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2024. 5. 13. 00:34비밀의 여정/추억 편

 

 
 눈은 소리 없이, 끊이지 않고 내렸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그 눈이 시작된 곳을 찾아 나섰다. 그는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였다. 그는 많은 환자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이 특정 소리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한 그는 근원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역시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그 과정에서 엄마가 만든 환상 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비정상적으로 환자가 증가했다는 곳을 찾아 병원을 이전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그는 엄마가 사는 작은 도시까지 흘러들어왔다. 산비탈에 파란색 히아신스가 가득 피어 있던 어느 봄날, 두 사람은 만났다. 사실 그들의 만남은 엄마의 의도 하에 이루어졌다. 일개 나약한 인간이 제게 맞서려 한다는 점이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명문 의대를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그가 이런 시골까지 내려온 것이 신기하다며 운을 뗐다. 그동안 그녀는 그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보통은 불과 몇 초 만에 그녀의 완벽한 꼭두각시가 되고 마는, 가장 직접적인 정신 지배였다. 그녀는 그의 기억과 지식을 통해 이쪽 세계가 현재 정신 오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보를 수집했는지 알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는 수줍게 얼굴을 붉히더니 시선을 돌려 주변에 핀 꽃을 바라보기까지 했다. 
 
[남자]
참 아름우시군요... 아, 꽃을 말한 겁니다. 아, 아니! 그렇다고 당신이 아름답지 않단 뜻은 아니고요! 크윽, 초면에 이게 무슨 실례인지...
 
 그녀는 경악했다. 이 남자에겐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았다.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사정을 알 리 없던 젊은 의사는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다. 
 
-

 그리고 단숨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사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있어 그는 그저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그녀가 제어할 수 없는 유일한 상대였으니. 그는 그녀의 눈을 오랫동안 쳐다보다가도 수줍은 듯 고개를 돌렸고, 그 좋은 입담은 그녀의 앞에선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런 그를 끊임없이 굴복시키려 했고, 마침내 성공했다. 그러나 그녀가 의도한 방식대로는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향한 순수한 마음 앞에서 제 스스로 무릎을 꿇었고, 그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기분을 마주했다.

 그의 끈질긴 구애 끝에 두 사람은 결혼했고, 이듬해 딸을 품에 안았다. 그게 바로 나였다. 
 
[남자]
웃는다, 웃는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야! 
 
 그는 항상 그녀를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런 그를 보며, 그녀는 쓴웃음을 삼켜야만 했다. 그녀는 제 속에 들끓는 이 혼란을 명확히 정의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째서 제 능력 이 그에게만은 통하지 않는지 여전히 궁금했으며, 이유를 알기 위해 그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끝내 그녀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비극이 벌어지기 전까지, 아무것도...
 
꽤 오랫동안 그녀의 임무에 진전이 없자, 한 부하가 지구에 잠입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상 상태를 발견했다. 저돌적이었던 부하는 거리낌 없이 장애물을 제거했다.
 외출했다 이상한 느낌에 집으로 달려온 그녀는 드레스룸 앞에서 쓰러져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그가 무언가를 지키려다 변을 당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소중한 사랑의 결실, 딸을 지키기 위해 그는 제 목숨을 기꺼이 버린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힌 그녀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생명체의 감정을 통제하고 공격하는 전사였다. 스스로는 감정의 영향을 받는 일이 절대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완전히 폭주했다.
 그를 잃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가슴이 통째로 허물어졌다. 참을 수 없는 상실감,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이 그녀를 지배했다. 그녀는 제 부하를 잔인하게 처 처함으로써 복수를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간 딸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끔찍한 공포가 엄습했다.

안돼...!절대 안 돼! 
 
[예신]
그녀는 오래도록 정체를 알아낼 수 없었던 그 혼란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달았다고 했어. 그 감정이 자신을 상처받게 하고 두려워 할지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후회는 없다고 했지. 확실히, 무기로서 남을 파괴할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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