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그녀를 위한 불빛

2024. 6. 28. 17:33현대 편/여름 메인 스토리

 머뭇거리고 있는데 알카이드가 룬의 파편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등이 깨져 등대 안은 빛도 없이 어두컴컴했지만, 파편에 약간의 인광이 반짝이고 있었다. 파편에 다가갈수록 그 빛도 조금씩 밝아졌다. 꼭 파편을 만지도록 날 유도하는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로지타]
만져봐도 될까요? 

 신중하게 물었다. 알카이드가 내 곁에 있는 이상 내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 둘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지타]
이 파편들의 힘은 결코 그자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요. 

알카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카이드]
내 생각에도 그래. 부드럽고도 고요한 힘이 느껴져. 누군가를 해칠 것 같지는 않아. 

 나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산산조각 난 파편을 건드렸다. 손끝이 닿자 파편이 더욱 밝게 빛났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빛은 칠흑 같은 밤에도 전혀 눈부시지 않았다. 빛이 나를 감싸며 내 생각과 함께 시간을 맴도는 듯 과거의 화면이 점점 머릿속에서 또렷해졌다. 
 십여 년 전 페이먼트 섬의 해변, 등대를 올려다보는 한 남자가 보인다. 등대 쪽을 바라보는 그의 몸은 이미 절반이나 바닷물 속에 잠겨 있다. 남자의 모습이 낮설지 않았다. 바로 십여 년 전의 조세이아였다. 짙은 갈색 머리의 그는 뒷모습만 봐서는 활기찬 젊은이 같았다. 하지만 정신이 또렷하지 않았기에, 까딱하다간 바닷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파도에 잠길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그의 뒤에서 신비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들어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엄마는 조세이아가 볼 수 없는 곳에 서서 그 신비하고 공허한 노래를 낮게 흥얼거렸다. 

얼마나 많은 달이 등대에 올라 퐁당 퐁당 바다로 떨어졌나...

 조세이아는 노래를 듣더니 멍하니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등대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한 걸음씩 해안가로 돌아갔다. 다음 날 밤, 조세 이 아는 등대로 왔다. 그는 한참을 올라가 꼭대기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등대 꼭대기에 서서 한없이 필쳐진 바다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평온해지며 목숨을 끊겠다는 나쁜 생각이 더는 들지 않았다. 
 
[라디오 스태프]
맞아요, 우린 매년 이 섬의 바다로 몸을 던지는 투신 자살 건을 처리해요. 하아, 많은 예술가가 이곳에 와서 한동안 머물지만 사실은 이곳을 인생의 종착지로 정했던 거죠... 이 섬에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경찰도 적어서 단속할 수가 없어요.

[엄마]
그래서 라디오 프로그램에 노래를 선물하고 싶어요. 저는 싱 어송라이터예요.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제가 사는 현지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제 노래를 즐겨 들으시는 분들이 많답니다. 제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엄마는 풋풋한 미소를 지으며 겸손하게 말했다. 객지에서 온 무명 가수인 것처럼 라디오 스태프와 얘기를 나누며 수줍어했다. 
 
[라디오 스태프]
굉장히 겸손하시네요. 저희도 노래를 들어봤는데, 정말로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목소리였어요. 저희를 믿어주시거든, 돌아가셔서 신곡을 보내주세요. 가장 먼저 방송해드릴게요. 

 라디오 스태프가 한숨을 내쉬었다. 
 
[라디오 스태프]
정말이지 예술가분들이 그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네요. 말씀하신 대로 당신의 노래에는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거든요. 

 여자는 커다란 트렁크를 끌며 정중하게 작별을 고했다. 지극히 평범한 여행자처럼 심을 들렀다가며 자신만의 작은 선물을 남겼다. 조세이아는 엄마의 목소리에 포로가 되어 끌려다니는 미치광이가 된 게 아니었다. 죽으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그를 지금까지 살게 해줬던 것이... 바로 엄마의 노래였던 거다.
 내 목소리를 듣고 목소리가 너무 좋다고 말하던 조세이아의 얼굴에는 동경과 기쁨이 묻어 있었다. 그건 말 그대로 칭찬일 것이다. 엄마의 목소리는 정말 듣기 좋았다. 그 목소리가 그에게 이 세상에 미련을 갖게 만들었다.
 나는 룬의 목소리에 현혹되어 흔들렸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다. 룬은 엄마가 예전에 목소리를 무기 삼아 세상에 전쟁과 분쟁을 일으켰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이 엄마의 진짜 과거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부터 함께 있어 주고, 다른 보통 사람처럼 열심히 산 것도 엄마의 진짜 모습이다.

 생각에 잠겨 눈을 감았다. 어릴 때 항상 엄마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랐던 일이 떠올랐다. 한 번은 외국의 한 섬으로 출장을 갔다 온 엄마에게 바다 한가운데의 섬은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때 엄마는 야자수와 조개껍질, 그리고 커다란 유적과 높은 등대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가 말한 게 바로 페이먼트 섬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등대에 관심이 많아 엄마에게 꽤 오랫동안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엄마는 우리가 사는 마을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신곡을 발표했다. 내 노래 실력은 별로지만, 가사는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다. 

[엄마]
사랑은 바다 위의 등대, 폭풍에 맞서도 흔들림 없네. 사랑은 길 잃은 배 위의 북극성, 높이는 알 수 있어도 가치는 알 수 없네. 
섬에 있는 등대에 바치는 노래예요. 등대는 섬으로 돌아오는 이들을 이끌어주죠.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의 가족에게 바치는 노래이 기도 해요.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그들이 돌아오길 기도하는 가족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제 딸에게 바치는 노래입니다. 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아이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어느 날 제가 그 아이 곁에 없다 해도.... 제 사랑은 저 등대처럼 그 아이를 위해 빛날 겁니다. 

 정신을 차린 나는 알카이드의 손을 꽉 잡았다. 

[로지타]
선배, 등대 밑에 있는 저 사람들을 정신 차리게 하는 방법을 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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