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우리의 미래

2024. 3. 6. 23:19각성의 장/용성 편 (아인)

 아인과 나는 음료수와 디저트를 주문한 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직원이 준비한 것들을 서빙해주고 돌아가자, 아인이 음료수를 내게 건넸다. 

 

[아인]

자, 여기. 

 

[나]

고마워요! 

 

대용량 컵에 담긴 콜라는 묵직하고 시원했다. 만족스러움에 그게 한 모금 마시고 아인을 돌아보니, 그는 여유롭게 팝콘을 먹고 있었다. 

 

[나]

...양치하는 거 잊지 마요! 

 

[아인]

응? 뭐라고? 

 

 아인은 잘못 들은 듯,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금빛 팝콘을 내 입가로 가져왔다. 

 

[나]

...음.

 

인정. 맛있긴 하네. 준비가 끝나자, 직원이 영화 안내를 시작했다. 

 

세팅이 끝났습니다. 이제 두 분은 몰입형 VR 영화를 경험하시게 될 겁니다. 두 분의 잠재의식과 이미지를 불러와, 이야깃 속 인물을 만들어냅니다. 그 인물들은 영화 속 미래의 두 분이죠. VR 장비를 착용하면, 생동감 넘치는 미래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나를 바라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인 선배는 자신의 미래만 궁금해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직원]

이 영화는 따로따로 관람할 수도, 두 분이 함께 관람할 수도 있습니다. 

 

 직원은 그 말을 하며 나를 항해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인과 함께 영화를 보다가, 내용이 부적절하다고 느껴지면 언제든지 멈출 권한을 내게 준 거다. 

 

[아인]

같이 볼래? 

 

[나]

같이 봐요. 

 

[아인]

응,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역시, 아인은 그와 나의 미래가 궁금했던 거다. 한 편의 영화일 뿐이었지만, 그는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직원]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장비를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녀가 떠나자, 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

선배, 이미 짜여진 시나리오에 우리를 끼워 넣는 거라면 어떨 것 같아요? 실망스럽지 않을까요? 

 

[아인]

스토리만 괜찮다면 상관없을 것 같은데. 

 

[나]

왜요? 

 

[아인]

먼 미래를 볼 수 있고, 그 안에는 너와 내가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워. 

 

 담담히 말하는 아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의 세계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필요 없다는 뜻으로 느껴졌다. 왠지 감격스러웠다. 저런 눈이라면... 어떠한 재앙 속에서도, 결코 빛을 잃지 않으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들이 우리에게 장비를 작용시켰다. 그렇게 우리의 눈앞은 새까만 암흑으로 뒤덮였다. 

 

[직원]

VR 고글과 장치를 여러분에 맞게 세팅했습니다. 중간에 불편한 점이 있으시거나 관람을 멈추고 싶으시면, 손을 들거나 직원들을 불러주세요. 

 

 직원이 나가자, 시야가 점차 밝아졌다. 귓가에 들려오는 아인의 목소리에, 난 그의 긴 손가락으로 손을 뻗었다. 

 

[아인]

어떤 이야기일 것 같아? 

 

[나]

아마... 선배다운 이야기 아닐까요? 

 

나는 작게 말하며 그의 손가락을 걸었다. 

 

[나]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영화가 필쳐질 테니까요. 

 

 나는 우리가 겪을 미래의 재앙이 어떤 모습일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인에겐 모든 역경을 헤쳐나갈 능력이 있다. 그냥 그럴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마치 악보에 수 놓인 완벽한 박자를 믿는 것처럼, 흑백 건반 사이의 선명한 차이를 믿는 것처럼. 

 

[아인]

난 정반대로 생각했는데. 

 

아인도 작게 속삭였다. 곧이어 눈앞이 밝아지더니, 점자 주변의 형상이 뚜렷해졌다.

 

[아인]

난 이 이야기가 너를 닮았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어떤 세계에서도 너는 다양한 색깔로 빛날 테니까. 

 

 대답하려던 찰나, 영화의 가상 세계가 내 감각에 침투했다. 여긴... 다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의 방 구석에는 등불이 서너 개 놓여 있었고, 공중을 떠도는 반 투명 금붕어가 감빛 창호지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했다. 하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요소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정밀 기술이었다. 책상의 금붕어는 홀로그램일 것이다. 하지만 창밖에 빠른 속도로 건물을 스쳐 가는 차량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

그쪽엔 소식 있나?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생각의 수면 외로 끌어올렸다. 다실 옆방에서 나무 의자에 기댄 재 생각에 잠겨 있는 아인. 그는 검은색 외투 안에 용무늬가 그러진 붉은 옷을 입고 있었다. 거대한 스크린을 보고 있는데. 게임을 하고 있는 듯했다. 누군가 아인의 곁으로 걸어와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직 없습니다.

 

 아인과 비슷한 복장에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저 사람이... 설마 미래의 나? 

 

[나?]

회장님, 제가 연락해 볼까요? 

 

[아인]

아니, 가는 김에 들러보면 돼. 지금 출발하지. 

 

[나?]

네?

 

 스크린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아인은 원가를 입력했다. 그러자 빠르게 텍스트가 떠오르더니, 곧이어 시스템 명령 어가 나타났다. 자판을 두드리는 그의 동작은 깔끔하고 절도 있었다. 그렇게 자판을 입력한 지 1초도 되지 않아, 그는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았다. 순간 화면이 검붉게 변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온한 푸른색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화면에 떠 있는 달력에는 딱 두 줄이 적혀 있었다... 

 

패배 후 1307일 경과

새해까지 7일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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