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출발

2024. 3. 6. 23:18각성의 장/용성 편 (아인)

 모처럼 한가한 금요일 밤. 중요한 시험 몇 과목을 치른 후라 온몸이 피곤해 조금 쉴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인]

시험 끝났어?
주말에 비밀 기지로 와.
적어놓은 거 여기에 두고 갔어.

지난번에 거기다 떨어뜨렸나 보구나. 어쩐지 찾아봐도 없더라니...

이번에는 잊지 말고 꼭 가져가. 온 김에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고. 
아니면 다른 데 가는 것도 좋아. 
내가 같이 있어줄게.

좋아요, 내일 갈게요.

 

 답장을 보낸 나는 만족스러운 숨을 뱉으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인과 자주 통화하고, 아지트에서 만나는 나날들에 점점 익숙해졌다. 그만의 공간이었던 그곳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안전 구역이 되었다. 힘들 때 단둘이 함께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이리도 행복한 일이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토요일 아침, 약속대로 아지트에 도착했다. 딱히 하는 일은 없어도 너무나도 평화로운 하루였다. 나는 이곳에서의 나날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여기선 아인과 함께 게임을 하거나, 베개를 끌어안은 채 클래식 음악을 듣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멍하니 있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인]

벌써 오후네... 나가서 좀 걸을까? 

 

하지만 계속 실내에만 있는 건 별로 좋지 않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담요를 뒤집어쓴 채 아인에게 다가갔다. 

 

[아인]

저녁에 뭐 먹을래? 

 

[나]

음...

 

[아인]

...잠깐, 이게 뭐지? 

 

아인의 손끝을 따라가 보니, 그곳엔 오늘 오전에 도작한 우편물이 놓여 있었다. 

 

[아인]

상점가 영화관... 시범 영업 이벤트? 잠재의식 VR 영화... SF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 탓이었다. 

 

[예신]

난 '특수인'을 영화관으로 불러낼 거야. '새로운 VR 기술을 시험한다'는 명목으로 그 들 자신만의 영화를 보여줄 생각이지. 특수인의 잠재의식을 이용해서, 머릿속에 발생 가능한 미래를 보여주려고 해. 

 

...그래, 이건 예신이 특수인들을 위해 준비한 영화일 것이다. 그는 특수인에게 끔찍한 미래를 보여주며, 그들을 각성시킬 계획을 준비했다. 

 

[아인]

왜 그래? 

 

정신을 차려보니, 아인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잠깐 정신이 팔린 내 모습에 당황 한 듯 보였다. 

 

[나]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이 영화가 좀... 특이한 것 같아서요. 

 

[아인]

오늘 밤에 상영하는 영화도 볼 수 있나 본데. 재미있어 보인다. 하지만... 잠재의식을 읽어내는 VR 기술이라니, 공상과학에 가까운 일이야. 100% 진짜는 아니겠지. 

 

 아인은 '네가 결정해라'는 듯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그제야 우리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늘 저녁에 어디를 갈지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

...선배, 가보고 싶어요? 

 

[아인]

진짜 판타지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거라면? 게다가 이 문구... 영화 테마겠지? 

 

[나]

테마요? 

 

 아인의 손가락이 가리기는 곳으로 시선을 옮겨 보니... “미래의 당신은 변할 것인가?” 영화 소개 문구에 적현 말은 이것뿐이었다. 

 

[나]

...선배는 미래의 자신이 변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반사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나니, 예신이 왜 이 영화를 준비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미래의 '특수인'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위험을 맞닥뜨리고 나면, 지금과 달라질까? 자유분방하고 반항적인 이 소년이 어느 날 모종의 사건을 겪고'성장'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아인]

넌 미래의 내가 변할 거라고 생각해? 

 

[나]

전 선배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선배는... 피아노의 흑백 건반과 악보의 박자, 디저트의 레시피 같은 사람이거든요. 

 

[아인]

...무슨 비유가 그래? 

 

[나]

선배는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거죠. 언제나 딱 좋은 그 상태 그대로 있을 거예요! 

 

내 말에 아인이 웃었다. 

 

[아인]

마음에 드는 답이네. 그래도 관심이 가는데. 잠재의식 기술이 진짜라면, 영화가 내 질문에 뭐라고 답할지 궁금해. 

 

 아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부분이 바로 이거였구나... 나 역시 스스로에게도 묻고 싶 어졌다. 미래의 나, 년 지금과 다를까? ...모르겠다. 

 

[아인]

오늘 밤에 볼 거면, 저녁 식사도 해야 하니 시간이 별로 없어. 갈 거야? 

 

 아인이 날 보며 물었다. 그냥 그런 평범한 영화일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저 영화는 나와 그가 겪게 될지도 모를 재앙이 필쳐진 미 래라는것을. 가상의 재난 영화를 꼭 봐야 하나? 아인 선배에게 위기감을 꼭 느끼게 해야 하나?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에 등장하는 우리가 미래에 정말 변해버린다면, 나도 그도 더는 우리가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런 장면을 볼 용기가 내게 있을까? 

 

>영화를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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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당신은 변할 것인가?” 

나는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변할 내 모습을 보는게 두려웠고 그것보다도 낮선 아인의 모습을 보는게 두려웠다. 

 우리는 서로의 또 다른 가능성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겠지. 종말, 가면, 잔혹함, 어쩌면 결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혹은 더 나은 행복, 진심과 재회가 기다릴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나는 눈앞의 행복만을 움켜쥐고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언제 끝날지라도.

 

ED. 유한한 인생

>영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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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마침 시간도 있으니 같이 가요. 

 

 아인의 초대를 거절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가기로 했다. 나와 아인에게 일어날지도 모를 미래가 담긴 영화라면... 보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나는 아인을,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나를 믿는다. 우리는 비밀과 아지트를 공유했고, 서로의 마음과 입장을 이해했다. ...가서 미래를 보자. 설령 그와 내가 변한다고 해도, 우리의 인연은 시공을 초월할 수 있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테니까. 

 

-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와 아인은 편지에 적힌 주소에 따라 영화관으로 향했다. 

 

[직원]

어서 오세요. 관람 시간 확인했습니다. 오늘 밤은 이 영화관에서 자유롭게 즐기시면 됩니다. 

 

주변을 둘러보는 아인의 뒤로, 직원이 내게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아인의 앞에서 그녀는 나를 모르는 척 해주었다. 

 

[아인]

자유롭게 즐기라니. 영화관을 통째로 쓰라는 말입니까? 

 

[직원]

네, 오늘의 티켓은 손님께 보내드린 두 장뿐입니다. 

 

직원의 미소와 말투는 진절했기에, 일말의 의심조차 품을 수 없었다. ...그래, 그녀는 예신의 조력자가 분명하다. 

 

[직원]

저희 영화관은 소규모 프라이빗 영화관이기 때문에, 개인 또는 소규모 단체만 예약제로 받고 있습니다. 원데이 시범 운영 이벤트에 당침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그녀는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직원]

이쪽으로 오시죠.

 

>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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