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2. 19:03ㆍ이벤트 스토리-2021/블루 아일랜드
배에서 내리자, 학생들은 짐을 풀기 위해 숙소로 가거나 해변 근처로 놀러 가는 등 일제히 흩어졌다. 나는 들고 갈 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인파를 따라 느릿느릿 걸었다. 처음에는 같은 방향으로 가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 관광객이 점점 많아지며 배에서 봤던 진구들은 금세 흩어졌다.
<아인>
어디로 갈 거야?
맞춰봐.
아니면... 내 쪽으로 오겠어?
아직 과제가 엄청나게 쌓여 있어요.
죽겠어요 아주!
휴대폰만 봐서는 아무것도 못 끝내.
과제부터 먼저 마치도록 해, 화가 아가씨.
사실 페이먼트 섬에 뮤직 페스티벌이 열려서 말이야.
여름 캠프 자체에는 흥미 없지만 그냥 같은 방향이라서 탔어.
일을 다 끝내면 남는 표를 줄게.
휴대폰을 내려놓자 바닷바람이 얼굴을 덮쳐왔다. 저 앞엔 갈매기 몇 마리가 낮게 날아가고, 물보라가 규칙적으로 백사장에 밀려왔다. 아무래도... 그림 소재를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다.
-
작열하는 태양 아래, 나는 백사장에서 청량음료 부스를 찾았다. 냉장고 안에는 신선한 코코넛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를 고르자 부스 주인이 진절하게 따주며, 저쪽에 있는 쉼터에 앉아 마셔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코코넛을 안고 쉼터로 향하자,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감고 선베드 위에 누운 아인의 옆에는 간이 테이블 위로 빈 코코넛 껍질이 몇 개나 쌓여 있었다. 언제 배에서 내린 거지?
그의 뒤로 조용히 다가간 나는 장난칠 생각으로 기침을 두어 번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나]
이제 가게 문 닫습니다!
[아인]
응.
아인이 눈을 뜨더니, 내 손에서 코코넛을 가져갔다.
[아인]
그럼 이것까지 계산서에 달아놔.
[나]
나인 줄 알았어요? 근데 방금... 자던 거 아니었어요?
[아인]
당연히 안 잤지. 코코넛 셔벗도 아직 못 먹었는데.
몸을 일으킨 아인은 내 코코넛을 확인해 보더니 다시 내게 돌려줬다. 이내 셔벗을 입에 넣은 아인의 손이 스푼을 쥔 채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아인]
바뀌먹을래?
[나]
좋아요.
고개를 끄덕였지만, 작은 테이블 위에 쌓인 빈 코코넛 껍질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나]
하나, 둘, 셋... 넷, 다섯! 아인 선배, 전투력이 굉장하네요.
[아인]
응.
[나]
...칭찬 아니거든요!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이내 커다란 코코넛 셔벗을 가져갔다.
[나]
코코넛 셔벗이 더 달 것 같아요. 선배의 당분 섭취를 제가 줄여드리죠!
나는 아인의 맞은편에 앉아 차가운 코코넛 워터를 마셨다. 시원함이 온몸을 감싸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안겨다 주었다.
[나]
선배가 참가하려는 뮤직 페스티벌도 이 섬에서 열려요?
[아인]
응.
[나]
시간은요?
[아인]
일주일 뒤.
속으로 가만히 계산해 보았다. 여름 캠프는 2주간 지속되니, 벼락치기로 밑그림 작업을 끝내면 자유롭게 움직일 시간이 생길 것이다. 나는 아인을 바라보았다.
[나]
그럼 그 시간은 비위놓을게요. 열심히 일한 보상인 셈 치죠, 뭐.
착각인지 아닌지 몰라도, 어렴풋이 가벼운 웃음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아인]
적극적이네.
[나]
그럼 아인 선배는요? 뮤직 페스티벌 말고도 영감을 찾으러 여기 온 거예요?
아인은 고개를 젓고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인]
그런 건 필요 없어. 요즘엔 잠재적 에너지가 넘치거든.
[나]
잠재적 에너지요?
