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2024. 2. 19. 16:02이벤트 스토리-2020/프린세스 데이 (공주제)

 프린세스데이가 끝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가끔 그날의 축제를 얘기하는 대화가 길거리에서 들려왔다. 그날을 얘기할 때면, 소녀들은 항상 달콤한 마침표를 찍듯 끝에 가벼운 단성을 토해냈다. 특별한 포스터가 또 붙기를 바라는 마음에 수시로 게시판을 찾아가는 소녀들도 적지 않았다. 

 일찍 일어난 나는 화실에서 스케치를 연습할 생각이었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화실에는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뜻밖에도 루카스였다. 

 

[루카스]

안녕.

 

[나]

선배가 여긴 어떻게...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그가 미술학과의 조교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

조교님, 안녕하세요! 

 

루카스는 웃으면서 나에게 손짓했다. 

 

[루카스]

이쪽에 자리 있어. 

 

 내가 조금 먼 곳에 자리를 잡고 앉자 루카스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고, 나는 그에게 해명했다. 

 

[나]

전 이 자리가 좋아요.

 

[루카스]

아아, 알겠다. 그 자리에선 창 밖이 보이지? 

 

놀란 내 표정에 루카스가 눈웃음을 지었다. 

 

[루카스]

학부 시절엔 나도 그 자리를 좋아했어. 오랜만에 왔는데도... 여긴 여전히 긴장돼. 

 

[나]

카이로스 선배가 루카스 선배 일을 잠깐 얘기했었죠. 그때 선배는 왜 학교를 떠난 거예요? 

 

[루카스]

궁금해? 

 

[나]

네. 사실 여기 와서 선배의 '들판'이라는 작품을 봤거든요. 궁금했어요.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루카스의 얼굴에 그리움이 번졌다. 

 

[루카스]

정말 오래전에 그린 그림이지.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다들 그렇겠지만,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한계가 느껴져. 더는 좋은 작품을 그려낼 수 없을 거라는 불안에 짓눌리지. 

 

[나]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루카스]

선택지는 둘뿐이야. 한계를 받아들일 것인가, 뛰어넘을 것인가. 

 

[나]

선배는 이미 뛰어넘은 것 같은데요? 

 

[루카스]

열정을 되살리기 위해선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하더군. 

 

[나]

그럼 이번 프린세스데이 축제가...

 

학생들에게 청춘의 열정을 되찾게 하는 것' 같은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루카스]

에이, 그건 그냥 재밌게 논 거고! 

 

[나]

......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앞으로의 미술학과 수업이 굉장히 재미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

선배 그림 좀 보여주세요. 개성 있으면서도 찬란한 그 작품들이 어떻게 선배의 손에서 탄생하게 된 건지 알고 싶어요. 

 

[루카스]

얼마든지 보여드리죠. 

 이젤을 맞추고 종이를 고정한 뒤, 형태를 잡고 선을 그으며 색을 입힌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루카스는 바깥세상을 전부 잊은 듯했다. 그는 자신이 장조한 세계에 빠져, 그 세계의 색과 경계를 세워나갔다. 그 과정을 보던 내 머릿속에 그 그림 이 떠올랐다. 그는 마치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 처럼, 갇혀 있는 것이 아닌 길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자극을 받은 나는 절반 가까이 그린 스케치를 치우고 새 종이를 한 장 꺼냈다. 

 

바람은 커튼을 스치고, 붓은 종이에 닿는다. 우연히 만난 우리는 이곳에서 소리와 장면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창작자의 뒤로 찬란함과 자유가 영원히 뒤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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