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24. 2. 19. 19:36이벤트 스토리-2021/사계 사냥터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

에르세르의 사냥대회가 시작되었으니 참가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누구지?

 

[로샤]

카이로스 경, 우리의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귀빈께서 드디어 깨어나셨군. 

 

[카이로스]

폐하, 그렇게 붙어 계시면 놀라지 않겠습니까. 

 

익숙한 회의장의 모습과 익숙한 목소리. 어째서 또 여기로 돌아온 거지?! 

 

[로샤]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이군. 카이로스 경, 설명해주시게. 

 

[카이로스]

폐하께서 직접 하시는 게 낫겠습니다.

 

[로샤]

하하, 카이로스 경은 수줍음이 참 많다니까. 언젠가 경에게도 좋아하는 상대가 생길지, 만약 생긴다면 어떻게 대할지 궁금하단 말이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에르세르 대륙에 돌아와, 또다시 로샤와 카이로스를 마주하다니. 그러나 이는 내가 지나온 그 어떤 과거보다도 따스한 시작이었다. 곧 두려움과 망설임이 엄습했다. 이건 분명 내 의지로 선택한 여정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된 거지? 

 

[???]

따뜻한 차부터 한 잔 하시겠습니까? 조금 긴장하신 것 같군요.

 

고개를 들자, 낯익은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나]

알카이드...?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그는 조금 전 내 이름을 불렀다. 

 

[알카이드]

이름을 불러서 기분이 상하셨나요? 

 

[나]

난 알카이드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게 좋아요. 그런데...왜 다들 여기 모여 있는 거죠?

 

[알카이드]

폐하께서 설명해주실 겁니다. 

 

[나]

저요? 저랑 관련된 일인가요? 

 

[로샤]

그래. 올해의 대륙 사냥대회에서 그대가 중요한 역할을 맡아줘야 하거든.

 

바로 그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검은 머리의 귀족 소년과 그의 시종이 문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로샤]

또 지각이군, 아인. 

 

[아인]

시시한 장난, 아, 실례, 사냥대회를 여신다고요. 

 

[알카이드]

전하, 이번 대회는 조금 다를 테니 일단 들어보시지요. 

 

조용히 날 훑어보던 아인은 곧 날카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인]

좋습니다. 그래서요? 

 

로샤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로샤]

올해의 사냥대회는 우리 사랑스러운 귀빈께서 심판을 맡아주실 예정이야. 매해 심판을 했던 카이로스 경은 올해 시합에 직접 참가하기로 했지. 

 

[카이로스]

폐하, 금시초문입니다.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로샤]

카이로스 경, 기대하고 있겠네. 호음, 어디 보자. 진영을 나누어 대항전을 하는 것도 괜찮겠군. 

 

[아인]

저는 단독으로 움직이겠습니다. 

 

순간, 분위기가 활시위처럼 팽팽해졌다. 

 

[나]

제가 정확히 뭘 해야 하는 건지 알려주실 분 계신가요? 

 

그러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그 순간, 돌연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 로샤의 눈빛을 보자 후회가 밀려들었다. 

 

[로샤]

이런. 주인공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군. 사냥대회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진행될 것이다. 가장 많은 짐승을 사냥한 자에게 승리가 돌아가지. 이전과의 차이점은 각기 다른 계절을 골라 사냥할 수 있다는 것. 어때? 재미있지 않겠어? 여기서 그대는 참가자들과 동행해 심판 역할을 해주면 돼. 참가자를 도와주는 것도 허용하겠다. 얼마든지 그대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좋아. 이번 대회는 그대와 함께 대륙의 사계절을 즐겨보자는 취지에서 연 것이니, 그저 즐겁기만 하면 된다. 모두 알아들었겠지? 

 

[아인]

굳이 대회 핑계가 아니더라도 '고귀하신 어느 한 분'께선 충분히 즐기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로샤]

다음 말은 신중히 선택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아인. 

 

[알카이드]

최선을 다해 임하겠습니다, 폐하. 

 

[카이로스]

알겠습니다. 

 

[나]

시합은 언제 시작되나요? 

 

우리의 심판께서는 대회를 고대하는 모양이군. 뜸 들일 것 없이 바로 시작하지! 

 

[나]

그렇다는 건, 내일 바로 시작된다는 건가요? 

 

[로샤]

그래, 그대와 함께할 시간이 무척 기대되는군. 카이로스 경. 전임 심판으로서 특별히 이를 말은 없나? 

 

[카이로스]

없습니다. 그저...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뿐. 

 

 평소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마법사를 쳐다봤다. 고요한 호수와도 같은 그의 눈동자에는 내 마음을 진정시기는 힘이 있었다. 

 

-

 

 그때와 같은 방이었지만, 이번엔 적도, 얼음 나비의 위협도, 숨 막힐 듯 조여오는 감시도 없었다. 예의를 갖춘 대우를 받는 건 물론, 사냥 대회의 심판까지 맡게 되었다. 침대에서 내려온 나는 창가로 걸어가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창밖엔 별 한 조각 찾아볼 수 없는 칠흑 같은 밤이 필쳐져 있었다. 정원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나는 생각을 멈췄다. 이처럼 다툼 없고 모두가 평안한 에르세르 대륙을 얼마나 바라왔던가. 그토록 바라던 광경을 눈앞에 두었으니, 쓸데없는 의심보다는 이 평안을 마음껏 누리는 편이 좋겠지. 내일이면 사냥 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밤이 지나면, 이 대륙엔 어떤 아침이 찾아올까? 

 

이내 졸음이 쏟아지더니, 곧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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