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R] 지켜야 하는 것 1화. 쌍잉어 손수건

2025. 3. 27. 14:57이벤트 스토리-2022/여경서

그날 밤,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융적의 정예 병사들이 진영 앞으로 다가왔다. 대군이 압경하여 연기가 자욱하고, 마치 광포한 파도가 둑을 뚫고 연문관으로 쏟아져 들어올 기세였다.  

 

이때 성문은 곧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붉은 바탕에 금빛 문양이 새겨진 대기가 바람에 나부꼈다. 선두에 선 한 사람과 한 마리가 날쌔게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긴 칼이 화살을 튕겨내며 높이 외쳤다.  

 

[알카이드]  

북두영은 들으라! 나를 따라 맞서 싸워라! 연문관을 반드시 사수하겠다!  

 

[북두영 장병들]

연문관을 반드시 사수하자!  

 

전쟁의 북소리가 울리고, 함성이 밀물처럼 일었다. 금빛이 구름을 뚫고 나와 칼 끝에 비치며 새벽의 여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

 

[군중]

좋~다!  

 

탁자의 목판이 쿵하고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야기가 막 끝나려는 참이었다. 군중은 환호하며 들썩였지만, 정작 나는 여기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알지 못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한 차객에게 다가가 물었다.  

 

[로지타]  

저기, 오늘 들은 이야기가 어떤 책의 어떤 대목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차객A]  

아가씨는 오래간만에 차관에 온 듯하군요? 방금 그 이야기는 책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얼마 전 북두영이 천 리를 달려 연문관을 구원하고, 대연과의 가장 통쾌한 승리를 거뒀다는 소식이 퍼지자, 상경의 이야기꾼들이 너도나도 새 이야기를 꾸몄지요. 이야기 속 주인공은 바로 그날 경량 기병을 이끌고 먼저 도착한 루 소장군이라오.  

 

[로지타]  

루 소장군?  

 

익숙한 호칭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차객은 내가 경성의 소식을 잘 모르는 줄 알고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차객A]  

맞아요. 루 소장군의 이름은 첸, 자는 요광이라 불리며, 전 평원후 루명의 외아들이자, 현 황제의 친명을 받은 북두영의 선봉장이랍니다.  

 

이 말을 들은 또 다른 차객이 말을 거들었다.  

 

[차객B]  

비록 명목상 선봉장이라지만, 실질적으로는 주력군을 이끌고 있지. 북두영의 전공을 돌아보면, 어느 전투에서 루 소장군이 빠진 적이 있었나? 내 생각에는 이번 대승으로 인해, 그가 금대에 올라 장군으로 봉해지는 날도 멀지 않았을 거야!  

 

[차객C]  

금대에 오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겠지요. 제가 듣기로는 황제께서 이미 그를 불러들여 현 여섯 번째 공주와 혼인을 약조했다고 합니다.  

 

[로지타]  

콜록, 콜록!  

 

나는 차를 마시다가 이 헛소문에 사레 들려 죽을 뻔했다.  

 

[차객A]  

소저, 괜찮습니까?  

 

간신히 숨을 고르며 나는 급히 손을 내저었다.  

 

[로지타]  

괜찮습니다… 다만 루 소장군이 변방에 있었는데 공주와 어떻게 혼인 얘기까지 나올 수 있었는지?  

 

[차객C]  

그야 간단하죠. ‘금풍옥로가 서로 만나는 순간, 인간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비할 바가 없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가씨, 제가 한 편 지어볼까요?  

 

혼인 이야기를 처음 꺼낸 차객이 부채를 펴며 장난스레 이야기꾼의 자세를 취했다.  

 

[차객C]  

루 요광이 상경으로 돌아오던 날, 공주께서 마침 거리의 찻집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계셨지요. 은빛 갑옷과 황금 안장을 두른 풍류 넘치는 젊은 장군을 보자 마음이 흔들려, 손에 쥔 수건을 던졌답니다.  

 

이 차관의 단골들은 이 진부하면서도 전형적인 장면에 모두들 피식 웃었다.  

 

[로지타]

……  

 

나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아래층에서 소란이 들려왔고, 누군가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차객B]  

어, 저거 북두영의 의장대 아니야?  

 

은빛 갑옷을 입은 장병들이 성문을 통과해 행진하고 있었다. 발걸음은 흐트러짐 없이 일정했고, 긴 깃발과 창끝의 붉은 술이 바람에 휘날리며 찬란한 빛을 뿜었다.  

 

북두영이 상경에 돌아온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려 골목 가장자리로 향했다. 그 전설 같은 무쌍의 군대의 자태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선두에 선 자를 보았을 때, 상경의 온 화려함이 한순간에 색을 잃어버렸다. 온몸을 감싼 풍모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붉은 색이 배경인 흰 옷을 입고, 옥 같은 손으로 고삐를 잡은 채 말에 앉아 있었다. 거리의 모든 빛이 그에게 쏟아져 그의 반쯤 묶인, 맑은 달빛 같은 긴 머리에 내려앉았다.  

