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024. 5. 13. 00:31비밀의 여정/추억 편

나는 진실을 알아야 해. 우리 엄마, 예신, 그리고 나에 대해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조나단 이사장의 사고 직후 예신도 학교로 돌아왔다. 나와 카이로스는 주요 참고인으로 소환되어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조나단 이사장이 학교 부지 내에 몰래 증축한 지하 실험실에서 불법적인 연구를 진행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으로 결론 지었다.
 붕괴 직전 실험실에서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것은 나였지만, 내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단서들은 이상하리만치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카이로스]
뜬금없이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Emerald 교수님을 조심해. 
 
카이로스도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듯했다. 나는 사실 진즉 예상하고 있었다. 예신이 이 일에 개입하리라는 것을.

 에르세르에서 나는 예신, 아니, 실버나이트를 여러 번 마주쳤다. 그는 소름 끼칠 정도로 주도면밀하고, 막강한 상대였다.

 게다가 그는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는 데 누구보다도 능숙했다. 상대가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그가 휘두르는 검에 결코 망설임이라곤 없다.

 그는 체스판을 지배하는 플레이어 같은 존재였다. 내가 알던 모습을 완전히 배반하는 예신의 실체를,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피할 수도 없었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에르세르 대륙, 예신, 그리고 나와 나의 세계에 대해... 예신의 의도는 무엇일까. 만약 그가 나의 세계까지 파괴하려 한다면 막아야 한다. 
 나는 이사장실에서 마침내 예신과 마주했다. 그는 느긋한 태도로 화초에 물을 주고 있었다. 물줄기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예신은 매사에 침착했다. 그것이... 대륙 전체를 파괴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깊게 심호흡하고 그를 불렀다. 
 
[나]
예신.
 
 예신은 그제야 나를 돌아봤지만 내게 다가오진 않았다. 그에게선 어떤 위협도 느껴지지 않았다. 
 
[예신]
널 다시 만난다면 어떻게 대할지 수없이 고민했어. 하지만 막상 널 보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구나. 
 
예신은 쓴웃음을 지었다. 
 
[예신]
네게 진실을 알려줄게. 우리 사이의 신뢰는 깨졌지만, 널 적으로 삼고 싶지 않아. 
 
 예신의 얼굴에서 드물게 긴장이 엿보였다. 어색한 침묵에 이어, 그가 말했다. 
 
[예신]
나는 예신인 동시에 실버나이트인, 평행세계 속에서 단 하나뿐인 개체지. 바로 너처럼 말이야.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예신]
에르세르에서의 임무는 실패했다. 이제 내가 그 세계를 건드리는 일은 없을 거야. 
 
 그렇다 해도, 불안이 말끔하게 해소되진 않았다. 근본적인 의문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나]
예신의 진짜 정체를 알고 싶어요. 대체 그 임무라는 게 뭔지도요. 
 
 예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은 그는 이내 나직이 말했다. 
 
[예신]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군. 고향집으로 가자. 네 엄마가 있는 그곳에서... 모든 것을 알려줄게. 
 
이게 무슨 소리일까. 고향집, 그리고 엄마라니. 이미 돌아가신 엄마는 현재와 미래에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다. 그런데 어째서...? 설마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니겠지?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예신이 입을 뗐다. 
 
[예신]
그간 시공을 넘나들며 너와 나의 수많은 대립과 충돌을 엿봤겠지. 그 어느 때에도 내가 널 다치게 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해줘. 너와 나의 관계를 이어준 사람이 바로 네 엄마야. 그리고 그녀는 내 정체와 임무와도 깊은 관련이 있지. 그래서 그곳에 가자고 한 거야. 네가 진실을 아는 날이 온다면, 네 엄마는 그 자리에 함께 있기를 바랐을 테니까. 의심하거나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내 능력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 했었지. 엄마는 예신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엄마도 나처럼 그림 소울을 사용했을까? 예신과 엄마는... 같은 목적을 지났던 걸까? 

 내 기억 속의 엄마는 특별하거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구석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녀는 자기 일에 열심이고 퇴근 후엔 외동딸에게 정성을 쏟는, 전형적인 위킹맘이었다. 엄마 회사의 동료들이 집에 놀러 온 적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엄마를 유능한 인재라고 칭찬했다. 가끔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지만, 엄마는 혼자서도 늘 꿋꿋했다.
 엄마는 나와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전무하다. 내가 세 살 때 돌아가신 아빠는 나를 많이 사랑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빠의 사진조차 본 적이 없다. ...이상하다. 엄마는 내게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더 나아가, 아빠에 대한 어떤 호기심도 갖지 못하게 했다. 내 삶에서 아빠는 흔적도 없이 도려내졌다. 이제 보니 예신의 수법과 흡사하게 느껴진다. 
 
[나]
좋아요, 가요. 
 
 예신에게 대답했다. 엄마와 예신,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진실을 마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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