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R] 청구월원 6화. 동행

2025. 6. 9. 20:39이벤트 스토리-2023/록이기

마치 아주 긴 꿈에 빠져든 것 같았다. 그 꿈속에서 나는 아주 멀고도 긴 길을 걸었다. 출발할 때마다, 알카이드는 내 곁에 있었다. 하지만 걷다 보면 그는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짙은 안개가 내 시야를 가렸고, 나는 불안해져서 크게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동시에 더 무서운 무언가를 불러올까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그 손이 다시 나를 잡아줄 때까지. 어떨 땐 그가 금방 나를 찾아줬고, 어떨 땐 주변이 캄캄해질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내 주위를 감싸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을 느꼈다. 축축한 공기 냄새가 코를 스쳤고, 콧속 깊은 곳엔 점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그의 시선과 마주했다.

 

[알카이드]

돌아올 때, 또 널 잃어버릴까 봐 정말 무서웠어.

 

그는 겉으로는 태연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 속에 숨겨진 두려움을 나는 이제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내 몸은 완전히 되살아난 듯, 온몸의 감각이 살아 있었고, 알카이드의 아주 미세한 감정 하나하나까지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태어난 아기처럼 예민하고, 전신의 감각이 깨어난 느낌이었다.

 

[로지타]

알카이드… 제 몸이 뭔가 달라진 것 같아요.

 

[알카이드]

미안해, 지금의 내 영력으로는 오래 유지시킬 수 없어…

 

그는 자신의 영력으로 나의 백골을 다시 육신으로 바꿔주었고, 그 덕분에 나는 이렇게 모든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남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을 바라보았다. 그 상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그에게 남긴 것들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상처 하나하나에 손가락을 댔다. 그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고, 이번엔 그가 처음으로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로지타]

죄송해요… 이렇게나 많이 다치게 했다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알카이드]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아. 그건 내가 선택한 길이야. 후회하는 건… 좀 더 일찍 널 만나러 가지 못한 것 뿐이야. 내 오만함이 널 잃게 만들었어. 네 죽음은… 내가 받은 가장 가혹한 벌이야.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번엔 뜨겁고 무거운 눈물이 내 두 눈에서 흘러나와, 그의 손등 위에 떨어졌다.

 

[로지타]

이렇게 된 것도… 좋지 않나요? 이제 계속 곁에 있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은 어차피 몇십 년밖에 못 살잖아요. 하지만 요괴와 망자는… 영원히 함께할 수 있어요. 게다가, 당신 곁에 있을 때 전… 진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제야 제 감정이 형태를 가졌고, 온기와 무게를 가졌어요.

 

--

 

줄곧 네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네 머릿속에 남아 있는,

나에 대한 이야기들 말이야.

그것들에 대해, 내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었어.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늘 혼자였어.

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왔고,

그들의 바람은 항상 똑같았어.

 

"우리를 지켜주세요."

"평안을 주세요."

"재앙이 물러가게 해주세요."

 

반복되고 반복되는

끝없는 바람들.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들었지.

 

그런데 그 수많은 목소리 중에 단 하나, 

전혀 다른 소리가 있었어.

한 소녀의 목소리였지.

 

그녀는 말했어.

"당신을 보고 싶어요." 라고.

 

유일하게, 나와 관련된 소원을 빌던 아이.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나를 찾던 아이.

 

그 아이가 바로… 너였던 거야.

 

나는 천년을 살아온 구미호였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존재야.

잠들어 있을 때도, 깨어 있을 때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로 가득한 찬사를 받았지.

 

너무 많은 칭송을 받았고,

그것은 거의 나에겐 저주 같았어.

모두에게 잘해야만

더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다고 믿게되었거든.

 

하지만 오직 당신만이…

그 모든 걸 흔들었어.

그렇게 강렬하고도 한결같은, 감정으로.

 

그런 내가 어떻게 너를 찾지 않을 수 있었겠어?

비록 그 과정에서 모든 과거를 잃게 되었지만,

 

그 아래로 떨어지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진짜 나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느꼈어.

 

이제 봐.

우리 지금,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한 명은 세상에 잊힌 떠도는 망령.

한 명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요괴.

 

이제 아무도 우리에게

그들의 뜻을 강요할 수 없어.

그게 선의든, 악의든,

찬양이든, 비난이든,

 

이젠 다 상관없어.

 

지금부터 우리는 더 이상

누구의 감정을 담는 그릇이 아니야.

그저, 우리 스스로일 뿐.

 

맞아.

적어도 꼬리는 아직 있으니까.

그거, 마음에 들어?

 

당신 손…

자꾸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

 

말했잖아.

내 앞에서 그렇게 짓궂게 굴면…

 

정말 키스하고 싶어져.

난 원래, 말하면 꼭 지키는 사람이거든.

 

---

 

아침이 밝아올 때, 우리는 손을 맞잡고 광활한 황야 위에 나란히 서 있었다. 우리 뒤로, 찬란했던 궁전은 재가 되어 무너졌고 알카이드의 영력은 그것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빈손이 아니었다.

 

나는 공기 속에서 은은한 꽃향기를 맡았고 멀리 숲 속에서 달리는 짐승들과 날아오르는 새들의 소리를 들었다.

 

그의 영력이 다하면, 나는 다시 그의 품속 백골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면 그는 다시 나를 데리고 산꼭대기로 올라가 달빛을 먹여줄 것이다.

 

그때면 나는 또다시 살아나 그의 부드러운 입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것이다. 대황야가 늙어갈 때까지,

 

끝까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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