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남자 2화

2024. 2. 19. 15:06이벤트 스토리-2020/프린세스 데이 (공주제)

 나는 저 남자로부터 대략 3미터 정도 떨어져 서서 경계하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남자]
으음,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이상한 남자]
카이로스. 네가 얘기 좀 해줄래? 
 
 잠시 후 카이로스는 안경을 고쳐 올리며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카이로스]
방금 추태를 부린 이 선배는...
 
[루카스]
됐다, 내가 할게. 우선, 말없이 따라온 것부터 사과할게. 불쾌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 내 이름은 루카스야. 유럽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불쾌할거라고 생각 못했어.
 
루카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이름인데? 카이로스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로스]
루카스 선배는 세인트 셀터의 전임 회장이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회장 임기 중 각종 황당한 행사들을 개최해 학교에 온갖 폐를 끼진 걸로 유명한 분이시자, 임기 후반엔 대부분의 업무를 당시 신입생이었던 내게 떠넘기고 잠적한 무책임의 아이콘이시며, 오늘은 임기 끝난 지 오래인 학생회장 명의로 멋대로 초대장을 보내고 홍보 포스터까지 붙인, 희대의 자유로운 영혼이시지. 
 
[루카스]
하, 하하... 정말 자세한 소개네...
 
루카스는 찔린다는 듯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루카스]
하지만, 상대편 변호사의 진술엔 동의하지 못하겠는걸? 이 계획은 내가 3일 밤낮으로 생각해낸 완벽한 계획이라고!
 
 '프린세스'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나]
...프린세스 데이에 관한 얘기라면, 카이로스 변호사님의 말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카이로스가 칭찬하듯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마음속에서 엄청난 용기가 솟아났다. 
 
[루카스]
후배님, 고귀한 공주님이 되어보고 싶지 않아? 
 
나는 카이로스를 한 번 보고, 이 불청객을 한 번 본 뒤, 고개를 내저었다. 전임 학생회장이 이런 사람이라면, 다음 선거에서도 반드시 카이로스에게 표를 던져야겠어...
 
[나]
별로요. 
 
[루카스]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덴데? 
 
[나]
별론데요.
 
[루카스]
다음 학기 장학금이 아쉽지 않아? 
 
[나]
별로라고... 자, 잠깐!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루카스는 교활한 여우처럼 눈웃음을 지었다. 
 
[루카스]
후배님이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다음 장학금을 노리며 부단히 노력 중인 것도 알아. 이 선배는 후배님에 관해 많은 걸 알고 있답니다. 
 
[카이로스]
선배님, 선 넘는 발언 계속하시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루카스]
아하하, 카이! 너야말로 혼자 심각한 거 아니야? 
 
 내가 비난의 눈길을 보내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루카스]
서운한걸, 카이. 내가 미술 전공인 거 잊었구나? 후배님과는 곧 조교와 학생으로 만나게 될 거야. 우리 후배님에 대해선 지도교수님께 들었다고. 네 그림을 봤어. 앞으로가 기대되는 실력이더군. 
 
 순간, 이 사람의 이름을 어디서 봤는지에 대한 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세인트셀터 학원에 지원했을 당시, 신입생 모집 팸플릿에서 그림 한 점을 봤다. 색감과 구도가 굉장히 대담했다. 그냥 봐도 훌륭했지만. 자세히 보면 더욱 놀라울 따름이었다. 첫눈에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으면서도, 한참 동안 발길을 붙잡던 그림. 작가의 열정과 자유가 그 작은 그림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마치 처음에는 그냥 맑고 부드러운 음료수인 줄 알았던 것이, 한 모금 마서보니 알콜의 알싸함과 함께 얼얼한 뒷맛을 맛본 것만 같은 기분. 그 그림의 작가 이름이 바로 루카스였다. 이후 그가 학생일 때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들을 많이 봤는데,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독창적이었다. 
 
[카이로스]
선배님이 졸업 학점 못 채웠다는 소문이 자자했는데, 루머였던 모양이네요. 
 
[루카스]
내 평판이 그 정도였다니, 왠지 슬픈데. 후배님이 오해할 만도 했네. 
 
[나]
저, 선배님 작품 많이 접했어요. 굉장한 실력자시던데... 
(하지만 그런 그림을 그린 사람이 어떻게... 당신일 수 있죠?!) 
 
 당시 나는 그림을 그린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지 상상했었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실제 인물을 보고 나니,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카이로스]
어쨌든 선배님은 현 학생회의 어떤 일에도 관여할 수 없습니다. 전임 회장 예우는 해드리겠습니다만, 그 이상은 기대하지 마세요.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카이로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이로스]
프린세스 데이 취소 공지와 해명문도 선배님이 직접 돌리세요. 저는 모르는 일이니깐.
 
[루카스]
미안하지만 카이로스, 이건 네 뜻대로 안 될걸. 
 
[카이로스]
......
 
[루카스]
이건 내가 회장직에서 물러나기 전 마지막으로 승인받았던 행사거든. 총장님과 이사장님도 어제 인정하고 허락하셨어. 
 
루카스는 안색이 어두워진 현직 회장에게 문서 한 부를 들이밀었다. 잠시 후, 문서를 확인한 카이로스는 깊은 침묵에 빠졌다. 
 
[카이로스]
지금... 제정신입니까? 
 
[루카스]
물론 제정신이지. 널 귀찮게 하진 않을 거야. 계획은 내가 다 짜뒀으니 남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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