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0. 14:45ㆍ이벤트 스토리-2024/비오는 낮과 맑은 밤 (화이트데이)
위연이 파일을 보냈을 때 나는 알카이드와 원예용 분사기 사용법을 살펴보고 있었다. 고용량 파일이었던지라 다운로드를 클릭한 후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눈 앞에있는 분사기에 집중했다.
[로지타]
선배가 갖고있는 기계는 제법 복잡하네요. 8단계 조절 기능이랑... 다 영어로 씌여있네...
나는 손잡이를 이리저리 돌리며 분사기의 구조를 살폈는데, 갑자기 물이 튀어나왔다. 수압에 순간 물총을 제어하지 못하고 팔이 이리저리 흔들리자, 알카이드가 내 손을 잡고 수압을 줄였다.
[알카이드]
장화를 신으라고 말한게 다행이네. 그게 아니었다면...
그의 말이 핸드폰 진동소리에 끊겼다. 그는 내게 전화를 받겠다는 제스쳐를 취하고 두어걸음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알카이드]
응, 받았는데 아직 못봤어.
전화벨의 주인공은 위연이었다. 알카이드에게 영상에 대한 피드백을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알카이드가 전화를 끊기만을 기다리며 손에 든 분사기를 만지작거렸다.
알카이드는 '내일 이야기하자' 라며 통화를 일축하고 내게 다가왔다.
[알카이드]
로지타...
쏴-- 물이 튀는 소리와 함께 알카이드의 머리 위로 물방울이 분수처럼 피어났고, 우리 둘은 제자리에 멈춰서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로지타]
어떻게 된 거죠..?
[알카이드]
아마도 정원 장치가 고장난 것 같아. 네가 온다고 해서 자동 분사 기능을 꺼뒀거든...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 같네.
알카이드의 머리카락과 옷이 물에 흥건히 젖었고, 물방울은 그의 머리카락 끝에서부터 턱을 따라 그의 셔츠 안으로 들어갔다.
[로지타]
괜찮아요. 며칠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잖아요. 머리를 말려드릴까요? 아니면 따뜻한 물에 목욕이라도 하실래요? 감기걸릴지도 모르잖아요.
쏴아-- 또 다른 물방을이 하늘에서 쏟아지더니 내 어깨를 잔뜩 적셨다.
[로지타]
...
알카이드는 처연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알카이드]
알려주려고 했는데... 자동분사장치는 360도 회전해.
나는 분사기를 들고 다음 대사를 내뱉었다.
[로지타]
거기까지야. 더 물러날 곳은 없어요.
물줄기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따뜻한 햇살 아래 칠색의 반호를 그린다.
[알카이드]
이런 분위기에서는 결전보다는 화해가 어울리지 않을까?
[로지타]
그것도 좋죠.
나는 알카이드의 손을 잡고 그의 품에 안겼다.
[알카이드]
로지타, 오래 전에 여우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 여우는 동료와 함께 무지개 끝에 있다는 보물을 찾아다녔지. 그들은 보물을 찾으면 부자가 될 수 있을 줄 알고 보물의 색도, 형태도 알지 못했지. 하지만 마침내 여우는 보물을 찾아냈어.
알카이드는 천천히 이야기했고, 그의 가슴으로부터 들려오는 심장 박동소리는 내 심장소리와 점점 같아지는 걸 느꼈다.
[알카이드]
...나도 찾아냈어.
-
화장실에서 나와 휴대폰을 확인하니 위연이 보낸 동영상이 다운로드 완료되었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눌러보니 영상의 컷이 아닌 나와 알카이드의 촬영 비하인드 컷이었다. 가볍게 살펴보는데, 내가 로비 의자에 앉아 자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깊게 잠든 건지. 알카이드는 옆에서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로지타]
선배, 계속 저를 보고계시던데. 그렇게 예뻤어요?
[알카이드]
응, 예뻐. 근데 왜 자꾸 화면 안에 있는 사람만 보고 있는 거야? 나는 여기 있는데.
...이젠 자기 자신한테까지 질투하는 거야? 나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알카이드가 내 손을 잡아끌 때까지 영상을 이리저리 살폈다.
촉촉하고 긴 키스가 마침내 끝났을 때, 나는 동화의 결말을 떠올렸다. 여우의 그의 동료는 비를 피하기 위해 서로 껴안고있다가 보물은 바로 옆에 있는 서로임을 깨달았다.
이제 서로에 눈동자에 비춰진 건 무지개가 아닌 서로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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