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7. 23:20ㆍ현대 편/여름 메인 스토리
등대가 있는 기슭에 도착했을 땐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어렴풋이 어떤 특별한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강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복잡한 것이, 여러 힘이 한데 뒤섞여 서로 간섭하고 견제하는 듯했다. 등대에 가까워질수록 그 힘도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낡고 조용한 등대의 나선형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는 내내 내 발소리만 메아리쳤다. 꼭대기에 있는 등대실에 도착하자 가까운 곳에서 그 힘이 느껴졌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깨진 장문, 빛바랜 장식, 그리고...
내가 느꼈던 힘의 근원. 프리즘으로 된 등에는 횃불도 전등도 없이, 시린 잿빛 돌덩이만 허공에 떠 있었다. 돌 표면으로 기이하게 흐르는 룬 문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나는 그림 소울의 힘을 한데 모아 그것을 살펴보려 했다. 그 순간, 갑자기 미간이 지끈거렸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어두워졌다. 등대 안의 모든 빛이 왜곡되고 한데 모이더니 내 눈앞에 무수한 조각의 화면을 만들었다.
마치 수많은 시공간을 지나온 것 같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 보인다. 엄마의 얼굴과 닮아 있었지만, 빳빳한 제복을 입고 이상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녀가 선 무대 아래로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그녀의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 역시 내가 본 적 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화면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사람들의 표정이 선명히 보이고, 그들의 환호성도 또렷이 들려왔다. 그들은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을 '통솔자님'이라 부르며 열광적으로 소리쳤다.
저희를 인도해 주세요! 저희에게 길을 밝혀 주세요! 저희를 이끌어 주세요!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은 평온한 표정에 목소리도 아름다웠지만, 말투는 쌀쌀맞았다.
[???]
사랑은 인간에게 권력을 주고, 끊임없이 다투게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따르세요. 그러면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될 겁니다.
익숙한 목소리... 점점 그녀가 엄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지구에서는 라디오 진행자의 신분을 이용했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존경받는 통솔자였다. 말과 목소리만으로 사람들을 자극하고 분쟁을 일으켰다.
더 없이 기괴한 광경이었지만 두려움보다는 알 수 없는 이끌림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딸이다. 어쩌면 이것이 내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목소리와 힘은 나에게 귀속될 수 있다. 아니, 귀속되어야 한다.
갑자기 휴대폰 진동이 울리는 탓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알카이드>
등대가 꺼지는 걸 봤어.
로지타, 괜찮아?
...로지타?
답장을 보내고 싶었지만, 문자를 보낼 수 없다는 알림창만 자꾸 떴다. 어둠에 잠긴 섬, 등대 밑에서 어렴풋이 인기척이 느껴졌다. 등대의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해변에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어 있었다. 앞에서 걷는 이는 두 눈이 텅 빈 조세이아였다. 그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등대 쪽을 바라보며 그 노래를 흥얼거 렸다.
[조세이아]
얼마나 많은 달이 등대에 올라 퐁당 퐁당 바다로 떨어졌나...
조세이아의 등 뒤로 다른 사람들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달이 등대에 올라 퐁당 퐁당 바다로 떨어졌나...
내 시선을 알아차린 듯 사람들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일제히 내가 있는 등대를 쳐다봤다. 그들은 한결같이 평화롭고 행복한 미소를 피고 있었다. 텅 빈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사람들의 노랫소리에 온몸이 떨려왔다. 왜 이러는 거지? 방금 룬을 건드려서 그런 건가? 룬으로 고개를 돌리자, 다시 눈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당신에게 귀속된 힘입니다. 당신은 홍혈의 제독님의 계승자이시니 이 힘은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의 목소리로 종들을 부리십시오. 저들이 당신에게로 오고 있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저들을 조종하십시오.
숙명 같은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메아리졌다. 그것은 나와 엄마가 같은 존재라고 알려주려는 듯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그녀의 딸이기에, 그녀의 능력과 의지를 물려받아야 한다. 내가 입을 열어 말하면 이 세계는 내 뜻에 따라 미쳐갈 것이다.
휴대폰 진동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울렸다.
<알카이드>
사람들이 등대로 가고 있어.
위험하니 일단 내려오지 마.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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