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감정

2024. 3. 7. 00:19각성의 장/용성 편 (아인)

[뚱뚱한 중년 남성]
용성 그룹 3구역 지부 보고드립니다. 새로운 장비는 성공적으로 작동 중 입니다! 
 
 용성 그룹 지부라는 걸 보니, 이곳의 사장인가 보다. 아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남자는 친화력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띈 채 보고를 이어갔다. 
 
[뚱뚱한 중년 남성]
딱 하나 문제가 있는데, 지금 이대로라면 지상의 분들이 요구하는 이번 달 조공 분량은 채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감정의 힘을 이렇게 채집해서는, 점점 수익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용성 그룹이 경계 밖 손님들에게 바치는 것이 감정의 힘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런데 잠깐... 광고에서 분명...'시간 투자'라고 하지 않았나? 
 
[뚱뚱한 중년 남성]
게다가 요즘 들어 우리 그룹의 광고가 사기라는 이상한 소문이 도시에 돌고 있습니다... 저한테 몰려와서 진위 여부를 묻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어요. 분명 누군가의 소행일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소문이 이렇게 빨리 퍼질 리가 없어요! 게다가 정보의 출처도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설마...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건 아니겠지요? 
 
 남자는 점점 목소리를 낮추며, 한껏 진지한 얼굴로 아인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아인은 아무 말 없이 연극을 관람하듯 그저 웃을 뿐이었다. 
 
[뚱뚱한 중년 남성]
회장님,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기라도 하면...
 
[아인]
당신은 당신 몫의 채집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아인은 못 참겠다는 듯 그의 말을 끊었다. 
 
[아인]
분량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해결합니다. 광고 문제도 굳이 제게 보고하실 필요 없습니다. 
 
[뚱뚱한 중년 남성]
아.... 예, 회장님. 제가 쓸데 없는 말을...
 
 남자가 침을 삼기며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아인은 감정의 힘을 수집하고, 그 감정의 힘을 경계 밖 손님에게 건네는 용성 그룹의 회장을 맡고 있다. 거기다 지금까지 용성 그룹은 허울 좋은 허위 광고를 해왔고, 아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에 관해 부하직원들이 입을 놀리는 것을 싫어한다. 이게... 아인이라고? 권력자, 거짓 웃음, 냉혹함, 속임수... 이런 단어들이 그와 엮일 거 라곤 상상도 못했다. 
 
[아인]
경계 밖 손님에게 상당히 충성심이 강하신 것 같군요. 
 
아인의 말투가 갑작스럽게 평온함을 되찾았다. 더는 그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사장은 익숙한 듯 착실하게 질문에 답했다. 
 
[뚱뚱한 중년 남성]
경계 밖 손님과 전쟁을 치루던 당시에 전 전방에 있었으니까요. 이 다리도 그때 잃은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지요... 회장님과 장관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용의 도시조차 지키지 못하고 목숨만 버렸을겁니다.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듯 남자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뒷말을 이어나갔다. 
 
[뚱뚱한 중년 남성]
비웃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전... 회장님과 장관님을 존경합니다. 
 
[아인]
...왜죠?
 
 아인이 잠시 멈칫했다. 원래는 그의 말을 끊을 생각이었지만, 그냥 듣기로 한 모양이다. 
 
[뚱뚱한 중년 남성]
두 분이 아니었다면 전 살 곳이 없었을 테고, 용의 도시는 지금처럼 번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아인]
용의 도시가 번영을 이뤘다고 생각합니까? 
 
[뚱뚱한 중년 남성]
네... 그렇습니다. 
 
 아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떠나기 전, 문을 한 번 더 돌아봤다. 고글을 쓴 사람들이 내뱉는 잠꼬대가 마치 메마른 세계를 재위주는 목화솜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광경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아인]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잘 살아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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