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빛

2024. 6. 28. 17:35현대 편/여름 메인 스토리

 여름 캠프가 끝나가던 어느 오후, 숙소에서 나오는데 알카이드의 차가 내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 
 
[알카이드]
너한테 연락하려던 참인데, 잘 됐다. 
 
[로지타]
왠지 선배가 날 데리고 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거든요. 

 자연스럽게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았다. 
 
[알카이드]
로지타, 오늘은 일정이 좀 빡빡할 덴데 괜찮겠어? 
 
[로지타]
음... 전 계속 선배랑 같이 있고 싶어요. 

 알카이드가 옅게 웃었다. 시동 소리와 함께 창밖 풍경이 변하더 니 광활한 바다 풍경 속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섬을 따라 나아가던 차는 오선스타호가 정박해 있는 바다에서 멈췄다. 
 
[로지타]
서핑하려고요? 아니면 암벽 등반? 

모든 일정을 그와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가 뭘 선택하든 기꺼 이 함께할 거다. 하지만 내 질문에 알카이드가 웃음을 지었다. 
 
[알카이드]
둘 다 아니야. 

 알카이드가 내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가자, 스태프가 다가와 우리를 모터보트로 안내했다. 모터보트에 실린 패러세일을 본 순간, 의아함에 눈이 크게 떠졌다. 이내 알카이드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가만히 울려 퍼졌다. 
 
[알카이드]
이번에는 합법적인 비행이야. 

 어떤 힘이 나를 갑판에서 끌어올렸다. 이내 하늘 위로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바람 소리가 내 귓가를 자극했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알카이드를 보니, 그 의 눈에는 부드러운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이어서 바나나보트, 제트스카, 모터보트 등 알카이드의 리드로 하나씩 타다 보니 어 느새 해 질 무렵이 되어 있었다. 
 
[알카이드]
로지타, 혹시 피곤해?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몸은 고단할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 모든 피곤함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카이드]
그럼 스노클링도 다시 해볼래? 

 알겠다는 내 대답에 그가 미소를 지었다. 
 
[알카이드]
당신만의 코치 알카이드는 언제든 준비되어 있습니다. 

 장비를 정리하고 있는데 알카이드가 갑자기 다가와 내 앞에 반쯤 주저앉았다. 한 쌍의 푸른 눈동자가 거울처럼 내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로지타]
선배?
 
[알카이드]
돌발 질문. 스노클링 시 주의 사항은? 

 전에 알카이드가 당부해줬던 주의사항은 진작에 잊어버린 후였다. 잠시 뜸을 들이던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로지타]
중요한 순간에는 선배한테 전부 맡긴다! 

알카이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알카이드]
들린 말은 아니네. 

 이렇게 가까이서 그의 웃는 모습을 보니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알카이드는 달아오른 내 뺨을 볼 새도 없이 고개를 숙여 장비들을 하나하나 정리 해줬다. 오리발, 마스크, 스노클... 내 장비를 거듭 확인한 뒤에야 그는 몸을 일으켜 자신의 장비를 착용했다.

 출발 손짓을 확인한 그는 나를 품에 안고 바다에 입수했다.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나를 감싸준 그의 온기에 마음이 더없이 안정되었다. 이 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가 바닷물에 차단되었다.
 알카이드는 나를 이끌고 조금씩 해안 반대 방향으로 헤엄쳐갔다. 그는 곧 반쯤 드러난 암초 위로 나를 가법게 들어 올린 뒤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알카이드]
스노클링 주의사항 중 하나, 물길에 휩쓸리지 않도록 너무 멀리까지 가지 않기. 조금 전 상황에선 나한테 멈추라고 손짓하는 게 좋았을 거야. 

[로지타]
하지만 알카이드 코치님은 내가 위험해지게 두지 않을걸요? 

 나는 그에게 확신에 찬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알카이드도 웃음을 터뜨렸다. 

[알카이드]
가까이 와줄래? 

 나는 암초 위에서 몸을 숙여 그에게 다가갔다. 뜨거운 숨소리가 내 귀를 스치자, 심장이 요동쳤다. 

[알카이드]
등대 사건은 종결됐어.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고, 누구도 우리를 의심하지 않아. 
 
[로지타]
......

 다시 알카이드를 쳐다보자, 그는 장난기 가득 담긴 웃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알카이드]
주변에 아무도 없잖아. 그러니 당연히 '비밀스러운' 얘기를 해야지. 

부끄러운 마음에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알카이드]
...읏.

[로지타]
앗, 왜 그래요, 선배? 
 
