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너를 향해 달려갈게

2024. 6. 28. 17:34현대 편/여름 메인 스토리

등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밑에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그리고는 기 억을 떠올려 엄마가 불렀던 그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로지타]
사랑은 바다 위의 등대, 폭풍에 맞서도 흔들림 없네. 사랑은 길 잃은 배 위의 북극성, 높이는 알 수 있어도 가치는 알 수 없네. 붉게 물든 두 뺨과 입술이 시간의 마수에 걸려들지라도 사랑은 그렇지 않네. 사랑은 결코 순식간에 변하는 게 아니야, 종말의 끝까지 견더내는 거지. 

 평소에 노래를 잘 부르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 내 노래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은 들지 않았다. 그저 기억 속의 노래를 있는 그대로 저 아래 몰려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들에게 이 세상은 머물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알려 줄 것이다. 사랑은 밝게 빛나는 등대처럼 모두에게 삶의 용기를 품게 한다. 바다에서 불어온 밤바람이 내 노래를 멀리 퍼트려주었다. 사람들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자리에 앉았고, 그들 곁으로 가족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사람 A]
내가 여길 왜 온 거지? 
 
[사람 B]
음... 조금 전에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조세이아]
맞아요, 자연의 소리 같은 노래였어요. 정말 듣기 좋았죠. 

 사람들 틈에서 감격하는 조세이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숙이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조세이아의 얼굴이 시원한 미소로 빛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알카이드가 계속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알카이드]
로지타, 잘했어.

나와 알카이드는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달이 지고, 그렇게 이 밤이 지나갔다. 

-

 그날 이후 현지 경찰의 협조로 페이먼트 섬은 빠르게 평온을 되찾았다. 알카이드도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고, 곧 브랜다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공개해도 되는 자료들을 보여줬다. 내용은 내가 마지막에 룬의 파편에서 본 것과 같았다.
 엄마는 예전에 페이먼트 섬에 왔었다. 그녀가 전파한 음악은 모두 치유의 소리로, 실의에 빠진 이곳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감동과 열정을 되찾게 했다. 엄마와 연락하던 라디오는 페이먼트 섬 주민들이 좋아하던 방송이었지만, 섬의 상업화 이후 다른 라디오에 밀려 문을 닫게 되었다. 그래서 라디오에서 엄마의 목소리를 찾을 수 없었던 거다.
 그 예술가들이 등대를 찾아간 건, 아마 등대 안에 있던 말에 엄마의 기운이 남아 있어 어느 정도 공명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등대와 라디오는 실의에 빠진 그들에게 생명의 동아줄이 된 것이다. 하지만 룬에서 들려온 또 다른 소리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대체 그것이 누구고, 정말 존재하는지조차 우리는 알 수 없다.
 의외로 알카이드는 내가 룬의 파편 가루를 보관하는 걸 허락해줬다. 그는 며칠 후 예신에게 가지고 가 물어보라고 차분히 말했다.
 
[로지타]
브랜다 아주머니에게 보여드리지 않아도 돼요? 
 
 알카이드 어머니의 업무적인 문제로 본다면, 내 마음대로 룬의 가루를 처리하면 쉬이 마음을 놓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카이드]
어머니한테는 알리지 않았어. 모든 걸 다 보고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등대는 우리 둘만의 모험이잖아. 그러니 우리끼리 기억하면 돼. 
 
[로지타]
알카이드 선배... 나를 믿어요? 
 
[알카이드]
이건 너희 어머니 물건이잖아. 그러니 네가 잘 처리할 거라고 믿어. 

 손바닥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내가 움켜쥔 것이 파편 가루가 아닌, 그가 나에게 아낌없이 전하는 진심 같았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알카이드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알카이드]
참, 로지타, 네가 등대에서 불렀던 그 노래 가사 말이야, 내가 좋아하는 시더라. 

 그 말에 조금 놀라고 말았다. 

[로지타]
원래 있던 가사였어요? 어릴 때 엄마가 불러취서 멜로디는 확실히 기억나는데, 가사 는 그 몇 마디만 생각났어요.
 
[알카이드]
응, 세익스피어의 소네트 116번이야. 연인 간의 사랑을 노래한 시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로지타]
그 시, 다 기억하고 있어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자 알카이드가 진지하게 생각했다. 
 
[알카이드]
...한번 읊어볼게. 진실한 두 사람의 결합을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으리. 변화를 따르는 것도, 그 흐름에 움직여 가는 것도 결코 사랑이 아닐지니...

 알카이드는 가법고 느린 어조로 시를 읊었다. 셰익스피어는 이 시에서 사랑의 심오함을 바다를 밝히는 등대와 길 읾은 배를 안내 하는 북극성에 비유했다. 잠시 머뭇거리는 그를 대신해, 기억을 더듬으며 가사를 읊었다. 
 
[알카이드]
붉게 물든 두 뺨과 입술이 시간의 마수에 걸려들지라도 사랑은 그렇지 않네. 사랑은 영원할 것이니, 심판의 날까지도 살아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틀렸다고 증명된다면, 나는 시를 쓴 적도, 그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었으리. 

 시가 끝나자 서로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방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로지타]
세익스피어는 정말 억지스럽네요. 자기가 잘못 말했다고 남이 진정으로 사랑한 적 없다고 말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알카이드]
그러게, 좀 억지스럽네. 그래도 난 저 말이 맞는 것 같아.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무게가 실렸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맑고 고요한 눈을 들여다보았다. 
 
[알카이드]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아. 

 단순히 시를 평가하는 말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겠다고 내게 약속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알카이드도 가만히 나를 마주 안으며 내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 
 
[알카이드]
나의 등대이자 북극성은 바로 여기 있어. 난 언제나 너를 향해 달려갈 거야, 로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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