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1. 16:01ㆍ비밀의 여정/추억 편
에르세르 대륙 열람 후 읽는 걸 추천합니다.
학교에 새로운 이사장이 왔다...
학기 초,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다. 학생들은 여전히 별들의 경연에서 벌어진 사고와 조나단 이사장의 사망 사건에 대해 수군거렸다. 그러나 이 수상한 일의 원인에 대해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단체로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말이다. 학사 일정으로 바빠지며 모두는 금방 일상으로 돌아갔다.
[예신]
지난번에 못 한 이야기가 있어. 내가 없는 동안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신임 이사장에게 직접 도움을 청하도록 해. 그 사람한테는 이미 부탁해놨어.
[나]
저 혼자서 잘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한테 폐 끼치기 싫어요...
[예신]
나도 널 믿어. 하지만 누군가와 의논하는 건 좋은 일이니까. 신임 이사장은 믿을 만한 사람이야. 나는 물론 너희 어머니와도 아는 사이지. 거기다 네가 있는 지금 세계의 보통 사람이니, 안심하고 믿어도 돼. ...곧 만나게 될 거야.
마침 신임 이사장의 호출을 받아 이사장실로 가는 길이었다. 엄마와 예신의 지인이자 '이곳' 사람이라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
본관에선 카이로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이로스]
왔구나. 이사장님은 안에 계셔.
사무실 안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카랑카랑하고 힘 있는 목소리였다.
[???]
아인 학생. 비바체 클럽이 주말마다 열리는 연주회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입장료를 받는다고 하던데.
아인도 불려왔구나. 그나저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아인]
입장료 관련은 제 소관이 아닌데요.
[???]
글쎄. 입장료의 대부분을 벌어들이는 이가 아인 학생이라고 들었거든
[아인]
......
앗, 이사장님이 원가 오해한 모양이다.
[???]
아아,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 비바체 클럽의 입장료 수익은 공연 운영과 자선단체 기부금으로 사용된다는 걸 아니까. 나로선 문제 삼을 이유가 없잖아?
[아인]
......
[신임 이사장]
내가 오늘 아인 학생을 부른 건, 학교 대표 연말 전국 순회공연에 참가해달라고 제안하기 위해서야. 물론, 비바체 클럽도 함께. 어때?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잠시 후, 아인이 대답했다.
[아인]
답을 정해놓고 물으시는군요.
[신임 이사장]
무슨 소리야? 학교 활동의 참가 여부는 오로지 학생의 의지에 달려 있는걸.
[아인]
좋아요. 참가하죠.
사무실을 빠져나오는 아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는 카이로스와 내가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자리를 떴다. 나는 긴장해선 카이로스를 따라 이사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신임 이사장은 깔끔한 정장 차림의 이지적이고 세련된 여성이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어라? 알카이드?
[신임 이사장]
알카이드 학생. 스승인 조나단 교수를 잃은 천문학과 학생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해. 알카이드 학생이 카이로스 회장을 도와 학우들을 다독이는 데 힘써주길 바래.
[알카이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사장님.
신임 이사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신임 이사장]
지난달에 컨퍼런스에서 알카이드 학생의 부모님을 뵈었는데, 알카이드 학생이 어머님을 많이 닮았네. 굉장히 따뜻한 분이시던데, 그래서 알카이드 학생도 상냥한가 봐.
신임 이사장은 알카이드의 부모님과도 아는 사이인 모양이다. 예신은 신임 이사장이 '이곳의 '보통'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언뜻 봐도 신임 이사장은 보통 사람이 아닌 듯했다. 알카이드가 나가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나]
아,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저는...
[신임 이사장]
네가 그 학생 맞지? 세상에! 귀엽다는 소리가 빈말이 아니었네.
어...?
[신임 이사장]
어쩜! 너무 예뻐! 혹시 모델 같다는 소리 자주 듣지 않니?
[나]
아,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보기보다는 유쾌한 사람 같았다. 내 어느 부분이 감성을 자극했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귀여워 못 견디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신임 이사장]
아, 어머! 내가 주책을. 초면에 미안. 최근 디자인 구상 중인 옷이 있는데, 학생에게 딱 어울릴 것 같아서 그만 흥분해 버렸네.
[나]
의상 디자인 전문가시군요?
[카이로스]
이사장님은 여러 학위를 갖고 계신데, 패션 디자인도 그중 하나래.
[신임 이사장]
전문가 소리 들을 정도로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취미야.
이사장은 내게 손을 내밀며 정식으로 인사를 건넸다.
[엘리샤]
반가워. 나는 엘리샤. 세인트 셀터 학원의 이사장을 맡게 되었어. 예신에게서 널 부탁받았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날 찾아와. 뭐든지 좋으니 부담 갖지 말고. 이래 봬도 나, 꽤 믿음직한 사람이거든.
[나]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네. 몇 마디 더 나눈 뒤, 나는 이사장 사무실을 나왔다.
-
오늘의 마지막 수업인 교양 과목 강의가 끝나고, 교문을 나설 무렵,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엘리샤]
집에 가는 길이니? 내가 태워다 줄게!
엘리샤 이사장이었다. 그녀는 생전 처음 보는 슈퍼카를 몰고 있었다.
[로샤]
엘리샤?
로샤가 불쑥 나타났다.
[로샤]
일 때문에 잠깐 들렀는데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네. 엘리샤, 또 새 차를 샀군. 이번 애마는 더 굉장한걸?
[나]
로샤? 이사장님을 잘 아세요?
[로샤]
아아, 집안끼리 친분이 있거든. 엘리사는 '스카이실크' 그룹 오너가의 장녀야.
스카이실크 그룹... 이라고? 앗, 나 거기 옷 좋아하는데! 너무 비싸서 자주는 못 사 입지만. '스카이실크'는 젊은 층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고급 패션 브랜드다. 그런 사람이라면, 이사장직이야말로 취미일지도...?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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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슈퍼카를 얻어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까지 가는 길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엘리샤]
필요한 게 있다면 눈치 보지 말고 언제든 말해. 꼭이야.
[나]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엘리샤]
내일 사람을 시켜서 새 화구를 좀 보내줄게. 자주 쓰는 것들은 넉넉하게 쌓아두면 좋잖아?
[나]
아... 아니에요! 그러실 필요 없는데...!
[엘리샤]
우리의 첫 만남을 기넘하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꼭 예신의 부탁 때문에 이러는 것만은 아니야. 네가 내 마음에 쏙 들었거든.
엘리샤는 씩 웃었다. 그녀의 표정과 태도에 꾸밈이라곤 없어 보였다.
[엘리샤]
다음에 만나면 편하게 대해줘. 알았지? 네가 세인트 셀터에서 뜻깊은 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좋겠어.
그녀는 다정한 인사를 남긴 후 홱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돌아섰다. 엘리샤 이사장님은 정말이지 개성이 넘치는 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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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게 밥을 준 뒤 나도 저녁을 먹고 회화 과제를 시작했다. 새로운 이사장의 부임에 학교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려나... 창밖을 내다보니, 맑고 깨끗한 밤하늘에 별이 총총 박혀 있었다. 내일은 날이 맑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