 

그 온화한 빛이 그의 날카로운 기세를 감싸, 그가 전장을 누비는 장군이 아닌, 명문가의 귀공자처럼 보이게 했다. 오랜 세월 담금질된 칼날이 빛나는 칼집에 고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또다시 떠올라, 나는 기억 속 한 조각을 잡으려 애썼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 내 손에서 손수건이 날아가 장거리 한가운데로 흩날려 갔다.  

 

[로지타]

……!  

 

칼날의 번쩍임이 보이더니, 바람에 나부끼던 비단 조각이 칼등에 살짝 얹혀져 천천히 그의 손에 내려앉았다.  

젊은 장수는 잠시 놀란 듯 멈칫했다. 그의 얼굴에 스친 잠깐의 어색함이 사라지자, 그는 손수건을 접어 들고 거리의 한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카이드]  

이 물건을 떨어뜨린 소저는 어느 분이실지?  

 

[로지타]  

저…  

 

내가 입을 열자마자, 더 큰 목소리들이 앞다투어 터져 나왔다.  

 

[소녀A]  

제… 제 것입니다!  

 

[소녀B]  

무슨 소리예요, 제 거라니까요!  

 

[로지타]

……  

 

알카이드는 그 소녀들의 얼굴을 스치듯 살짝 본 뒤,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손수건은 그가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  

 

[알카이드]  

송구합니다. 물건의 주인은 신시 전에 평원후부로 오셔서 자수를 확인하면 돌려드리겠습니다.  

 

내 옆에서는 몇몇 아가씨들의 아쉬운 탄식 소리가 들렸다.

 

손수건은 본디 크게 귀한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황제께서 혼인을 염두에 두고 계신다"는 말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시내를 헤매다가 결국 평원후부 밖에 멈춰 서게 되었다. 더 정확히는 후부의 옆문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루씨 가문은 오랫동안 변경에 머물렀고, 경성에 있는 후부는 한동안 비어 있었다. 최근에야 알카이드의 귀경을 맞아 일부러 수리한 터였다. 물소리는 마치 샘처럼 흐르고, 푸른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멀리서 대문 쪽을 바라보아도 뜰에 가득한 온갖 축하 선물이 보였다. 심지어 놓을 곳이 부족해 문밖까지 이어져 있었다. 대문 앞에는 여러 관료들의 가마 또한 정차해 있었다. 명백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북두영의 귀경에 맞춰 알카이드의 군권과 권세를 잡기 위해 그에게 잘 보이려는 무리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오늘 루 소장군과의 만남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게 돌아서려다, 순간 사람과 부딪칠 뻔했다.  

 

[로지타]  

루...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그는 살짝 검지를 입술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알카이드]  

쉿.  

 

[로지타]  

...?  

 

나는 의아해하며 대문 앞의 손님들을 가리켰다. 그는 그들을 맞이하지 않으려는 건가?  

 

[알카이드]  

방금 황상께 뵙고 돌아오는 길이라 잠시만 한숨 돌리게 해줘요.  

 

[로지타]  

...루 소장군께서 상경하시자마자 사람들을 피하는 모습을 보이시면, 그들에게 미움을 사지 않으시겠습니까?  

 

[알카이드]  

그건 소저께서 이 일을 발설하느냐에 달렸겠죠.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알카이드]  

소저는 그들에게 말할 건가요?  

 

그 미소가 흔치 않은 옥빛 눈동자에 번지자, 바람이 연못을 스치듯 잔물결이 일렁였다.  

 

만약 내가 말하면? 나는 단지 손수건을 찾으러 왔을 뿐이다. 마음속의 두근거림을 감추려는 듯 나는 지지 않으려는 태도로 되물었다.  

 

[로지타]  

만약 제가 말하면, 루 소장군께선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미소 지으며 답했다.  

 

[알카이드]  

어쩔 수 없이 공주님께 비밀을 지켜달라고 간청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로지타]  

어떻게 그걸?!  

 

알카이드는 그가 보관하고 있던 그 손수건을 가볍게 꺼내 보였다.  

 

[알카이드]  

비록 신은 문외한이지만, 쌍면 촉수(蜀绣)가 귀한 것임은 압니다. 이렇게 정교하고 복잡한 것은 해마다 조정에 바치는 세공품뿐이죠. 그리고 궁에서 세공품을 사용할 수 있으며, 당신과 나이까지 대략 비슷한 이는 여섯째 공주님 외에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로지타 전하?  

 

내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희미하게 떠오르던 익숙한 감각이 전보다 더 또렷해졌다.  

 

[로지타]  

당신은...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어렴풋한 기대와 온기가 스며드는 걸 포착했다.  

 

[알카이드]  

전하께서는 어릴 저를... '요광 오라버니라고 부르곤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