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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동행
알카이드의 정원을 나온 뒤, 나는 줄곧 로샤를 따라가며 물었다. [나]당신과 알카이드는 무슨 이야기를 한 거죠? 그가 당신에게 뭘 하라고 했나요? 로샤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몇 번이나 되풀이된 끝에, 로샤는 결국 멈춰 섰다. [로샤]지금은 안전 시간이 지났어. 자꾸 말하면 적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으니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는 뜻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입을 벌려 조용히 물었다. [나]알·카·이·드·가·당·신·에·게·시·킨·일·은? [로샤]…… 로샤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쳤고, 그가 손을 들어 내 뒤통수를 잡으며 도망칠 길을 끊었다. [로샤]에덴을 떠나 사막으로 돌아간다고. 오늘 밤에 출발해. …너도 같이 가자. 그는..
2025.06.16 -
12화. 안개 속에서, 뱃지
로샤와 알카이드가 떠난 뒤, 나는 문득 후회가 밀려왔다. 사람을 구하겠다고 고집부린 건 나였는데, 결국 협상의 부담은 로샤가 짊어지게 되었다.잠시, 알카이드에게 공격을 가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이 에덴의 통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은 그의 영역이었다. 세 사람 모두 무사히 빠져나올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넋을 놓고 있던 찰나,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정원이 하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그곳엔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숨을 고르며 제자리에서 서 있는데, 두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알카이드, 당신! 알카이드는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듯이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알카이드]당신은 정말 강하네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개를 돌리자..
2025.06.16 -
현세편 8화. 잠깐의 이별
당장이라도 뒤따라가고 싶었지만, 또 들킬까 봐 망설여졌다. 조금 머뭇거리다가 일단 요운의 상태를 먼저 보러 돌아가기로 했다. [로지타]괜찮으세요…? 요운은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요운]이제 끝이야, 소녀. 질문 하나만 더 받을 수 있어. [로지타]이게 유일한 해결책인가요? 별의 제독은 어디로 간 거예요? [요운]무슨 뜻이지? 넌 나한테 손도 못 대잖아. 그런데 별의 제독은 나를 도와 이 세계를 성간(星間)에 숨길 수 있었지. 넌 이스와 닮았어. 똑똑하고, 성급하고, 쉽게 잡히지 않아…… 하지만 그래서 사냥꾼이 되기도 어렵지. 요운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내 속은 시큼하게 뒤집히는 것 같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로지타]그 이스라는 분을…… 데려가신 것 같던데..
2025.06.16 -
현세편 7화. 거래
별의 제독과 요운은 다시 책상 양쪽에 앉았다. 별의 제독은 요운의 말을 들으며 침착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요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요운]저는 도망칠 생각이 없습니다. [별의 제독]나한테 뭘 기다리고 있지? 나를 구해달라고? 아니면 이 작은 녀석을 구해달라고? [요운]그런 건 아니에요. 그저, 당신이 도와줄 수 있다면… 이즈의 세계를 보호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예요. 그의 말은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지금 들킬 위험이 더 크다는 걸 알았다. 그때, 이즈라 불리는 안개 생물이 요운의 몸에서 다시 빠져나왔고, 그 말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생물은 심하게 부상당한 상태였고, 요운은 그걸 완전히 압도할 수 있었다. [요운]혹은, 당신이 “강제로” 나를 없앨..
2025.06.16 -
현세편 6화. 구름과 안개
[별의 제독]골치 아픈 일이 끊이질 않는군. [선장]정말 죄송합니다, 제독 각하. 보시다시피… 별의 제독이 짜증스러운 듯 그의 말을 끊었다. [별의 제독]요운은? 어디에 가둬놨지? [선장]가장 안쪽 구금실에 있습니다, 각하. 그게 바로 내가 있는 곳이었다. 별의 제독의 시선이 내게 닿자, 나는 본능적으로 허겁지겁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는 금세 시선을 거둬들였다. [별의 제독]경비가 꽤 삼엄하군. 군화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두드렸고, 별의 제독은 방으로 들어갔다. 요운은 특별히 더 심하게 구속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도 기지 사람들은 별의 제독이 어떤 돌발 상황이든 제어할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요운]제독 각하… 오랜만입니다. 별의 제독은 죄수의 맞은편에 앉아, 느슨한 태도로 요운을 훑..
2025.06.16 -
[SSR] 청구월원 6화. 동행
마치 아주 긴 꿈에 빠져든 것 같았다. 그 꿈속에서 나는 아주 멀고도 긴 길을 걸었다. 출발할 때마다, 알카이드는 내 곁에 있었다. 하지만 걷다 보면 그는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짙은 안개가 내 시야를 가렸고, 나는 불안해져서 크게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동시에 더 무서운 무언가를 불러올까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그 손이 다시 나를 잡아줄 때까지. 어떨 땐 그가 금방 나를 찾아줬고, 어떨 땐 주변이 캄캄해질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내 주위를 감싸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을 느꼈다. 축축한 공기 냄새가 코를 스쳤고, 콧속 깊은 곳엔 점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그의 시선과 마주했다. [..
2025.06.09 -
[SSR] 청구월원 5화. 진실
[로지타]저는 안 할 거예요. 그 말을 자신 있게 내뱉었을 때, 알카이드의 마음속엔 아무런 파문도 일어나지 않았다. 제물로 바쳐진 그 아이는 끝까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그렇게 끔찍한 괴물이 되어버릴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달려갔을 때, 그는 그저 피로 물든 현장만을 보았다. 그리고 그 소녀의 혼령은, 마치 아직도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조용히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전설에 대한 숭배 때문이었을까. 제단 아래에서 말없이 오랫동안 버텼고, 마지막에 고통을 당하면서도 소리 한 마디 내지 않았다. 그 초월적인 인내는 알카이드에게 황야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용히 숨죽이는 작은 짐승을 떠올리게 했다..
202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