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칼날

2025. 1. 10. 21:59신운기원/경칩 편 (알카이드)

 나는 고개를 들어 "학자"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았다. 그가 나를 살피고 있다면, 나 또한 그를 관찰하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 했지만, 그 고요한 눈동자는 마치 잔잔한 연못 같았다.  

 

 그가 정말로 카를이 말한 대로 "경화인"이 되었을까? 아니면 어떤 이유로 지금의 모습을 가장하고 있는 것일까?  

 

 추측만이 난무한 가운데 학자가 입을 열었다.  

 

[학자]  

이름.  

 

……  

그의 말투는 “너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알카이드의 평소 말투와는 너무 달랐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로지타]  

제 이름을 모르시나요?  

 

[학자]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그의 어조에는 내가 알던 알카이드의 그 어떤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살아있다는 걸 눈으로 마주한 직후 내 안에 불처럼 타오르던 기쁨은 점차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로지타]  

당신은 그렇게 많은 사람의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 왜 제 이름만 묻는 거죠?  

 

 다른 이들처럼 기계로 나를 타워로 끌고가 심문할 수 있었을텐데. 그는 직접 내게 걸어왔다. 내가 무언가 특별한 존재인 걸까?  학자는 천천히 대답했다.  

 

[학자]  

그렇군.  

 

[로지타]  

……?  

 

[학자]  

굳이 네게 물어볼 필요는 없었어. 확실히, 쓸데없는 짓이었지.  

 

 그의 눈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포착할 수 있었다.  

 크고 밝게 새겨진 "자기 기만"이란 글자였다. 그가 한 발 물러서며 몸을 돌리자, 주변의 다른 기계체들에게 날 데려가라는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로지타]  

알카이드!  

 

 손을 본능적으로 뻗었지만, 그의 옷자락을 잡기엔 조금 모자랐다. 내 손바닥엔 미미한 바람 한가닥만 남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멈춰 섰고 다른 기계체들이 내게 한 걸음 다가오려는 순간, 그가 가볍게 손을 들어 멈추게 했다.  

 

[학자]  

무슨 일이지?  

 

 그는 냉랭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짧은 대답이 내게 작은 희망을 주었다.  

 

[로지타]  

그 이름, 알죠? 당신은……  

 

[학자]  

나를 그렇게 부른 사람이 그대가 처음은 아니다.  

 

 멀리서, 카를을 포함한 일부 “벌레단”들이 약간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했다. 아마도 나보다 먼저 그들이 알카이드의 기억을 되찾으려 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듯했다. 타워의 개조, 혹은 "질서의 고정화"는 정말로 모든 기억을 지우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있는 걸까?  

 

[로지타]  

……  

 

 내 침묵에 그는 대화를 완전히 포기한 듯 보였다. 기계체들이 다시 다가왔고,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내게 돌진했다.

 

[로지타]  

……알카이드.  

 

 그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손을 들어, 손바닥에서 화령의 힘을 응축하여 칼날을 형성했다. 기계체의 머리 부분이 경고등을 밝히며 전투 태세에 들어섰다. 그는 여전히 걸음을 옮겼고, 나는 그가 내뱉는 가벼운 비웃음을 들은 것만 같았다.  

 

 그러나, 손목을 돌려 칼날을 내 목에 들이대자, 내 팔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붙잡혔다.

 알카이드가 재빨리 돌아서서 내 손목을 붙잡은 것이다. 그의 손가락이 뼈마디에 단단히 얽혀들었고, 그 손등의 기계적인 무늬 위로 전류 같은 빛이 스쳤다.  

 

[학자]  

……  

 

 나는 자신도 모르게 기쁨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기쁨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그의 말을 똑같이 돌려주었다.  

 

[로지타]  

무슨 일이죠?  

 

[학자]  

……나를 협박하는 건가?

 

 나는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로지타]  

당신에겐 협박이 통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요.  

 

 이번엔 내가 맞았다. 내가 뭔가 특별한 존재라는 점, 그는 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그가 갑자기 손을 놓으며 말했다.  

 

[학자]  

그렇게 해 보던가.  

 

[로지타]  

……?  

 

 아까까지 조금이나마 자신의 행동에 놀란 기색을 보였던 그가, 이제는 여유롭게 날 쳐다보며 내가 다음 행동을 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는 듯했다.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나는 단호히 결심했다.  

 

칼날이 내 목에 닿으려는 순간, 그는 다시 내 손목을 붙잡았다.  

 

[학자]  

……  

 

[로지타]  

……학자 님?  

 

 그는 자신의 손으로 내 손목을 붙잡고 있었고, 이번에는 그의 이마가 깊이 찌푸려졌다. 그도 자신의 행동에 의문을 느끼는 듯했다.  

 

 나는 조용히 그의 행동에 대해 이유를 제시했다.  

 

[로지타]  

혹시…… 타워가 제 힘을 조사하고 싶어하기에, 제가 아직 필요하신 거 아닌가요?  

 

[알카이드]  

원하는 게 뭐지?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심했다. 지금까지 본 알카이드의 모습 중 가장 날카로웠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내 손목을 움켜쥔 채, 내 움직임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남은 손으로 그의 손등 위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로지타]  

제가 원하는 건…… 이 세계를 알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을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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