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역, 에덴(51)
-
13화. 안전시간
집회소를 나올 때는 이미 해가 져 어둑해져 있었다. 주변 분위기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레지스탕스 단원들이 계속 순찰 중이라 별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난 길을 걸으며 루카스의 말을 곱씹었다. 에덴에는 '안전 시간'이 있다고 했다. 밤이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거주 구역으로 향하자, 길가의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통신기로 로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응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밖에 오랫동안 머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통신기의 알림이 떠올라, 거주 구역에 가서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 번호를 고르기도 전에, 근처에서 집 한 채를 찾아냈다. 들어간 곳은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정말이지.. 낡아빠진 공간이었다. 시커먼 복도엔 쌓인 먼지..
2023.12.28 -
12화. 집회소
이곳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조용했다. 얼음이 술잔에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만 이따금 들려왔다. 집회소의 용병들은 바깥의 보초들처럼 질서정연해 보였고, 장비는 에덴의 다른 평범한 능력자들 것보다 더 고급스러웠다. 앞에 있는 바의 한가운데에는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그림자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칠흑처럼 시꺼먼 망토를 두른 그는 한 손으로 술잔을 쥔 채, 술잔에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루카스] 보스, 데려왔습니다. 아인이다 그는... 이곳의 지도자 같았다. [아인] 이리 와, 앉아. 그가 내게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왠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의 앞에 술잔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보스가 직접 대접해 주다니, 그것만으로도 내게 얼마나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
2023.12.28 -
11화. 초대
나는 불안감을 억누른 재 계속해서 로샤를 따라갔다. 알카이드에 대한 일을 묻고 싶었지만, 더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지 않았다. 거리 모퉁이에는 '거주 구역'이라고 쓰인 팻말이 세워져 있었는데, 건물마다 번호가 붙어 있었다. [나] 여기에는 전부 번호가 달려 있네요. [로샤] 모든 사람에게 알맞은 거주 구역이 배정되거든 로샤가 걸음을 멈추고 날 쳐다보더니, 고개를 숙여 통신기의 정보를 확인했다. [나] '에덴 관리 시스템'에서 모두에게 집을 나눠준 건가요? 나는 걸음을 멈췄다. [나] 저는 일단 들어가서 볼게요. 로샤 번호는 몇 번이에요? [로샤] 아, 난 안 들어갈 거야. [나] 그럼 잠시 후에 각자 움직이죠... 그런데 이 집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요? 로샤는 이곳에 대해 잘 아는 것 같네요. 로..
2023.12.28 -
10화. 안개정원
짙은 안개가 시야를 완전히 뒤덮었다. 시야를 되찾았을 때는 눈앞에 정성껏 가꾼 집이 나타났다. 깔끔하게 관리된 티가 나는 집이었다. 공기와 온도가 훨씬 쾌적했다. 정원의 분수에선 시원한 물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잠자리가 날아와 분수 옆에 앉았다. 바로 그 순간, 분수 옆에 누군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알카이드를 닳은 편안한 차림의 상대는 정성스레 주변의 식물을 가꾸고 있었다. 잠자리가 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는 잠자리를 내쫓긴커녕 놀라지않게 움직임을 천천히 멈췄다. 무척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분수의 물방울이 옷자락을 적셨지만,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청년] 제 정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쪽 꽃을 아직 손질하지 못했는데, 잠시만요. 잠시 뒤, 청년은..
2023.12.28 -
9화. 낙원의 검증
승리한 뒤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로샤는 오아시스 폐허의 돌기등 옆에 앉아 돌아오는 날 항해 손을 흔들었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나] 방금 전에 일부러 허세를 부린 건가요? 자신을 미끼 삼아 상대의 관심을 돌린 틈에 저더러 공격하라고? [로샤] 그런 거창한 거 아니야. 난 그저 약간의 도움을 줬을 뿐. 나 같은 사람은 무력을 보낼 수 없으니 잔머리를 쓰는 수밖에 없잖아? [나] 그렇네요,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번 전투를 이끈 건 나였지만, 로샤는 자신을 더 위험한 상황에 놓는 쪽을 선택했다. [로샤] 이만 가볼까? 환하게 웃는 로샤의 얼굴 위로 햇빛이 쏟아지자, 그의 금발이 눈부시게 빛났다. [나] 좋아요, 잘 해봐요. - 나는 앞서가는 로샤의 뒤를 따라갔다. 처음 왔을 때와 달..
2023.12.28 -
8화. 티켓
로샤는 나를 데리고 잔뜩 긴장한 채 경계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어느 구석진 곳으로 데려갔다. [로샤] 궁금한 게 많겠지. 하지만 듣는 귀가 많다는 걸 명심하도록. 귀는 기울이고, 말은 아끼는 거야. 나를 향한 로샤의 눈동자에서 진지함이 느껴졌다 [로샤] 루카스가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티켓을 갖고 있기 때문이야. 너도 마찬가지지. 잠시 멍해있던 나는 문득 로샤가 내 품에 있는 가방을 보며 웃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게 망토를 준 이유가 이 가방을 가리기 위함이었구나. [나] 제게도 있다고요? 앗, 그러고 보니 돌려주는 거 깜빡했네요! 망토를 받아든 로샤는 내 앞에서 손가락을 가법게 흔들더니 가방을 또다시 가리켰다. 가방에는 이런저런 물건과 함께 카이로스가 내게 준 선물이 들어있다. 서둘러 ..
2023.12.27 -
7화. 방문자
끔찍한 혼란. 이곳은 혼란 그 자체였다. 최초의 희생자가 도화선이 되어 더 많은 충돌, 욕설, 고함, 그리고 서로를 향한 저주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로샤가 갑자기 손을 내밀어 내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나] 왜 그래요? 로샤는 묵묵히 망토를 벗어 내게 걸쳐줬다. 가방과 내 소지품들은 망토 아래 가려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건, 망토에 스민 그의 체온이었다. [나] 로샤? 제대로 물어보려던 순간, 또 다른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래바람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해 주는 후드로 얼굴을 잔뜩 가린 상대가 나타나자, 주변의 소란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 잘 지냈어? 상대가 입을 연 순간, 그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긴 갈색 머리, 입가에 걸린 나른한 미소..
2023.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