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8. 10:49ㆍ다음 역, 에덴/안내 (로샤)
걸음을 늦추자, 곧장 내 상태를 눈치챈 로샤 역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
그때 분명... 어떤 일이 생겨도 절대 그에게 도움을 구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로샤는 지난번에 분명 그렇게 충고했었다.
[로샤]
맞아. 지금도 내 생각은 그대로야. 하지만 이 아이를 구하려면, 에덴에선 그 녀석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어. 어떡할 거야? 들어갈 거야, 아니면 이 녀석을 바닥에 내려두고 돌아설 거야? 나라면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하겠지만.
차갑게 말을 내뱉은 로샤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로샤]
...빌어먹을. 널 만날 줄 알았다면 에덴에 절대 돌아오지 않았을 거야. 이런 말까지 하다니, 창피해 죽겠군.
마치 지금 일어난 이 모든 일에 무력한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하는 말 같았다.
[나]
알려줘서 고마워요, 로샤. 제 고집으로 당신이 곤란해졌다는 건 알지만... 저는 저 아이를 꼭 구하고 싶어요. 아이가 다 낫고 나면, 우리 얘기 좀 해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든 로샤는 한참이나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로샤]
넌 정말 교활해... 보상으로 그런 걸 내세우다니.
[나]
...그런 거 아니거든요!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한 로샤는 고개를 돌리더니 흉흉한 협박조로 말했다.
[로샤]
어이, 꼬마. 다 이 누나 덕분인 줄 알아. 그러니 잘 버티고 있어, 밤만 되면 날뛰는 그 괴물 녀석들처럼 변하지 말고!
-
이곳은 여전히 무성한 꽃나무와 촉촉한 공기로 가득했다. 알카이드는 분수대 옆에서 우리가 다가오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실망이 역력히 드러나는 눈빛이었지만.
[알카이드]
절 만나러 오신 건가요?
내가 대답이 없자, 그는 로샤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책망하듯 인상을 찌푸렸다.
[알카이드]
로샤 형, 외부인을 데려왔구나.
알카이드에게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로샤가 더 빨랐다.
[로샤]
알카이드, 네 도움이 필요해서 왔다. 이 아이를 구해줘.
알카이드의 미간이 한층 더 구겨졌다.
[알카이드]
어째서? 형은 한 번도 이런 데 간섭한 적 없었잖아. 이 여자 때문이야? 그녀가 형의 생각을 바꾼 거야? 오래 전에 에덴을 떠났으면서 이번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도?
... 그는 마치 잘 다듬어진 식물에 웃자란 가지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와 로샤를 훑어 보았다. 그러곤 한참 뒤에야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알카이드]
하지만 형이 머무른다면 난 언제나 환영이야.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로샤]
여기 오래 있을 생각은 없어. 그녀도 마찬가지고.
로샤가 언성을 높였다.
[로샤]
말했지, 나는 새장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고.
[알카이드]
새장이라니, 그런 표현은 좋지 않아. 로샤 형, 형이 말하는 그 새장에 들어오기 위해 머리를 깨부수는 일도 불사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아. 형이 등에 업고 있는 그 녀석도, 그런 이들 중 하나잖아? 그래도 그 녀석은 소원을 이룬 셈이지. 방랑자가 되면 에덴에 영원히 머무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저 녀석에겐 나름대로 행복한 결말이 아닐까?
점점 소년의 얼굴에 고통이 차오르고, 피부는 무언가 뚫고 나오려는 듯 기이하게 부풀어 올랐다. 이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보였다.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 로샤와 나란히 섰다.
[나]
알카이드, 도움을 청하러 온 건 저예요. 당신에게 이 아이가 방랑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제발 도와주세요.
[알카이드]
저자를 도와달라고요? 지금 당신이 부탁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 줄은 아나요?
나는 숨을 깊게 들이키며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
...에덴의 주인이죠.
지금까지의 정보를 종합해 봤을 때, 답은 하나뿐이었다. 모두가 살아남으려 애쓸 때, 방랑자를 통제하고 능력자의 변이까지 막을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 이 전장을 만든 이... 바로 에덴의 주인이다. 로사를 의심하던 때도 있었지만, 그에겐 에덴을 자유로이 드나들 특권이 있는 것뿐이다. 그가 그토록 여유로울 수 있었던 건, 이 모든 진상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알카이드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알카이드]
그걸 알면서도 두렵지 않나요?
[나]
두려워요. 하지만 전 규칙을 어기지 않았어요. 에덴의 주인이라면 약속을 어기진 않겠죠. 하지만 당신이 굳이 내 자격을 박탈하려 한다면 막을 생각은 없어요. 저도 제게 당신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곁에 선 로사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지만, 알카이드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알카이드]
마음에 드네요. 당신이 점점 더 좋아져요. 이렇게 하죠. 당신이 최후의 날까지 이곳에서 저와 함께해준다면, 그 아이를 구해줄게요.
>거절한다.
나는 알카이드에게 고개를 저었다.
[나]
제 자유를 걸고 거래할 생각은 없어요. 전 제 능력으로...
알카이드에게 거래 조건을 제시하려 했지만, 로샤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로샤]
알카이드, 이자를 데려온 건 나야. 나랑 얘기해.
알카이드는 싸늘하게 빛나는 푸른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알카이드]
좋아, 마침 나도 할 말이 있었거든.
>승낙한다.
나는 고민했다. 알카이드의 조건은 합리적으로 들렸다.내가 여기 있으면 소년은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에덴의 주인. 그의 정원은 정말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방랑자들의 공격도 피할 수 있고, 지난 며칠 동안 그가 설치한 모든 장애물도 피할 수 있었다. 숨을 수도, 굶주릴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나에게는 큰 유혹이다.
[나]
약속할게요.
로샤는 나를 멈추려 한 것 같았지만, 너무 늦었다.
[알카이드]
그럼 거래 성립으로 하죠.
그의 입술이 방긋거리며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았다. 갑자기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하얀 안개가 걷히고, 정원에는 알카이드와 나만 남았다.
그 이후로는... 알카이드가 나를 집으로 데려가 제라늄 차를 끓여 준 것만 기억난다. 그는 이 차가 진정 효과가 있고 저를 편안하게 해준다고 했다.
알카이드는 제가 매우 상냥한 사람이라고 자주 말해주었다. 나는 제 자유와 다른 사람의 삶의 기회를 바꿨고, 알카이드가 지금처럼 매일 나를 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이렇게 말하며 그는 제 귀에서 떨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부드럽게 넘겨주었다.
[나]
밖에 가시나요?
[알카이드]
같이 갈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바깥 세상은 왠지 모르게 무섭지만 이 정원의 풀과 나무는 안전하다고 느껴진다. 익숙한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위험에 처할 일은 없겠지.
정원을 나서는 알카이드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도 저 문 너머의 세상에 가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곳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느낌만 든다. 미지의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는.
알카이드의 작은 정원에서 시간은 측정도 경계도 없이 이곳과 외부를 구분하는 하얀 안개와 같아서 내 기억을 혼미하게 한다. 삶은 변하지 않기에 시간의 흐름은 의미를 잃는다.
가끔 정원에서 휴식을 취할 때면 오랫동안 새 한 마리 날지 않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곤 한다. 저 먼 하늘 아래에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물론 그런 생각은 곧 잊혀진다. 이 정원에서는 매일 신선한 꽃이 자란다. 나는 그들에게 물을 주고, 다듬고, 햇빛이 잘 들고 모기와 벌레가 없는 곳에 두는 등 꽃을 돌보며 그렇게 평화로운 삶이 지속될 것이다.
BE 2. 날개 없는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