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불청객

2024. 7. 6. 20:00다음 역, 에덴/안내 (로샤)

 어제와 마찬가지로 용병들은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로샤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방으로 들어와 보고하라 지시했다. 안전 시간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멀지 않은 곳에서 잇따라 총성이 울렸다. 약탈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창가에 서서 칠흑 같은 골목 어귀를 내다봤다. 창문에 비친 카운트다운은 여전히 착실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나]

284400, 284399, 284398...

[로샤]

에덴의 카운트다운을 보고 있나? 

[나]

저 시간이 끝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나요? ...잠깐, 미리 말해두는데, 이건 정식 질문 아니에요! 질문 횟수로 계산하지 말아요.

 

[로샤]

구두쇠네, 계산 철저하기는. 

 나는 퉁명스럽게 콧방귀를 뀌었다. 

 

[로샤]

좋아, 알려줄게. 저건 에덴의 주인이 에덴으로 들어오려는 능력자들을 위해 만든 거야. 카운트다운이 끝날 때 에덴에 남아 있는 자가 다음 주인이 되지. 

 그러고 보니, 승자가 에덴의 소유권을 차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카이로스에게 들은적 있다. 

 

[나]

에덴의 주인이 되면... 뭘 할수 있나요? 

 

[로샤]

글쎄, '에덴의 자원과 괴물을 지배한다' 같은 시시한 것들 아닐까. 

 로샤는 흥미가 없어 보였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말이 있어 되물어보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급하지도 느긋하지도 않은 노크 소리 였지만, 왠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주변이 조용했다. 저녁 시간부터 멈추지 않았던 소음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만 선명히 들려오는 이 상황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와 눈이 마주친 로샤는 내게 입 모양만으로 움직이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문 앞으로 걸어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러곤 온몸으로 내 앞을 막아서, 나와 문밖에 있는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 

[???]

잘 있었어, 로사 형? 

 ...알카이드의 목소리다. 

[로샤]

벌써 여기까지 찾아내다니. 

[알카이드]

반갑지 않은 눈치네. 내가 혹시 방해한 건가? 

 로사는 급소라도 맞은 듯 경직되어 있었다. 그의 목소리엔 여전히 웃음기가 묻어 났다. 분명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왠지 모르게 섬뜩했다. 

 

[알카이드]

방문자 3-0-7이 이곳에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어. 분명 그 --이름이었지? 여러 번 연습해서 기억하고 있어. 그녀를 보러 왔어. 

 어차피 계속 숨어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 알카이드를 마주했다. 나를 발견한 알카이드의 눈과 입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알카이드]

반가워요. 당신이 보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지난번에 제 정원에 왔었죠? 그래서 이번엔 정식으로 초대하려고요. 저와 함께 가시겠어요? 

 그의 눈동자는 그 어떤 불순물도 없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빛으로 반짝였다. 

>알카이드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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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1. 가지치기

 

알카이드의 표정이 나를 동요시켰다. 생각해보면 알카이드에 초청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이 곳에 왔을 졍도로 강하며, 그의 정원은 에덴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곳.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선 그를 찾아가는게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그의 표정이 내 마음을 흔들고 있다.

[나]

네.

 나는 그에게 초대 승낙의 의사를 밝혔고, 로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막았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알카이드를 따라갔다. 손님으로 간 건데, 설마 붇잡히기라도 하겠어?

-

 나는 이 생기발랄하고도 이질적인 정원에 도착했다. 붉은 장미와 흰 장미가 아름답게 얽혀있었고, 마치 이 잔혹한 에덴세계 속 비밀스럽게 보호된 유리구슬 같았다. 유리구슬 속 시간은 영원히 아름답게 보존되고 있었다.

[알카이드]

당신이 이 곳에 와줘서 너무나 기뻐요.

 알카이드는 나를 그의 방으로 데리고 가 제라늄 차를 내려주었다. 내 기억이 마지막으로 흐른 밤이었다. 앞으로의 날은 이 향과 같이 멈추게 되었다...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로샤와 한 약속을 어긴 것이다.

-

 

내가 이 정원에 온 지 얼마나 된 걸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건 이 정원에서 안전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있다는 것. 그가 없을 때 나는 주로 화원에서 시간을 보냈고, 알카이드는 종종 내게 다가와 정원 속 꽃들을 관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정원의 꽃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햇빛을 잘 받지 못한 탓인지

장미꽃 한 송이가 눈에 띄게 시들기 시작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알카이드가 알려준 대로 꽃가지를 잘랐다.

