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낙원의 검증

2023. 12. 28. 00:20다음 역, 에덴/첫 에덴

 
승리한 뒤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로샤는 오아시스 폐허의 돌기등 옆에 앉아 돌아오는 날 항해 손을 흔들었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나]
방금 전에 일부러 허세를 부린 건가요? 자신을 미끼 삼아 상대의 관심을 돌린 틈에 저더러 공격하라고? 
 
[로샤]
그런 거창한 거 아니야. 난 그저 약간의 도움을 줬을 뿐. 나 같은 사람은 무력을 보낼 수 없으니 잔머리를 쓰는 수밖에 없잖아? 
 
[나]
그렇네요,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번 전투를 이끈 건 나였지만, 로샤는 자신을 더 위험한 상황에 놓는 쪽을 선택했다. 
 
[로샤]
이만 가볼까? 
 
환하게 웃는 로샤의 얼굴 위로 햇빛이 쏟아지자, 그의 금발이 눈부시게 빛났다. 
 
[나]
좋아요, 잘 해봐요. 
 
-
 
나는 앞서가는 로샤의 뒤를 따라갔다. 처음 왔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동행이 생겼다. 혼자서 '티켓'을 사냥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다 들어갔다. 지금 여기에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연합과 배신, 거래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쥔 부대가 '누가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라는 문제 를 두고 입구에서 싸우고 있었다. 규정을 어기고 몰래 안으로 들어가려던 사람이 방금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로샤]
뭘 보고 있어? 가자. 
 
[나]
로샤는요? 내가 가진 티켓을 나눠줄까요? 
 
[로샤]
고맙지만 내게도 있어. 
 
바로 눈앞에 개찰구가 있다. 아까 루카스가 어떻게 했는지를 떠올려보니, 결정을 개찰구에 넣는 동시에 손을 뻗으면 입장 자격이 주어지는 것 같았다. 난 심호흡을 하며 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기계음]
입장 자격을 확인했습니다.

 
결정의 색이 개찰기에 나타나더니 팔찌 모양으로 변했다. 그리곤 '찰칵'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내 손목에 채워졌다. 
 
[기계음]
방문자 인증 완료.
 
팔찌를 자세히 살피기도 전에 개찰구를 통과한 로샤가 앞에서 날 불렀다. 
 
[로샤]
뭘 하고 있어? 어서 와! 
 
[나]
앗, 가요! 
 
발걸음을 옮기는데, 의문 하나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방금 로샤가 입구를 지나면서 결정을 꺼냈던가? 제대로 보지 못했다. 
 
-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에덴'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세히 살핀 후에야 '에덴'이라는 곳이 무척 넓은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푸른 덩굴로 뒤덮인 건물이 양측에 서 있었고, 옆 도로에는 무너진 송전선과 버려진 전찻길이 나뒹굴었다. 아름다운 오아시스보다는 폐허 도시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푸른 덩굴 사이로 바람이 스치니, 바깥보다 훨씬 상쾌했다. 갑자기 뭔가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내 손목을 재운 통신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 에덴 관리 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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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다운의 끝... 그 끝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날 부르는 로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로샤]
여기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돼. 
 
로샤를 따라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
 
거리를 지날 때마다 용병차림의 능력자들이 보였다. 모두들 여전히 경계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안정감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사막 한가운데에 도시 하나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 같지만, 건축물들은 황폐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나와 달리 경계심과 신중함으로 가득했다. '지하의 삶'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곳을 평범한 민간 지역으로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묵묵히 서로를 탐색했지만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에덴 관리 시스템' 때문인지 사람들 모두 신중하게 행동했다. 걷다 보니 옆에 있던 로샤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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