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7. 23:11ㆍ현대 편/여름 메인 스토리
[로지타]
프로그램이요? 제가 언제...
내가 입을 열자 남자는 내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조용해졌다.
[알카이드]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군요.
남자는 갑자기 상기된 표정이 되었다.
[???]
그릴 리가요! 계속 그 프로그램을 듣고 있는데, 잘못 본 것 같다니요!
풍경 소리가 울리더니, 옆에 있는 음료 가게의 문이 열렸다.
[주인 할머니]
조세이아, 사람들이 겁먹잖아요.
주인으로 보이는 상냥한 얼굴의 할머니가 가게에서 나왔다. 감정 이 격해진 남자를 보고도 그녀는 전혀 놀라지 않고 가만히 그를 달랬다.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자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주인 할머니]
일단 돌아가요, 어서요.
남자는 나와 주인 할머니를 몇 번이나 번갈아 봤지만,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 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주인 할머니]
정말 미안해요, 조세이아는...
노랫소리가 멀리서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세이아]
얼마나 많은 달이 등대에 올라...
주인 할머니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 할머니]
두 사람만 괜찮으면 안에서 커피나 한잔 마시면서 마음 좀 가라앉혀요.
가게는 굉장히 독특했다. 현대식으로 개조했지만, 많은 식물과 장식이 섬 특유의 원시적인 소박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벽에 걸려 있는 여러 폭의 그림이었다. 분명 한 사람이 그린 것이다. 기교는 상당히 뛰어났지만, 붓 터치에서 언뜻 억눌린 화가의 감정이 느껴졌다. 주인 할머니가 다가와 나와 알카이드에게 커피를 따라주었다.
[주인 할머니]
정말 미안해요.
[로지타]
방금 그 사람은...
조금 전 일을 물어보려 했지만, 말을 멈췄다. 알카이드의 손끝이 살며시 내 손바닥을 스쳤기 때문이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알카이드]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도화주셔서 저희가 감사하죠.
뒤늦게야 이것이 할머니가 우리에게 하는 두 번째 사과라는 게 떠올랐다. 조세이아라는 남자가 할머니에게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질문하다니... 내가 너무 무례했다. 주인 할머니는 우리 행동을 눈치채고 이해한 듯 미소 지었다.
[주인 할머니]
괜찮아요, 조세이아에 관해 묻고 싶은 거죠? 그는 마음씨 좋은 화가예요. 여기서 십 년 넘게 살았죠.
[로지타]
화가요? 그럼 벽에 있는 저 그림들이...
[주인 할머니]
조세이아가 그린 거예요.
어쩐지 그림이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했다... 주인 할머니는 조세이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주인 할머니]
옛날에는 지러지 않았어요. 심에 막 왔을 땐 평범했죠. 여긴 경치가 좋아서 영감이 생긴다며, 근처에 집을 빌려 그림을 그렸어요. 그때는 우리 가게에 자주 와서 커피도 마시고, 자기가 그린 그림도 선물하고, 영업 아이디어도 많이 내줬어요. 얘기하다 보니 고마운 게 참 많았네요. 하지만 후에 무슨 일인지 조세이아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평소에는 등대를 보고 노래만 부르고, 무슨 라디오 프로그램을 중얼거릴 뿐 다른 사 람을 방해하지는 않았는데... 오늘처럼 저렇게 흥분한 모습은 거의 처음이에요.
[로지타]
라디오 프로그램...
반사적으로 그 말을 되되던 나는 하마터면 커피잔을 놓질 뻔했다. 알카이드가 가만히 내 손을 잡고 커피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알카이드]
그렇군요. 많은 얘기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알카이드가 할머니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커피를 다 마신 후 그는 기어이 주인 아주머니에게 계산을 하고는 나를 데리고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알카이드가 발걸음을 멈췄다.
[로지타]
...선배?
[알카이드]
로지타, 나도 너랑 같이 산책하고 싶긴 한데,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알카이드를 끌고 여름 캠프에서 마련한 숙소를 지나쳐 계 속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로지타]
미안해요...
몸을 돌리려는데 알카이드가 내 손을 살짝 잡아 나를 멈춰 세웠다.
[알카이드]
아까 라디오 프로그램 얘기가 나온 뒤로 정신이 계속 딴 데 가 있는 것 같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분명 질책한다고 받아들였겠지만, 알카이드의 부드러운 말투는 순전히 걱정돼서 하는 말이었다.
[알카이드]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로지타]
...네.
말하고 안 하고는 내 뜻에 달려 있다는 듯, 알카이드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로지타]
선배, 내 방에 잠깐 와줄 수 있어요?
[알카이드]
응...?
잠시 정적이 흐르자, 문득 내가 한 말이 다른 뜻으로 들릴 수 있다는 생각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로지타]
아니, 잠깐만요. 그런 뜻이 아니라...
알카이드가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리며 허공을 휘젓는 내 손을 잡았다.
[알카이드]
알아, 들어가서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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