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폭군

2024. 2. 12. 13:09에르세르 대륙(完)/아이리스의 장 (로샤)

 황실 별궁에 도착하자마자 이상한 광경을 마주했다. 수갑과 족쇄를 찬 마법사들이 노역 중이다. 

 

[로샤]

흐음. 사냥터 청소는 완료된건가? 좋아. 사냥 후 후원에서 성대한 만찬을 열 테니, 저놈들에게 정리를 맡겨라. 알고 있겠지? 저녁에슨 봄처럼 싱그러운 꽃들이 만발해있어야 할 것이야.

 

마법사 한 명이 로샤의 앞으로 나오더니 무릎을 꿇었다. 

 

[마법사]

폐, 폐하! 저희는 방금까지 사냥터의 눈을 치우느라 대부분의 마력을 소진했습니다. 또다시 마력을 사용한다면 위험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폐하, 부디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마법사는 머리를 조아리며 에원했지만 로샤는 더없이 싸늘했다. 

 

[로샤]

자비는 이미 베풀 만큼 베풀었다. 제국을 배신한 네놈들을 척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말이야. 염치라는 게 있다면 목숨이라도 부지한 데 감사히 여기고 그 비루한 마력으로나마 은혜를 갚도록. 하긴. 실버나이트 따위의 허상에도 쉽게 현혹된 미물이 도리인들 알겠느냐. 

 

로샤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조롱과 분노가 배어 있었다. 로샤에게 거부당한 마법사는 이번엔 내게 절하며 에원했다. 

 

[마법사]

장차 제국의 국모가 되실, 아름다운 이세계의 신녀시여! 부디 저희를 굽어살펴주십시오! 하늘 같으신 두 분 앞에서 어찌 엄살을 부리겠습니까. 모두가 마력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은 몸이 버티지 못합니다. 

 

 로샤는 차가운 눈으로 마법사를 내려다보다 그가 간절하게 내민 손을 지그시 밟아버렸다. 로샤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마법사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홀리면서도 끈질기게 애원했다. 로샤는 결코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다. 내가 모르는 사연이 있든지, 아니면 뭔가 계획이 있어 일부러 저러는 걸 수도 있겠지. 나는 로샤에게 바짝 붙었다. 

 

[나]

저는 로샤의 사람인걸요.

 

로샤는 흡족한 표정으로 나를 끌어안고서 내 이마에 가법게 키스했다. 

 

[로샤]

이 대륙에서 감히 짐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대뿐이다. 집행인 부대! 게으름을 부리거나 반항하는 자가 있거든 그 자리에서 참수하라! 

 

 로샤는 나를 가뿐히 안고서 말에 오른 후, 귀족들을 거느리고 사냥터로 향했다. 로샤를 따르는 귀족들은 하나같이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에르세르 대륙의 폭군은 누군가의 동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에게 필요한 건 오직 모두의 두려움 뿐이었다.

 

-

 

 제법 말을 달려 사냥터에 도착했다. 사냥감을 찾아 다들 뿔뿔이 흩어지고 우리만 남게 되었다. 

 

[로샤]

우리의 목표를 잊어선 안 된다. 

 

[나]

네.

 

[로샤]

무엇을 보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흔들려선 안 돼. 저 마법사들은 죄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이다. 그대는... 그대만큼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마라. 

 

[나]

약속할게요. 

 

[로샤]

무거운 얘기는 그만두고 슬슬 사냥을 시작해볼까? 늑대를 몇 마리 잡아 저 아첨꾼들의 부담감을 덜어줘아겠군. 

 

[나]

사냥할 때마다 눈치껏 당신을 1등으로 만들어준다는 건가요? 폭군 떠받들기도 참 힘든 일이네요...

 

 아니나 다를까. 그 순간, 수풀에서 늑대 몇 마리가 달려 나왔다. 로샤는 말을 몰고서 빠르게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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