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편(20)
-
3화. 구식 라디오
침대 머리맡에는 구식 라디오가 하나 놓여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매일 누군가 들어와 청소를 하는데도 라디오 버튼 틈에 먼지가 쌓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시험 삼아 다이얼을 돌려보았다. 주파수 안맞는 구간에선 잡음이 들렸다. 스피커에 쌓인 먼지가 진동에 공기 중으로 퍼져 기침이 나왔다. 이내 알카이드가 다가왔다. [알카이드]내가 할게. 어떤 프로그램을 찾으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로지타]확실하지 않아요... [알카이드]그럼 천천히 찾아볼까? 넌 소파에 앉아 있어. 하나씩 확인해 보자. 알카이드가 다이얼을 천천히 돌리자 음악 소리에 잡음이 섞여 들려왔다. 음악 소리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로지타]아니에요. 제가 찾는 프로그램은 사..
2024.06.27 -
2화. 이상한 화가
[로지타]프로그램이요? 제가 언제... 내가 입을 열자 남자는 내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조용해졌다. [알카이드]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군요. 남자는 갑자기 상기된 표정이 되었다. [???]그릴 리가요! 계속 그 프로그램을 듣고 있는데, 잘못 본 것 같다니요! 풍경 소리가 울리더니, 옆에 있는 음료 가게의 문이 열렸다. [주인 할머니]조세이아, 사람들이 겁먹잖아요. 주인으로 보이는 상냥한 얼굴의 할머니가 가게에서 나왔다. 감정 이 격해진 남자를 보고도 그녀는 전혀 놀라지 않고 가만히 그를 달랬다.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자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주인 할머니]일단 돌아가요, 어서요. 남자는 나와 주인 할머니를 몇 번이나 번갈아 봤지만, ..
2024.06.27 -
1화. 노랫소리
[블루 아일랜드] 이벤트 스토리와 이어집니다. 하루 종일 하던 스케치를 끝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다와 점점 가까위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힘껏 기지개를 켰다. 고개를 돌려보니, 알카이드가 몸을 숙이고 바닥에 흩어진 미술 재료를 하나씩 주우며 날 대신해 정리해주고 있었다. 조금 미안한 마음에 괜히 웃자, 알카이드도 씽긋 웃었다. [알카이드]하루 종일 과했잖아. 스케치 과제는 내가 대신 못 해주지만, 이런 사소한 건 도와줄 수 있어. [로지타]그림 그릴 때면 꼭 선배를 푸대접하게 되네요... [알카이드]그렇지 않어 난 기꺼이 네 곁에 이렇게 있고 싶어. 뭔가 말하려고 머뭇거리는데 그가 옆자리를 탁탁 두드렸다. [알카이드]아니면 이번에 나랑 같이 일몰 봐줄래?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
2024.06.27 -
10화. 영상통화(후일담)
[알카이드]로지타, 안소니 교수님에 대한 조사가 끝났어. 이제 학교에서 위험 세력은 사라졌으니 안심해도 돼. [로지타]절 건드리지 못했지만, 다른 학생들을 다치게 했다면 곤 란하게 됐을 거예요...[알카이드]이젠 안심하고 보러 와도 돼. 리비아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나도 속상했어. [로지타]그래도 요새 우리 자주 보고 있잖아요. 위험이 사라지기 전까진 날 지켜주겠다며, 등굣길이나 하굣길에도 선배가 함께해 주고 있으니까. 오히려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난 것 같아요... [알카이드]로지타, 혹시 나랑 같이 다니는 게 불편해? [로지타]싫은 게 아니라, 선배 공부하는 데 방해될까 봐 걱정돼서 그렇죠... [알카이드]로지타 너와 함께하는 시간인데 방해라니? 그렇게 걱정되면,너한테 다음 시험 ..
2024.06.24 -
9화. 장미 인생
한숨 푹 잔 뒤 알카이드와 약속을 잡았다. 저녁이 되고, 우린 별빛 장미 축제가 열리는 공원을 찾았다. '킹스보이' 연극의 공연 의상을 걸친 알카이드는 장우산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의 의상은 평소 스타일도 염두하고 디자인 한 터라, 어색하지 않고 알카이드를 더욱 분위기 있게 만들어주었다. [로지타]이렇게 입으니깐 꼭 신사같아요. [알카이드]'신사'라는 건 온화함, 뛰어난 재능, 차분함을 갖춘 사람을 뜻하지. 그렇게 봐주다니 기분 좋은걸. 나와 알카이드는 공원을 거닐었다. 눈부신 조명으로 만든 흰 장미의 물결이 숲과 별빛에 어우러지며 환상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난 알카이드의 손을 잡았다. 검은 정장에 장우산을 든 그는 날 에스코트해 주는 파트너이자, 수호자다. 알카이드는 날 공원 구석으로..
2024.06.24 -
8화.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나와 알카이드는 어둠 속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 알카이드를 따라 코너의 물품실로 발걸음을 옮긴 뒤 그 안에 숨어들었다. 그리곤 약속이나 한 듯 둘 다 입을 다물었다. 알카이드가 내게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알카이드]어둠 속엔 널 해치려는 사람도 있지만, 널 지켜주는 사람들도 있어. 지켜줄 사람들이 올 때까지 잘 숨어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 나는 알카이드에게 더는 묻지 않았다. 알카이드는 '나를 지켜주는 또 다른 사람들'을 알고 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그가 내 곁에 있어줘서 훨씬 마음이 놓였다. 두 시간이 지난 뒤, 경찰과 교수님들이 오셔서 나와 알카이드를 구해줬다. 교수님들은 우릴 진정시키곤 양호실에 가서 검사를 받도록 했다. 다친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우린 양호실을 나..
2024.06.24 -
7화. 변고
3월 13일은 〈킹스보이〉의 첫 공연일이다. 오늘 밤 공연이 끝나면 알카이드 선배와 함께 간단히 음식을 먹을 생각이다. 식당을 예약한 뒤 준비한 선물을 가방 안에 넣었다. 공연이 10시에 끝나니, 식당에서 12시까지 시간을 보내다가 화이트데이가 되면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알카이드에게 건네야지. 그 후엔 '별빛 장미' 축제에 가면 될 것 같다. 알카이드가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선물이 무사한지 가방 속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그때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 혈떡거리며 달려왔다. [여학생]안소니 교수님, 제니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무대에 못 오를 것 같아요! [안소니]무대에 못 오를 정도의 복통이라면 병원에 가봐야겠군. [여학생]네, 상태가 영 안 좋네요. 바로 택시를 불러..
2024.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