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먼트 섬에 오래된 유적지가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심을 한 바퀴 둘러본 뒤 이 유적 전망대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나와 흥미가 같은 사람이 있었다.
[나]
왠지 뒷모습이 익숙한데... 예신인가?
기대감에 부푼 내 발걸음이 그를 향해 가법고 빠르게 다가갔다. 그러자 누가 다가오는 낌새를 알아챈 그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예신]
너...
예신은 나를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고 내게 다가왔다.
[나]
정말 예신이었네요!
[예신]
네가 일정표에 오늘 이 유적 전망대에 올 거라고 적어놨길래 한번 와봤어. 어쩌면... 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
예신이 요 며칠 여름 캠프 관련 일로 바쁘다는 얘기를 들어서 이렇게 혼자 나온 건데... 일을 다 끝냈나보네요? 엄청 빠르다!
[예신]
응, 일 끝내고 여기로 왔지. 널 만나려고.
나와 예신은 유적 전망대를 한 바퀴 둘러본 뒤, 등대에 올라가 바다 위에 있는 석주 유적을 바라보았다. 전단지에 끼어 있는 작은 카드에는 '인터랙션 아쿠아리움'이라 적혀 있었다. 이벤트 체험권인 것 같다.
[나]
재미있을 것 같네요. 이 섬에 있는 건가?
[예신]
맞아. 전단지에 지도가 그려져 있군. 관심 있으면 한번 가 볼래?
[나]
네!
[예신]
그럼 내일 여기에서 볼까?
[나]
좋아요, 약속!
-
섬 둘레길에서 탁 트인 페이먼트 섬의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 좋은 스케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나는 예상 밖의 풍경을 기대하며 캔버스를 챙겨 나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마주쳤다.
알카이드가 차를 몰고 가다 내 옆에 멈춰 섰을 때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찌감치 여름 방학 일정을 잡아놨는지, 알카이드는 여름 캠프에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섬에서 마주칠 거는 건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차창이 내려가고, 나는 그와 잠시 조용히 눈을 마주쳤다. 바닷바람이 그의 앞머리를 가법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먼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알카이드]
안녕.
[나]
안녕하세요, 선배.
알카이드가 내게 할 말이 있다면, 굳이 내가 묻지 않아도 스스로 설명해줄 거라 생각했다. 나를 바라보던 알카이드가 갑자기 살짝 웃었다. 밖은 너무 더우니까, 일단 차에 타. 해가 가장 강하게 내리쬐는 오후, 나무그늘 하나 없는 이 태양아래에 몸이 녹아내리진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조수석에 올라타자 차 안의 시원하고 쾌적한 공기가 덮쳐왔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웃음기가 더 진해졌다.
[알카이드]
널 데려가려고 온 거라면?
[나]
납치하려는 선배의 차에 올라타 버렸다니.
나는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카이드]
그래도 아직 차에서 내릴 기회는 있어.
[나]
아니요! 차 안이 얼마나 시원한데요. 끌려가는 거라 해도 내리지 않을 거예요!
[알카이드]
네가 이렇게 나오면, 널 데리고 갈지 여부는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겠어.
작은 웃음기를 띈 작은 탄식 소리가 소리 없이 바닷바람 속으로 녹아들었다. 알카이드는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내게 들려주었다.
[알카이드]
원래 가족들이랑 같이 오기로 했었어. 그런데 여름 캠프도 여기서 한다고 하길래, 네가 보고 싶어지더라고.
[나]
그럼 이후 일정은 선배도 같이하는 거예요?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나]
선배가 여름 캠프에 오지 못한다는 걸 알고 많은 학생이 아쉬워했거든요.
특히 내가 그랬다. 알카이드는 내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부드럽게 웃었다.
[알카이드]
물론이지. 내 숙소는 섬에서 멀지 않아. 언제라도 네가 보고 싶다고 하면 최대한 빨리 올게.
[나]
그럼 약속한 거예요?
[알카이드]
응, 약속.
알카이드가 있는 섬 여행이라니, 기대감이 차올랐다.
-
[안젤리카]
좀 늦었네. 네 방은 저쪽이야. 저 끝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있는 방.
나에게 카드키를 건넨 사람은 뜻밖에도 안젤리카 선배였다.
[카이로스]
짐부터 풀고 좀 쉬어.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으면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각종 시설은 밤늦게까지 영업하고, 해변의 캠프파이어도 계속 진행될 거야. 아까 누가 캠프파이어 근처에서 담력 테스트를 하자고 하던데, 관심 있으면 참가해 보든지.
마지막 말을 하는 순간에는 내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예신]
괜찮은 제안인 것 같아. 다들 이 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뭔가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뒤에서 갑자기 열정 가득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벤자민]
너 아인 만났지? 본 적 있어?
[나]
아인 선배는 이 호텔에 안 묵나요?
[벤자민]
아직 못 찾았어...
[카이로스]
행사 일정으로 정해진 호텔 외에 자비로 바깥 섬에 묵는 사람도 있거든. 이건 여름 캠프 신청 때 제한하지 않았어.
나는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이 다른 사람 눈에 띄고 싶어하지 않았던 거라면, 절대 자신을 찾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모두와 헤어졌는데, 갑자기 휴대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