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3. 00:32ㆍ비밀의 여정/추억 편
그 길로 나와 예신은 고향으로 향했다. 고향의 작은 집에 도작하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밤이 늦어, 예신은 다음 날 다시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혼자 남은 나는 집을 발각 뒤집 어보았다. 책장과 수납장, 심지어 창고까지 구석구석 뒤졌다. 그럼에도 아빠와 관련된 실마리는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 그 어느 곳에도 엄마뿐이었다. 아빠의 흔적은 인위적으로 지위졌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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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예신과 함께 엄마의 묘지로 향했다. 마을 북쪽의 산비탈, 아담한 묘비들 사이로는 파란색 히아신스가 가득 피어 있었다.
[예신]
그녀는 푸른 히아신스를 특히 좋아했지. 네 엄마는 모든 것을 포기했어. 오로지 배 속에 품은 너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야.
엄마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니...?
[예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녀는 네가 평범하게 살아가길 바랐어. 정말로 진실을 알고 싶니? 모든 것을 알고 난 뒤엔... 평온한 삶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어.
평범한 삶을 살기 바랐다니. 진실은 내가 상상도 못 할 만큼 끔찍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면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도 안 되고.
[나]
엄마와 예신이... 나를 지켜주고 있었군요. 고마워요. 하지만, 나는 진실을 알아야겠어요. 내 미래는 내가 직접 선택할 거예요.
예신은 지그시 내 눈을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 같았다. 잠시 후, 그는 가법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신]
네 뜻을 존중하마. 그래. 삶의 주인은 자신이지. 너 역시 네 미래를 직접 선택할 권리가 있어. 전부 말해줄게.
예신은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작부터 터무니 없는 소리였지만, 내 예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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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신과 엄마는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발달된 문명 사회에서 왔다. 그곳은 다른 평행세계에서 획득한 자원으로 삶을 영위한다고 했다. 예신과 엄마는 사명을 받고 평행우주를 넘나들었다. 그들의 임무는 지적 생물의 문명을 찾아내고, 그곳 생물의 감정과 생명력을 빼앗아 그들의 세상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중 예신이 맡은 세계가 바로 에르세르 대륙이었다. 그는 특수한 약품으로 마법사를 만들어내고, 얼음 나비를 통해 에르세르 인들의 감정과 힘을 흡수했다.
그리고 엄마가 맡은 세계가... 바로 이곳, 지구였다.

엄마는 타인의 감정을 조종하는 능력을 지녔다. 음성과 시선으로 접촉 대상을 통제하는 것이다. 엄마는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자 사람들의 감정을 오염시켰다.
그녀는 평범한 사람으로 위장해 조용한 소도시에 살며 매스미디어와 인터넷망을 이용했다. 얼굴을 드러내지도, 활발히 활동하지도 않았지만 엄마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전세계 로 퍼져나갔다. 미디어나 웹사이트를 통해 엄마의 목소리를 접한 이들은 저도 모르게 감정이 오염되었다. 신중하고 치밀했던 그녀는 정체가 발각되기 전 제 흔적을 지웠다. 그리고 익명으로 수많은 노래와 자잘한 음성 파일들을 인터넷에 배포했다. 온 세상에 일파만파 퍼져나간 그 파일의 출처를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다.
점차 세상은 변해갔다. 불안이 쌓여갔고,끔찍한 사건 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이유를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회도 흉흉해진다고만 여겼다. 그러는 사이, 엄마의 음성은 더욱 더 멀리 퍼지고 점점 더 깊이 파고들었다. 지구의 기술로는 이 수많은 음성 신호가 한 인물에게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절대 알 아낼 수 없었다.
엄마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눈꽃을 하나씩 떨어뜨렸다. 최후의 눈사태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