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 찬란한 미래

2024. 3. 24. 00:31에르세르 대륙(完)/전승의 장 (카이로스)

[신비한 목소리]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인과도 자연스레 성립되었구나. 
 
또다. 또 그 목소리다. 정체가 뭐지? 대체 누구일까? 
 
[나]
당신은 누구죠? 제게 무슨 이야길 하고 싶은 건가요?
 
[신비한 목소리]
아직은 네가 알 때가 아니란다. 허나, 그 마법사와 함께한 이번 여정이 하나의 완벽한 고리로 완성되었다는 것만은 알려주마. 
 
하나의 완벽한 고리 ...라고? 이것이 수많은 선택지들 중에 맞는 답만을 골라 완성한 운명 이라는 건가? 내 세계와 에르세르 양쪽을 모두 구한, 완벽한 이야기라는 뜻? 양쪽 세계의 모두가 무사히 미래를 얻게 되었다. 카이로스만 제외하면. 
 

과거는 이제 역사가 되었단다. 그리고 네겐 무한한 가능성이 남아있지.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사방이 어두워졌다. 다시 눈을 떠보니 에르세르 대륙이었고, 월계절로부터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세상을 뒤덮은 눈은 사라지고 하늘도 푸른빛을 되찾았다. 황성의 광장에서 많은 소문을 접했다. 한 달 전 어느 날, 얼음 나비들이 갑자기 한데 모여 높이 날아올랐단다. 그날 이후로, 얼음 나비를 본 사람이 없다고. 그걸 듣는 순간, 가슴이 허물어졌다. 아파서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그 얼음 나비들을 카이로스가 데려간 것은 아무도 모르겠지. 혼자서 전부 짊어지겠다더니, 그는 정말로 다 짊어지고 가버렸다. 
 묵묵히 광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얼음 나비가 사라진 후 마법사들은 일제히 시름시름 앓아누웠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마력을 잃었다고 한다. 마탑은 급속도로 유명무실해진 모양이다. 
 
[여인]
마법사들은 전부 떠난 건가요? 
 
[젊은 마법사]
일부는 남아 있어요. 대마법사 예하께서 남긴 주문의 효력이 그대로이거든요. 예하의 뒤를 이으려는 이들도 있고요. 그분들이야말로 진짜 마법사라 부를 수 있죠. 알카이드 님께서 그들을 이끌고 있답니다. 
 
 알카이드는 카이로스의 에제자였다. 카이로스의 뒤를 그가 잇고 있었구나. 
 
-
 
 나는 홀린 듯 마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알카이드를 만났다.


 알카이드는 카이로스의 방대한 자료와 서책을 정리 중이었다. 나는 카이로스에게 일어난 일을 최대한 차분하게, 사실 그대로 전했다. 알카이드는 슬픔에 잠겨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알카이드에 의하면, 거대한 얼음 나비가 대륙의 얼음 나비를 전부 흡수해버리는 광경을 대부분의 신민들이 지켜보았다고 한다. 봄을 되찾은 사람들은 신의 기적이라며, 무릎을 꿇은 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알카이드와 로샤, 그리고 마탑의 사람들이 거대 얼음 나비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 만무했다. 
 
[알카이드]
황제 폐하와 저희 마법사들은 카이로스 예하와 함께 희생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예하께서 그 짐을 홀로 짊어지셨군요. 
 
 알카이드는 카이로스의 메모를 손으로 쓸며 단호히 덧붙였다. 
 
[알카이드]
신녀님, 제가 예하의 전기를 쓰겠습니다. 그분의 숭고한 희생을 대륙 역사에 길이 남길 것입니다. 예하 덕분에 살아남은 이 땅의 모두가 그분을 추모하고 칭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카이드는 에르세르를 떠나는 나를 배웅하러 나왔다. 카이로스가 없어도, 입구의 단풍나무는 그대로였다. 대마법사를 존경하고 따르던 젊은 마법사들이 부지런히 돌본 덕분이라고 했다. 겨울이 오면 저 잎들은 모두 떨어지겠지. 하지만, 괜찮다. 잎은 봄이면 또다시 자라나고 가을이면 고운 색으로 물들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 
 
[알카이드]
에르세르는 예하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알카이드는 내게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알카이드]
신녀님께도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신녀님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에르세르는 존재하지 않겠지요. 당신의 노고를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알카이드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알카이드는 카이로스의 힘이 남아 있는 마법구를 이용해 전송 마법진을 발동시켜주었다. 
 
[알카이드]
행운을 빕니다.
 
 푸른빛이 내 몸을 감쌌다. 그 순간,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단풍잎 한 장이 바람을 타고 팔락팔락 날아왔다. 나는 손을 뻗어 이파리를 살며시 붙잡았다. 그리고 소중히 손으로 감쌌다. 
 
-
 
 돌아온 곳은 세인트 셀터 학원이었다. 그 입구에서 우연히도... 카이로스 선배를 만났다.


 카이로스지만 카이로스가 아닌, 내 세계의 그가 내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카이로스]
무사히 돌아왔구나. 
 
[나]
으응, 덕분에 무사히 돌아왔어요. 
 
[카이로스]
개강일 맞취서 잘 왔어.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 
 
 아아, 개강이구나. 이곳도 마찬가지다. 모든 게 다 그대로이고, 언제나와 같은 일상이 유지 되고 있었다. 좋은 일이다. 아니, 좋은 일인가. 모르겠다. 삶은 강물처럼 호를 뿐이다. 거슬러 올라갈 순 없는 법. 바람에 날려온 벚꽃 잎이 카이로스 선배의 머리 위에 앉았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손바닥을 펴보니... 카이로스의 단풍잎이 바스라지고 있었다. 메마르고 거칠어진 단풍잎은 어찌해볼 도리도 없이 파삭파삭 부서졌다. 그렇게 추억은 야속한 바람에 실려 멀리멀리 흩어져버렸다. 
 

 나는 반드시 행복을 찾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이 바라는 내 미래니까.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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