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노랫소리

2024. 6. 27. 23:10현대 편/여름 메인 스토리

[블루 아일랜드] 이벤트 스토리와 이어집니다.


 하루 종일 하던 스케치를 끝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다와 점점 가까위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힘껏 기지개를 켰다. 고개를 돌려보니, 알카이드가 몸을 숙이고 바닥에 흩어진 미술 재료를 하나씩 주우며 날 대신해 정리해주고 있었다. 조금 미안한 마음에 괜히 웃자, 알카이드도 씽긋 웃었다. 


[알카이드]

하루 종일 과했잖아. 스케치 과제는 내가 대신 못 해주지만, 이런 사소한 건 도와줄 수 있어. 


​[로지타]

그림 그릴 때면 꼭 선배를 푸대접하게 되네요...

 

[알카이드]

그렇지 않어 난 기꺼이 네 곁에 이렇게 있고 싶어. 


 뭔가 말하려고 머뭇거리는데 그가 옆자리를 탁탁 두드렸다. 

 

[알카이드]

아니면 이번에 나랑 같이 일몰 봐줄래?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완전히 지고 달이 점점 떠오를 때까지, 우리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댄 재 가만히 흥얼거렸다. 

 

[알카이드]

그러고 보니 네가 불러주는 노래는 처음 듣는 것 같다. 

 

[로지타]

잘 부르죠? 

 

[알카이드]

응, 엄청. 


​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로지타]

​내가 뭘 불러도 선배는 잘 부른다고 할 것 같아요. 


​ 내가 믿지 않는다는 듯 말하자, 알카이드가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알카이드]

​정말이야. 음색이 굉장히 부드러운데 힘이 느껴져. 그나저나 그 노랜 가사가 없어? 


​ 그의 질문에 잠시 멍해졌다. 

 

[로지타]

모르겠어요... 그냥 이 경치를 보다 보니 갑자기 떠올랐어요. 예전에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깊은 생각에 잠긴 내 표정이 너무 막막해 보였는지, 알카이드가 웃음을 지었다. 

 

[알카이드]

​괜찮아. 생각이 안 날 땐 멜로디만 있어도 좋으니까. 네 말대로, 네가 뭘 불러도 어떻게 불러도 다 듣기 좋아. 


 알카이드의 칭찬에 나는 가사도 없는 이 곡을 계속해서 흥얼거렸다. 멀리서 희미하게 따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많은 달이 등대에 올라 퐁당 퐁당 바다로 떨어졌나...


 어렴풋이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분명 부드러운 멜로디인데 이렇게 기이한 목소리로 가사도 잘 들리지 않게 엉망으로 부르다니, 뭔가 기분이 이상해졌다. 나는 흥얼거리던 걸 멈췄다. 

 

[알카이드]

로지타, 왜 그래? 

 

[로지타]

음... 제가 잘못 들었나 봐요. 


 자세히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였지만 내 착각이었다는 듯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얼굴에 스치는 바닷바람이 점점 차가워져 몸이 으스스 떨렸다. 알카이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쳐주었다. 옷에 남아 있는 그의 온기가 부드럽게 나를 감싸고, 불어오는 바람은 그의 몸에 가로 막혔다. 

 

[알카이드]

좀 춥네. 가자, 바래다줄게. 


 페이먼트 섬에서 느긋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그 작은 사건은 금세 내 기억 속에서 잊혔다. 며칠이 지난 어느 오후, 알카이드와 함께 해변 길을 걷고 있는데 그 노랫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얼마나 많은 달이 등대에 올라 퐁당 퐁당 바다로 떨어졌나...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훨씬 또렷하게 들렸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근처에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아,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도 모르게 손을 꽉 쥐자 알카이드가 손을 맞잡았다. 

 

[알카이드]

겁먹지 마. 로지타, 내가 있잖아. 


 노랫소리가 더 선명해지더니, 우리 앞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남자였다. 깔끔하게 잘 차려입었지만, 시대와 어울리지 않게 오래된 느낌이 들었다. 

 

[???]

얼마나 많은 달이 등대에 올라....


 여기까지 부른 그는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하는 것처럼 표정을 바꾸며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무래도... 정신이 약간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다행히 상대방은 우리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지 이내 눈길을 돌리고 가던 길을 갔다. 

 

[???]

퐁당 퐁...


 알카이드가 나에게만 들리게 목소리를 낮췄다. 

 

[알카이드]

로지타, 일단 다른 데로 가자. 


​[로지타]

이 노래는...


 내 목소리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입을 떼자마자 등 뒤에서 들려오던 노랫소리가 뚝 끊겼다. 우리를 스쳐 지나갔던 남자는 재빨리 걸음을 돌려 다급히 나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알카이드가 빠르게 그를 떼어냈다. 

 

[알카이드]

무슨 일이시죠?


조용하지만 예의 바르게 질문을 던진 알카이드는 앞으로 나오더니 상대와 내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 사람은 다시 손을 내밀지 않고, 기대에 찬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

한 번만 더... 말해줄래요? 


 나와 알카이드는 눈빛을 교환했다. 이내 알카이드가 내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로지타]

무슨 말이요? 

 

[???]

이 목소리... 바로 이 목소리야! 당신 프로그램을 계속 듣고 있었어요. 목소리가 너무 좋으세요!

'현대 편 > 여름 메인 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6화. 노랫소리  (0) 2024.06.27
5화. 희미한 등대 그림자  (0) 2024.06.27
4화. 약속  (0) 2024.06.27
3화. 구식 라디오  (0) 2024.06.27
2화. 이상한 화가  (0) 2024.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