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티켓

2023. 12. 27. 19:49다음 역, 에덴/첫 에덴

로샤는 나를 데리고 잔뜩 긴장한 채 경계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어느 구석진 곳으로 데려갔다. 

 

[로샤]

궁금한 게 많겠지. 하지만 듣는 귀가 많다는 걸 명심하도록. 귀는 기울이고, 말은 아끼는 거야.

 

나를 향한 로샤의 눈동자에서 진지함이 느껴졌다 

 

[로샤]

루카스가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티켓을 갖고 있기 때문이야. 너도 마찬가지지. 

 

잠시 멍해있던 나는 문득 로샤가 내 품에 있는 가방을 보며 웃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게 망토를 준 이유가 이 가방을 가리기 위함이었구나. 

 

[나]

제게도 있다고요? 앗, 그러고 보니 돌려주는 거 깜빡했네요!

 

망토를 받아든 로샤는 내 앞에서 손가락을 가법게 흔들더니 가방을 또다시 가리켰다.

가방에는 이런저런 물건과 함께 카이로스가 내게 준 선물이 들어있다. 서둘러 가방을 열자, 예상대로 안에는 결정이 잔뜩 들어 있었다. 카이로스가 내게 준 건 에덴으로 들어가는 티켓이었다. 

 

[나]

로샤, 루카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망토를 준 거에요...? 고마워요! 

 

[로샤]

어떻게 보답할 건데? 

 

난 그를 바라봤다.

 

[로샤]

설마 나를 경계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닭 한 마리 잡을 힘도 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그의 목소리에서 억울함이 묻어났지만, 그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 게다가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강조하다니...

 

[나]

닭 한 마리 잡을 힘도 없다고요? 

 

[로샤]

그래. 난 능력자가 아니잖아, 누구랑 싸운 적도 없다고. 좋은 게 좋다는 주의야. 여러 지하셀터나 능력자를 중재해주는 훌륭한 가이드지. 

 

도움을 준 대가로 무얼 받을지 고민하던 로샤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이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로샤]

좋아, 그럼 내게 직접 사례해. 나를 책임지고 보호해달라는 뜻이야.

 

[나]

그게 무슨...

 

[로샤]

난 진지해. 너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어. 게다가 넌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아. 사막에 너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진작 알았을 테니까.

 

가법고 나른한 말투였지만 내 비밀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로샤]

너는 모르는 것 투성이잖아. 난 네가 필요해, 너도 내가 도움이 될테고. 

 

[나]

로샤 씨가 많이 알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절 협박하시는 건가요? 

 

[로샤]

서로 돕고 지내자는 거지. 상부상조. 넌 뛰어난 힘을 지녔어. 그리고 난 전투 능력은 없지만 뭐든 할 수 있고. 

 

[나]

절 전투 요원으로 쓸 생각인가요? 

 

[로샤]

그래. 그리고 넌 날 가이드로 삼고. 어때? 

 

...정말이지 못 말리는 사람이다. 

 

[나]

그렇다면 가이드 씨, 제게 '티켓'이 있으니 에덴에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로샤] 

그렇게 쉽진 않을...? 

 

그는 잠시 손가락을 흔들더니, 갑자기 옆에 있는 관목을 가리켰다.

 

[로샤]

네 능력, 바로 발동할 수 있나? 어서 저길 공격해. 

 

말이 끝나갈 때 즈음엔 로샤의 말이 상당히 빨라져 있었다. 그곳엔 적도 없고, 오로지 오아시스의 푸른 관목만 존재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코앞으로 적이 다가온 것처럼 명령을 내렸다. 

 

-

 

로샤의 판단을 믿는다. 육체의 본능은 이성보다 앞서는 법. 일단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림 소울을 소환하는 동시에 시커먼 총부리가 보였다. 스물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날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숨기지 않은 적의가 그대로 느껴진다. 

 

[로샤]

하이에나로군. 스스로 모래 괴물을 사냥할 능력이 없으면 다른 방법으로 티켓을 얻는 수밖에. 여긴 하이에나가 너무 많아. 

 

[총을 든 남자]

누구더러 하이에나라는 거냐!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해라. 그러면 여자는 해치지 않겠다. 

 

[나]

총부터 내려놔요. 전 적이 아니에요.

 

[로샤]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아무래도 총을 겨눌 곳은 그쪽이 아닌 것 같군.

 

[총을 든 남자]

무슨 뜻이지? 

 

[로샤]

이 레이디와 내가 일행으로 보이나? 

 

총을 든 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로샤]

결정을 노리는 거 아니야? 그렇다면 상관도 없는 여자는 보내줘.

 

그렇게 말하는 로샤의 시선은 상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표정만 보면 난 그와 무관한, 협박할 가치조차 없는 행인처럼 느껴졌다. 로샤가 미소를 떤 재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줄곧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외졌지만 지금의 로샤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라곤 하나 없어 보였다. 갑자기 상대가 잔뜩 흥분하더니 내게 겨누던 총부리를 로샤 쪽으로 겨눴다.

 

[로샤]

지금이야!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지금이 완벽한 타이밍이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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