 손을 대자. 가지는 매몰차게 부러졌고 흰 장미는 가련히 땅에 떨어져 순식간에 진흙으로 더러워졌다. 무언가의 잔해처럼 널브러져있는 꽃잎을 바라보며 문득 저게 내 영혼의 분신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뭔가 중요한게 있던 것 같은데, 저렇게 잘린 듯 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부분이 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알카이드]

뭘 보고 계신 거예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뒤에서부터 감겨와 마치 그물처럼 나를 감싼다. 나는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내 말수는 줄어들고 기계적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알카이드]

응? 오늘도 정원 관리를 도와주신 건가요?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빛은 마치 꽃 한 송이를 감상하는 것만 같았다.

 

[알카이드]

그 꽃을 위해 슬퍼하고 계신 건가요?

 그는 나를 살며시 껴안고, 위로하듯 내 이마에 키스했다.

 

[알카이드]

괜찮아요. 괜찮아.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니라면 잘라버리면 돼요. 당신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기만 하면 충분해요.

 그래, 안 좋은 것, 슬픈 것, 짐이 되는 건 다 잘라버리면 된다.

 

 내 옆에 있는 이 사람, 그 사람의 이름은 알카이드다. 나는 그와 함께 에덴에 살고있다. 이 곳의 바람은 영원히 따스할 것이며, 이 곳의 생화는 영원히 시들지 않으리라.

싹둑-

END.

 

>이곳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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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죄송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낮선 사람보단 그래도 친구와 함께있는 게 더 안심되거든요. 

 

[알카이드]

낮선 사람... 친구...

 조용히 두 단어를 되뇌이던 알카이드의 눈빛에, 점차 위험하고도 불쾌한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알카이드]

친구... 듣기 좋은 단어네요. 어찌 보면 두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단어이기도 해요. 둘은 무척 닮았으니까요. 

 알카이드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와 로샤를 빤히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나는 점점 반감이 들었다. 지금껏 비록 저의는 알 수 없었지만, 나를 보는 알카이드의 맑은 눈빛엔 호감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는 어두운 감정에 지배당한 것만 같았다. 그는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와 로샤에게 속삭였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내 귀에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알카이드]

로샤 형, 형은 알고 있잖아. 이곳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친구보단 힘이라는 걸. 그녀는 에덴에 남아 있고 싶어 하지만, 형은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방관자일 뿐이라고.

 알카이드가 떠난 뒤에도 로사는 문 앞을 떠나지 못했다. 아무리 그의 이름을 불러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날은 벌써 어두워져, 자정까지는 이제 다섯 시간도 남지 않은 상대였다. 그러나 조금 전부터 로샤의 '경호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옥상에도 골목길에도, 아무도 없었다. 

[나]

로샤, 왜 용병들이 방문자에 대해 미리 알려주지 않은 건가요? 다 어디 간 거예요? 

 로샤의 목소리에서 옅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로샤]

그들은 이제 오지 않을 거야.

 

[나]

왜요?

 로샤는 손에 쥔 것을 내게 건네주었다. 조금 전 알카이드가 대화하면서 준 것이었다. 그것은... 차갑고 단단한 통신기였다. 

 

[로샤]

...내가 고용한 용병 중 하나가 차고 있던 것이야. 그들은 전부 에덴에서 방출됐겠지. 내가 해온 모든 것들이, 알카이드 그 녀석에겐 하찮은 일일 뿐이라는 경고이지. 그리고 알카이드는 성공했어. 

 알카이드가 로샤의 사람을 모두 철수시켰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너무나도 쉽게 이 모든 일을 저질렀다. 끝을 알 수 없는 능력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로샤]

그들에게 에덴에 남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상인의 얼굴은 후회로 얼룩져 있었다. 그들과 계약했을 당시에는 당연히 지길 수 있는 약속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로샤]

네 말대로 정말 사기꾼이 된 것 같군. 

 로샤가 쓴웃음을 지었다. 차마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나]

로사, 그들에게 약속은 지키지 못했더라도 남은 직원은 챙겨야 하지 않겠어요?

 로샤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로샤]

...남은 직원? 또 누가 있는데? 

[나]

저요. 약속했잖아요. 제가 '가끔씩' 당신을 보호하는 대신에, 당신은 내게 음식과 에덴에 머물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로샤. 이 약속, 지킬 수 있나요?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로샤는 이내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한참 뒤, 그의 얼굴엔 담백한 미소가 떠올랐다. 

 

[로샤]

물론이지.

 

>5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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