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이드] 4일차. 클라이밍

2024. 5. 13. 00:36이벤트 스토리- 2021/블루 아일랜드

 오선 스타 크루즈에는 거대한 암벽이 우뚝 솟아 있다. 알카이드와 함께 그림 소재를 수집하러 왔는데, 이제 막 암벽을 타기 시작한 누군가가 민첩하게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알카이드의 모습을 많이 봐왔던지라, 그 모습을 보고도 크게 흥미롭지는 않았다. 그래서 구경하는 사람들 틈에서 조용히 나와 푸드존에서 음료수 두 개를 가져왔다. 알카이드 곁으로 돌아왔을 땐 좀 전의 암벽 등반은 이미 끝나 있었다. 
 
[로지타]
환호성이 들리던데, 실력이 대단했나 봐요? 

[알카이드]
응, 되게 빠르고 능숙했어. 그냥 취미 삼아 즐기는 아마추어였다면, 뛰어난 실력을 갖춘 셈이지. 

[암벽 등반 마니아]
말투로 봐서는 당신도 암벽을 탈 줄 아나 보군요. 프로 선수신가? 

 어느새 아까 암벽을 탔던 그 사람이 근처에 와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알카이드가 그에게 내린 평가는 박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는 불만스러운 모습으로 알카이드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무시하는 듯한 눈초리를 보냈다. 
 
[알카이드]
저도 그냥 평범한 아마추어입니다. 프로라고 할 수준은 아니죠. 

 그는 갑자기 더욱 무시하듯 콧방귀를 뀌었다. 
 
[암벽 등반 마니아]
그럼 잘 됐군요. 나랑 한번 붙어봐요. 대신 루트는 당신이 선택해요, 내가 어드벤티지 받았다는 소리 듣지 않게. 

암벽 등반에서 속도를 겨루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다. 이 사람이 왜 알카이드를 무시하는 건지는 알 수 있었다. 몸매만 놓고 보면 상대는 상당히 건장하지만 알카이드의 힘은 겉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카이드의 수준을 잘 아는 나는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는 이 남자에게 좋은 뜻으로 주의를 주기로 했다. 
 
[로지타]
방금 암벽을 한 번 타서 힘이 많이 빠졌을 텐데, 좀 쉬지 않아도 되겠어요? 
 
[암벽 등반 마니아]
그쪽이 뭘 안다고 그래요? 방금 그건 워밍업이었어요. 

 꾸짖는 듯한 말투에 알카이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알카이드]
그럼 시작하죠. 

 알카이드는 완벽히 대칭을 이루는 고난도 루트를 선택했다. 두 사람이 돌아가면서 등반할 필요 없이 일정 거리가 떨어져 있어, 서로 방해도 되지 않았다. 자진해서 심판을 맡은 행인의 신호에 따라 상대가 먼저 출발했다. 하지만 알카이드는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암벽을 타기 시작했다. 이미 체력을 소모한 상대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겠다는 알카이드의 매너였다.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그는 거침없고 민첩한 동작으로 자신이 양보한 거리를 완전히 따라잡았다. 그는 상대를 보지도 않고 가장 높은 암벽 꼭대기를 오르는 데만 집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암벽 등반을 스케치 주제로 삼을 때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지 깨달았다. 
 상대가 정상에 올랐을 때 알카이드는 이미 정상에 도작한 후인 데다, 위에서 그를 기다리지 않고 곧장 빠르게 내려왔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좀 전과 같은 환호성도 들리지 않고, 알카이드의 모습도 보이지 않자 그 남자는 약간 의아해했다. 
 
[암벽 등반 마니아]
그 녀석은 어떻게 된 거지? 못 끝낸 건가? 
 
 누군가가 그를 잡고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고 있었지만, 당사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나에게 걸어왔다. 나는 아까 가져온 차가운 음료수를 그에게 건네며 작게 웃었다. 

[로지타]
바로 마시지 마요. 아직 차가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