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장 1화. 초봄의 소풍

2024. 2. 19. 19:37이벤트 스토리-2021/사계 사냥터

 눈을 떴을 땐, 물결처럼 청량한 옅은 금빛의 햇살이 커튼을 넘어 창가 바닥에 일렁이고 있었다. 뜨겁지 않은 공기에선 산뜻한 풀내음이 가득했다. 계절이 확연히 나눠지는 초봄의 아침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알카이드의 시합을 보러 가야 한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로지타]

..누구세요? 

 

[알카이드]

접니다. 주무시는 데 방해한 건 아니기를...

 

[로지타]

괜찮아요, 이미 일어나 있었거든요. 출발할 건가요? 

 

[알카이드]

함께 아침식사를 하려고 왔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분수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배가 고파졌다.

 

[로지타]

금방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

 

에르세르 대륙의 봄날. 길 양옆으로 어린 잔디가 보드랍게 자라나 있었고, 각양각색의 꽃송이가 산들산들 춤추고 있었다. 알카이드는 분수 앞에서 작은 라탄 바구니를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구니 안의 따끈하고 폭신한 빵 내음이 벌써부터 느껴졌다. 

 

[로지타]

밖에서 먹나요? 

 

[알카이드]

네. 날씨가 좋으니까요. 화덕에서 갓 구워낸 빵과 신선한 오렌지 주스, 구운 사과, 그리고... 

 

 그에게는 활도, 말도 없었다. 그가 가져온 것은 아침 식사가 담긴 묵직한 바구니 하나뿐이었다. 대회의 긴장감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였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음식을 얼른 먹고 싶었지만, 심판으로서의 본분은 잊지 않고 있었다. 

 

[로지타]

알카이드, 우리 진짜 이럴 시간 있는 거 맞아요? 사냥 대회는 이미 시작했는데...

 

[알카이드]

대회는 언제라도 시작할 수 있지만, 아침은 지금이 아니면 먹을 수 없으니까요. 

 

나는 단번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알카이드]

그럼 슬슬 출발할까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누군가가 오솔길에서 튀어나와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시종장]

폐하의 전언입니다. 

 

로샤의 곁에 있던 시종장이었다. 

 

[시종장]

이번 축하연의 식재료를 사냥하도록 명하셨습니다. 목록을 확인해주십시오. 

 

 나는 쪽지를 받아 든 알카이드에게로 다가가 쪽지의 내용을 함께 확인했다. 사슴 구이 20인분, 멧돼지 양넘구이 15인분... 뒷면까지 글자가 빽빽히 적혀 있었다. ...분명 알카이드의 참여 의지가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이런 방식으로 참여를 강제하는 거겠지. 알카이드 역시 그 의도를 읽은 듯, 공손히 쪽지를 품에 넣었다. 

 

[알카이드]

하달받은 임무,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걱정 마시라 전해주십시오. 

 

-

 

 잠시 이야기를 나눈 사이, 불어오는 바람에는 새벽녘의 찬 기운이 없고 따뜻함이 가득했다. 구석구석 피어난 꽃송이들을 보니 어느새 봄날이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로지타]

이제 어떡하죠? 그리 간단해 보이는 임무는 아닌 것 같은데...

 

 알카이드는 근심 걱정이라곤 전혀 없는 미소를 지으며 바구니를 들어 보일 뿐이었다 

 

[알카이드]

우선은 원래 계획대로 아침부터 먹죠. 

 

 우리는 황궁을 빠져 나온 뒤, 골목길을 지나 교외 사냥터 에 도착했다. 시냇가 근처 잔디밭에 자리를 잡자, 울창하게 자란 푸르른 나무가 눈에 띄었다. 

 

[알카이드]

여유 있으니 걱정 말고 천천히 드세요. 

 

 빵을 들어 와구와구 먹는 나를 본 알카이드가 웃으며 주스를 건네주었다. 식사를 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땅 위에 작은 동물들의 발자국이 희미하게 보였다. 봄과 함께 기운을 되찾은 토끼와 다람쥐의 발자국이었다. 이따금 하안빛과 잿빛의 그림자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풀숲은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로지타]

꼭 소풍 온 것 같네요. 

 

알카이드는 낮선 단어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로지타]

이렇게 밖에 나와 풍경도 보고, 도시락도 먹는 걸 소풍이라고 불러요. 

 

이내 알카이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알카이드]

저와 소풍을 오니 어떠신가요? 

 

 나는 그를 바라보며, 시도 때도 없이 위험에 쫓기던 지난 여정을 떠올렸다. 예전 우리는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좀처럼 즐기지 못했다. 

 

[로지타]

좋아요. 음식도 맛있고, 풍경도 아름답지만... 제일 중요한 건, 알카이드와 같이 소풍 을 즐기는 게 너무 좋다는 거죠. 

 

 이 계절에 현혹된 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풀은 노랗게 마르고, 꽃은 힘 없이 시들어 버린다는 걸 잊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와 내가 함께 있는 곳엔 따사로운 봄볕만이 가득했다. 알카이드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알카이드]

이 봄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로지타]

나도 마찬가지예요, 알카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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