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세르 대륙(完)(117)
-
13화. 멈춘 시간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상대가 너무 많았다. [한멜] 고급스러운 차림새부터 수상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잭과 아는 사이라니 웬만하면 순순히 보내주려 했다고. 그런데... 감히 실버나이트님의 정보를 캐려 해? 곧바로 그림 소울을 소환해 방어막을 친 나는 반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있는 힘껏 도망쳤다. [한멜] 놓치지 마라! 나는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끔찍한 추위와 몸의 고통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어서 알카이드에게로 돌아가야 해. [한멜] 전원 사격 준비! 반란군은 일제히 활시위를 당겼다. 극도의 공포로 숨이 멎는 듯했다. 안 돼, 여기서 죽을 순 없어. 알카이드, 알카이드...! [???] 이쪽이에요! 자석에라도 이끌린 것처럼, 나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달려갔다..
2024.01.04 -
12화. 도움요청
비밀 통로의 저편에서 빛이 보였다. 출구였다. 나는 통로 한구석에다 알카이드를 눕힌 뒤, 두르고 있던 모포를 벗어 그에게 덮어주었다. 추위 때문인지, 알카이드의 상태는 영 좋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고 알카이드를 무턱대고 주둔지로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반란군이 우리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위험해질 테니까. [나] 제가 올 떄까지 기다려요. 차디찬 그의 뺨을 어루만져 데워준 뒤,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마음이 급해 남은 길을 전력으로 내달렸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살인적인 칼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춥고 황량한 설원이었다. 눈 덮인 숲에선 늑대 울음소리까지 들려왔다. 나는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방향을 가늠한 뒤 다시 바람에 맞서 달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목소리]..
2024.01.04 -
11화. 순찰병
알카이드를 안고서 기나긴 암흑을 헤쳐나갔다. 티아라가 어느 정도 버텨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알카이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사방이 밝아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여긴... 빈민가 근처? 두 사람을 다 전송시기기엔 역부족이었는지, 우리는 에르세르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당장 카이로스의 공격을 피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알카이드는 정신을 잃은 채 힘없이 내게 기대어 있었다.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서 부축하던 순간, 손끝으로 불길한 감촉이 전해졌다. 뜨겁고 축축한... 피! 동시에 저편에서 발소리가 어지러이 울렸다. [순찰 중인 호위병] 인기척이다! 이쪽이야! 누구냐! 소속을 밝혀라! 황실 호위병 차림의 병사들이 우리를 발견하고서 곧장 다가왔다. [순찰 중인 호..
2024.01.03 -
10화. 과거의 별
또 한 번 세상이 뒤집혔다. 눈앞엔 단편적인 영상들이 스쳤다. 이건...? 알카이드의 기억이다. 카이로스가 셜린을 뺏어가던 날. 알카이드가 고작 열한 살이었던 그때였다. [셜린] 오빠...! 오빠, 흐흑...! 동생부터 먹이고 돌보는 바람에 알카이드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빈사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는 죽을힘까지 짜내 카이로스를 뒤쫓았다. 마침내 카이로스가 걸음을 멈추고 알카이드를 돌아봤다. 알카이드를 지탱하던 정신력이 한계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카이로스] 어린 녀석이 제법 분노를 잘 다스리는구나. 고통을 참는 데도 능한 것 같고. 카이로스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티는 알카이드를 흥미롭게 내려다보았다. [카이로스] 마음에 드는군. 돌연, 창백한 빛이 알카이드의 주변을 감쌌다. 기적 같은 광경이었..
2024.01.03 -
9화. 수호자
알카이드는 카이로스가 퍼붓는 얼음 마법 맹공을 빛의 장막으로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빛의 장막은 대마법사의 손짓 한 번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알카이드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조금 전의 공격으로 가슴께에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알카이드] 크윽...! [카이로스] 고작 그 정도의 힘으로 운명을 거스르려 했다니. 한심하구나, 알카이드. 나는 승산이 없음을 직감했다. 지금 이 순간, 대마법사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공포와 절망에 서리지는 것뿐이 었다. [카이로스] 잘도 나를 속이고 힘을 숨겼더군. 그 용의주도함만은 칭찬해주지. 네가 호레스를 제압할 때 썼던 마법은 상당히 독창적이었다. 그 술식은 네가 직접 고안한 것인가? ...카이로스가 알고 있었어? [나] 그,..
2024.01.03 -
8화. 맞잡은 손
호레스를 기절시킨 나는 알카이드에게로 달려갔다. 알카이드는 벽에 기대서 있었지만, 여전히 힘겨워 보였고 안색이 창백했다. 장갑을 벗기고 다친 손을 살펴보려 하자 그는 화들짝 놀라며 피했다. 나는 조심스레 그의 손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알카이드의 손은 비정상적으로 차가웠고, 바닥엔 깨진 유리와 얼음 조각들이 흩어 있었다. 얼음이... 어디서 나왔지? [나] 괜찮아요?! 알카이드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알카이드] 이제... 괜찮아졌어요. 지혈도 했으니 걱정 말아요. 대답을 들어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알카이드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살폈다. [알카이드]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못 볼 꼴을 보였네요.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조금 화가 났다. [나] 알카이드, 내가 놀란 건 당신이 다친 것..
2024.01.03 -
7화. 시련
아침이 밝았다.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알카이드겠지. [시녀] 아, 아침식사를 가져왔습니다. 마, 맛있게 드세요! 알카이드가 아니라 앳된 얼굴의 시녀였다. [나] 알카이드는 어디 있나요? [시녀] 저, 전 아무것도 몰라요!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시녀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더 물어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지? 그녀가 나간 뒤, 나는 살며시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봤다. 조금 전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녀] 부, 분부대로 아침식사를 가져다드렸어요. 누구한테 말하는 거지...? 상대는 며칠 동안 내가 줄곧 경계하던 장본인이었다. [호레스] 매정한 아이로구나. 신녀님이 잘 드시는지도 확인 했어야지. 도대체 얼마나 겁을 주었기에, 어린 시녀는 벌벌 떠느라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2024.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