[아인]
응, 어떤 때는 높은 곳에서 툭 떨어져 보고 싶은 충동처럼, 뭔가를 엄청나게 하고 싶어질 때가 있어. 그럴 때면 누구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그냥 빠르게 실행해버리곤 해. 만약 이런 충동이 없으면... 예술적인 창작이 좀 곤란해지지.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쟁이로서 그의 말이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새로운 곡을 쓸 건지, 아니면 무슨 음악을 준비하는지 묻지 않고 그냥 가만히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나]
그럼 나 좀 응원해줘요. 잘 되게 기도해주거나. 이 심에서 흥미로운 영감을 많이 떠올려서, 선배가 말한 그 힘이 잔뜩 쌓였으면 좋겠네요.
바닷바람이 우리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인은 의욕이 넘치는 날 넋이 나간 듯 쳐다봤지만, 이내 살짝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아인]
그래, 힘내. 네가 하려는 일이 순조롭게 해결되길 바랄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
-
바닷가에선 물보라가 끊임없이 암초를 두드리고, 갈매기 떼는 바람에 일어난 파도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
거기 학생, 수영하려면 다른 해변으로 가세요.
[나]
이 목소리는...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햇빛 사이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페이먼트 섬 여름 캠프는 학생회에서 개최한 것이기에 카이로스가 섬에 왔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니었지만, 혼자 바닷가에 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
카이로스 선배가 여기 올 줄은 몰랐네요.
나는 종종걸음으로 그에게 달려가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나]
좋네요, 기운 넘쳐 보이고. 학생회 일이 그리 바쁘진 않나 봐요.
카이로스는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더 니 손에 든 책자로 가법게 내 머리를 톡 쳤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웃어 보였다.
[카이로스]
관련 자료를 수집해서 이 심의 모든 지역에 안전 등급을 매기고 있어. 곧 행사 관련 단체 채팅방에 올릴 거야.
[나]
정말요?
[카이로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풍경을 보러 온 것뿐이야. 페이먼트 심은 이미 개발이 잘 돼 있어서 핫플레이스든 아니든 추천 루트가 있거든. 일단 이 바닷가를 좀 걸어볼 생각이야. 추천 루트랑 맞지 않는 곳이 있다면 바로잡을 수 있겠지. 이렇게 하면 단체 활동 동선도 미리 짤 수 있잖아.
[나]
역시 선배다워요. 무슨 일이든 항상 열심히 하잖아요.
[카이로스]
하는 김에 생각해둔 일을 바로 처리하는 것뿐이야.
[나]
제가 도울 게 있을까요?
[카이로스]
잠깐 시간 괜찮으면, 이 임시 표지판에 표어 좀 써줘. 이 책자에 나와 있는 대로 하면 돼.
고개를 끄덕인 후에야 암초 부근에 있는 임시 표지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회에서 준비한 것 같다.
모래사장에 앉아 표지판에 표어를 적었다. 언뜻 보니 좀 단조롭게 느껴져, 그 위에 표어에 맞는 경고 그림도 그려 넣었다. 책자를 다 적은 카이로스는 고개를 돌려 표지판에 그려진 그림을 보더니 싱긋 웃었다.
[카이로스]
그림 잘 그렸다. 간단명료해서 이해하기 쉬워. 넌 참 세심한 것 같아.
나는 민망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펜을 한쪽에 내려놨다.
[나]
너무 단조로워보여서 그려본 것 뿐이에요. 선배가 그렇게 칭찬해주니 좀 쑥스럽네요.
카이로스는 진심 어린 칭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카이로스]
그림은 문자보다 사람들의 주의를 더 쉽게 끌기도 하지. 맞는 말을 한 거니까 겸손할 필요 없어.
-
내가 도와준 덕분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표지판 만드는 일을 다 끝냈다. 작업을 끝낸 나는 기지개를 켰다.
[카이로스]
이제 정재한이 표지판만 세워주면 끝이야.
[나]
자~ 그럼 학생회장님, 남은 시간은 온전히 우릴 위해 쓸 수 있겠죠?
[카이로스]
그거야 네 다음 계획에 달려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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