[알카이드]
아무것도 아니야...

 그가 말하는 사이, 나는 그를 암초 위로 끌어당겨 다짜고짜 그의 가슴팍 지퍼를 열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자잘한 상처가 나 있는 그의 몸에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로지타]
등대로 들어오다가 다친 거죠? 왜 말 안 했어요? 거기다 바닷물까지 들어오다니...

마음이 아파 연거푸 질문을 쏟아냈다. 알카이드는 내 손을 살며시 잡더니 지퍼를 올려 상처를 가렸다.  
 
[알카이드]
별일 아니야. 그냥... 네 기분을 확실히 풀어주고 싶었어. 

 오늘의 스케줄이 섬을 떠나기 전에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였구나.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내게 알카이드가 조심스레 물었다. 
 
[알카이드]
로지타, 다시 등대에 가 볼래? 저길 봐, 달이 떴어. 

-
 
 그렇게 나와 알카이드는 다시 등대로 왔다. 며칠 간의 보수공사 끝에 등대는 다시 개방되었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등대 꼭대기 로 올라갔지만, 그 비밀스러운 룬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밤이 되자 텅 빈 해변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유난히 고요했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로지타]
선배, 그날 정말 아무 의심도 안 했어요? 
 
[알카이드]
무슨 의심? 
 
[로지타]
내가 털어놓지 않은 게 있는 건 아닌지, 얘기를 꾸며냈거나 룬의 목소리에 현혹되지는 않았는지 같은 거요. 그날 내 행동은 누가 봐도 이상했잖아요. 나중에는 해변에 대고 노래까지 부르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밤 내 행동이 너무 뜬금없긴 했다. '엄마의 부하'라는 룬은 나에게 목소리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분쟁을 일으기도록 현혹했다. 하지만 나는 알카이드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알카이드가 나를 완전히 믿지 않았다면, 내가 엄마의 뒤를 이어 목소리로 이 세상 사람들을 해치려는 것으로 봤을 것이다. 이내알카이드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알카이드]
말했잖아, 널 믿는다고. 네가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인다면, 난 네 선택을 존중할 거야. 

 잠시 주저하던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알카이드]
사실 나도 조금은 망설였던 적이 있어.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문득 널 지키겠다는 내 욕심이 네 의지를 막아서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거든. 하지만 네가 혼자 등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도, 룬을 만지겠다고 했을 때도, 노래를 불렀을 때도... 내 마음속엔 오직 너를 믿는다는 생각, 너의 선택을 믿겠다는 생각뿐이었어. 

 고개를 돌리자, 나를 바라보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알카이드]
널 지키겠다는 건 내 염원이야. 하지만 우리의 모든 감정은 너의 염원이 우선시될 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지. 앞으로 너의 염원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든 상관없어. 적어도 난 너와 함께 맞서고 함 께 책임...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나는 한 걸음 다가섰다. 

 그리고는 가법게, 약속과도 같은 입맞춤으로 그의 뒷말을 막아버렸다.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지고, 파도 소리마저 조용히 멀어지는 듯했다. 
 
[로지타]
아앗, 지금 건 충동적으로...

 잠자리가 수면을 스치는 것 같은 가벼운 입맞춤이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촉감에 심장이 쿵쾅대고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알카이드의 손이 내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지켜주려 날 끌어안았던 그의 팔은 조금 더 힘을 주며 내가 뒤로 물러나지 못하게 막았다. 그는 진지하지만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 눈을 응시했다. 
 
[알카이드]
그럼 지금은? 
 
[로지타]
지금은... 아주 멀쩡해요. 

 다음 순간 알카이드가 고개를 숙여 다가와 다시 입을 맞췄다. 맑은 나무 향기가 났다. 그의 몸에서 나는 것인지 심의 수풀에서 묻어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다를 머금은 새벽 공기와 함께 서로를 나누는 숨결로 녹아들었다.
 무모하고도 갑작스러웠던 나의 입맞춤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의 리드로 조금씩 더 깊게 입을 맞췄다. 카스처럼 따스한 그의 손이 부드럽게 내 손에 깍지를 꼈다.
 저 멀리 아침 해가 떠올라 수면 위를 붉게 물들였다. 샛별 하나가 내 옆으로 떨어지고 설원 위로 오로라가 찬란히 빛나던 그 때 그 여행과 같았다. 나의 선배, 나의 연인, 내 영혼의 반쪽. 그가 내 곁에 함께 있어 준다면 내 곁은 항상 밝게 빛날 것이다. [각주:1]

  1. 알카이드와 첫 키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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