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결단

2024. 3. 24. 00:30에르세르 대륙(完)/전승의 장 (카이로스)

 내 예상이 맞았다. 내가 없는 곳에서 카이로스가 홀로 맞았을 마지막 순간이었다. 수면 거울로 알로라를 보고 있는 그의 푸른 눈에 참담한 빛이 어렸다.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낸 카이로스는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단풍잎 두 장... 내가 준 단풍잎들에다 마법을 걸어 여태까지 간직하고 있었구나. 카이로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내게 했던 약속이겠지. 
 
[카이로스]
통로가 개방된 지 제법 오래... 신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 이어진 양쪽 세계가 다 무너지기 전에 내가 나서야 한다. 강림 의식은 치르지 못하게 됐지만, 시공의 통로가 열렸으니 방법은 있다. 내가... 가겠다. 모든 것을 짊어지고, 내가 갈 것이다. 미련은 없다. 끝내 너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글쎄. 어쩌면... 이미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한 재 스쳐 지나갔을지도. 작별이다. 이름 모를 그대여. 
 
 카이로스의 로브가 날개처럼 활짝 필쳐졌다. 
 
[카이로스]
널 만날 때까지 살아남겠다는 약속은 못 지키게 됐지만, 모두를 살게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 

  카이로스는 오랜 세월 동안 몸 안에 봉인해두었던 힘을 개방하고 스스로 거대한 얼음 나비가 되었다.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빛이 사방을 물들였다. 그는 한때 괴물이 된 자신이 세상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카이로스는 괴물이 아니다. 그는 모두를 위해 끝까지 싸울 전사이자, 숭고한 의지의 성인(聖人)이다. 
 돌연 눈앞이 하얗게 밝아졌다. 그리고 발밑이 강하게 흔들렸다. 당장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듯 거대한 힘이 밀려들었다. 시공의 공명...! 막아야 해!

'에르세르 대륙(完) > 전승의 장 (카이로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D. 찬란한 미래  (0) 2024.03.24
22화. 고독한 영생  (0) 2024.03.24
20화. 희생  (0) 2024.03.24
19화. 역설  (0) 2024.03.24
18화. 눈보라  (0) 2024.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