 1. 2. 17:11에르세르 대륙(完)/시작의 장

무슨 조화에서인지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한 세계가 산산이 조각나는 모습을 목격했으니 참담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드문드문 끊긴 기억 중엔 누군가의 목소리와 따듯한 손의 온도가 남아 있었다. 돌아오기 직전이었는데...
 지켜내고 싶다던 말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엔 뜻 모를 절망만이 가득했다. 그 뒤엔...
그 뒤엔 어떻게 됐지? 
 
-
 
 저쪽 세계의 강림 의식이 이쪽 세계에 말할 수 없이 끔찍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나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로샤와 카이로스가 의도했던 강림 의식은 에르세르 사람들 모두를 아무도 없는 새로운 세계로 이동시기는 것이었다. 에초에 그 마법의 규모와 대가는 너무도 컸으며 계획은 성공하기 힘들어 보였다. 거기다 제물이 도망치고 의식 도중 불의의 사고까지 일어났고. 그래서였을까. 부상을 입은 카이로스에게서 제의 주관을 넘겨받은 알카이드는 다른 선택을 했다. 대륙은 포기하고,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만을 이동시킨 것이다. 좌표를 이미 알고 있던... 바로 나의 세계로! 
 내가 살고 있는 이쪽 세계는 에르세르 대륙의 평행세계였다. 영혼만 이동된 에르세르 사람들은 이쪽 세계에서 자신과 동일한 사람의 몸을 빼앗아버렸다. 
 
[나]
알카이드! 내가 에르세르로 돌아간 건 당신을 돕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짓을...! 
 
알카이드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당신은, 내 세계의 사람들을 해쳤어요. 내가 알던 알카이드 선배와 내 세계의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재 희생당했다고! 바로 당신과 당신 동료들 때문에! 자기들이 살겠다고 남의 세계를 망가뜨리다니! 
 
알카이드는 여전히 내 시선을 피한 채 말이 없었다. 
 
[알카이드]
죄송합니다....
 
[나]
당신과 나 말고, 대체 몇 명이나 이 세계로 데려온 거죠? 
 
내가 무섭도록 분노를 쏟아내는데도 알카이드는 끝까지 침묵을 지키며 내 눈을 피할 뿐이었다.
 
[알카이드]
원망은 제게 하세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신을 구할 수 없었어요.
 
[나]
......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의도야 어떻든, 내 손으로 직접 재앙을 끌어들인 꼴이다. 만화 원고를 다급히 필쳐보니, 전부 사라졌다. 저절로 생겨났던 변화까지도 모조리. 모든 장면은 스산한 설원뿐이었다. 그 세계엔 캐릭터도 뭐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제 난 어떡해야 하지?
이대로 눈도 귀도 막은 채 다 포기해야 하나?
아니...! 그럴 순 없어, 절대로! 

 
 우여곡절 끝에, 나는 다시 천문대 근처의 동굴에 도작했다. 알카이드는 나를 보호한다는 핑계로 내 행동을 감시하고 제한했다.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결국 성공했다. 포기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나는 바닥의 마법진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그래, 이것이 내가 내린 답. 
 
-
 
순간, 내 눈앞에 겹겹이 쌓인 환영들이 필쳐졌다. 무수한 별들과 열린 문들 사이로 수없이 많은 '내'가 보였다. 그리고 '내' 뒷모습들은 제각기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바꾸어보렴.

 
[나]
누, 누구세요? 아직 기회가 있는 건가요? 

 

아직 완성하지 못한 그림은 네가 직접 바꿔 그려야 해,

 

[나]
당신도 시공 여행자인가요?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죠?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제발 알려주세요! 
 
[목소리]
아직은 나에 대해 알 때가 아니란다. 새로운 여행자야, 네 마음이 닿는 곳으로 가거라. 네가 믿는 세계는 너만이 그러낼 수 있단다. 

소리가 사라지자, 내 주변으로 어떤 문들의 환영이 떠오른다. 안쪽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의 선택, 혹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알카이드 편- 별들의 장
>아인 편- 분쟁의 장
>로샤 편- 아이리스의 장
>카이로스 편- 전승의 장
 
*로샤와 카이로스는 알카이드와 아인 편 클리어 시 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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