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16. 20:57ㆍ다음 역, 에덴/안내 (로샤)
로샤와 알카이드가 떠난 뒤, 나는 문득 후회가 밀려왔다. 사람을 구하겠다고 고집부린 건 나였는데, 결국 협상의 부담은 로샤가 짊어지게 되었다.
잠시, 알카이드에게 공격을 가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이 에덴의 통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은 그의 영역이었다. 세 사람 모두 무사히 빠져나올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넋을 놓고 있던 찰나,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정원이 하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그곳엔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숨을 고르며 제자리에서 서 있는데, 두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
……알카이드, 당신!
알카이드는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듯이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알카이드]
당신은 정말 강하네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싸움의 흔적조차 말끔히 지워진 듯했다.
이 남자, 방랑자들을 그렇게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니… 아마도 나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경고였을 것이다.
[로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로샤가 언짢은 얼굴로 알카이드를 노려보자, 그는 투항하는 시늉을 했다.
[알카이드]
그저 그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싶었을 뿐이야. 정말 빛나더라고. 부럽다, 로샤 형.
에덴의 주인은 거리낌 없이 속마음을 드러내며, 실례가 될 법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 조그마한 정원은 모든 것이 어딘가 어울리지 않게 기묘했다.
알카이드는 쓰러진 소년 곁으로 다가가 앉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 눈빛은 맑고도 호기심 가득했다. 잠시 후,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알카이드]
로샤 형, 정말 이 아이를 여기 두면 안되는 거야?
말을 마친 뒤, 알카이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알카이드]
……아니다, 약속했으니까. 나는 약속 안 어겨.
그는 손을 뻗어 소년의 이마에 얹었다. 푸른 문양이 전류처럼 소년의 몸을 타고 흐르더니, 한 점으로 모여 사라지며 알카이드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나는 곁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덴의 주인은 언행이 정말 이상했다. 깊이를 알 수 없지만, 인간 관계에선 어딘가 서투른 아이 같기도 했다. 모든 것이 끝나자 알카이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비웃듯이 코웃음을 쳤다.
[알카이드]
이제 그는 그냥 평범한 인간이야. 이 낙원에 있을 수 없어. 로샤 형, 약속한 건 지켰어. 형도 내가 부탁한 거 잊지 마.
그는 말을 마치고 등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가며, 다시는 우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소년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로샤는 그에게 쪽지를 하나 써주었다. 낙원을 떠난 후 그것을 로샤의 상단에 보여주면 누군가 그를 보살펴줄 것이라고 했다.
소년은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는 ‘페더’라고 했고, 선원의 후손이라고 했다.
[페더]
우리는 대대로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왔어. 바다는 우리에게 생명이자 자부심이었지. 수영은 우리 피에 새겨진 능력이야. 태어날 때부터 물과 함께 자랐고, 땅보다 바다에 더 익숙했지.
하지만 어느 날, 이 세계에서 바다가 사라졌다고 했다. 페더의 부모님은 세상이 변하는 걸 직접 겪었고, 습지는 사막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의지하던 기술은 단 하루 만에 쓸모 없게 되었다.
[페더]
아버지와 다른 어른들은, 에덴에 물이 남아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에덴을 찾았어. 하지만 그들은 실패한 거야…… 결국 다시는 바다로 돌아가지 못했고, 목숨마저 잃었지.
문득 그날 밤, 물가에 있던 방랑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내뱉던 마지막 목소리.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
그건 그들의 마지막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나]
페더, 그날 밤…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페더]
……응,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당신들이 공격받는 것도 봤는데…… 도와주지 못했어. 미안해.
나는 그를 원망할 수 없었다. 소중한 사람을 향해 칼을 들 수 있다는 건, 그들이 의식을 잃은 괴물이 되었다 해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페더는 고개를 숙이며 목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우양]
이걸 줄게. 아버지는, 휘장에 새겨진 문양이 자유를 뜻한다고 했어.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그것을…… 너희는 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는 손목에 있던 ‘출입증’ 역할의 팔찌를 풀어 던졌다. 에덴에서 떠나기 전, 페더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능력을 잃고 다시 평범한 인간이 되었지만, 그는 마치 물을 먹은 식물처럼 생기 넘쳐 보였다.
[나]
밖의 세상에서, 페더는 어떻게 될까요?
[로샤]
걱정하지 마. 살아가는 것, 그건 이 아이가 계속해서 해왔고…… 누구보다 잘하는 일이야.
나는 손을 들어 페더의 선물을 바라보았다. 그건 배의 닻이 새겨진 목걸이였다. 로샤가 방랑자에게서 회수했던 것과 똑같았다.
자유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동판은 바람에 흔들리며, 달빛 아래서 희미한 빛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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