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2화

2024. 2. 19. 16:01이벤트 스토리-2020/프린세스 데이 (공주제)

 화려한 옷차림의 소녀들은 모두 여린 꽃처럼 저마다 고귀함, 우아함, 세런됨, 도도함을 뽐내고 있었다. 반짝이는 액세서리들은 소녀들의 눈에 담긴 순수한 마음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소녀들이 입은 드레스 자락은 겹겹이 쌓인 저녁노을을 닮았지만, 그들의 미소는 그보다 더욱 매력적이었다.  맑은 꽃향기로 가득 찬 이곳엔 달콤한 버터 향도 연하게 섞여 있었다. 
 
[아인]
더 필요하신 게 있나요, 공주...님.

  평소 피아노 소리를 벗삼으며 도도한 매력을 풍기던 그는 지금 달콤한 케이크를 손에 든 채 사람을 기쁘게 하는 눈빛을하고있었다. 신기하게도 오늘 모든 것이 미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다양한 과일과 부드러운 크림, 퐁신한 케이크, 달콤쌉쌀한초콜릿까지... 후각에 이어 미각도 함께 뒤따르며 행복에 가득 찬 즐거움을 불러 일으켰다. 
 
[나]
안 바쁘시면 케이크 한 조각만 주싵래요? 
 
 아인은 , 나이프로 한 조각 잘라 접시에 올려주었다. 피아노를 칠 때처럼 차분해 보였다.
 
[아인]
원하는 게 있거든 부담없이 말씀하시죠. 
 
[여학생 1]
저... 저도 한 조각 주세요! 
 
 접대를 받는 내 모습에 시종일관 머뭇거리던 여학생들이 일제히 다가와 아인에게 요청했다. 소녀들은 불안한 듯 그를 보며 그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생각하는 듯했다.
 
[아인]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여학생 2]
네! 천천히 하세요!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달콤한 케이크가 입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자, 햇살이 내게 쏟아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자리를 떠나 홀을 지나가려는데, 사람들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소녀들은 어딘가를 에워싸고 조용히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 틈으로... 로샤가 보였다.

햇빛 속에 앉아 있는 남자의 머리 색이 더욱 시선을 끌었다. 그의 앞에 놓인 테이블은 꽃으로 가득했고, 위에 걸린 풀잎이 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뭔가를 묻자, 로샤는 매력적인 미소를 머금고 나직이 답했다.
 
[여학생들]
뭐래 뭐래??
 
 소녀들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지자, 그 소녀는 수줍어하면서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치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비밀이라도 생긴 듯했다. 
 
[로샤]
쉿...
 
 로샤가 손가락을 입가에 갖다 대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모두 암묵적으로 이날 하루는 조용히 평화를 지키기로 약속한 듯했다. 
 
[로샤]
아, 어서 와.
 
 그가 부른건 나였다. 나는 소녀들이 터준 길을 지나 그의 앞에 앉았다. 그 내게 따라준 차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하루의 피로를 달래주었다. 그가 건넨 과일을 입에 넣자, 신선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내게 새로운 기분을 선사했다. 나는 그가 하는 것을 지켜봤다. 시간이 천천히 찻주전자와 탁자, 풀잎을 스쳐간다. 마치 햇살 가득한 나른한 오후를 그와 나 단둘이 보내는 것만 같았다. 차를 다 마신 뒤, 나는 앞에 소녀가 그랬듯 자리를 뜨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나]
나한테도 무슨 말을 해줄 건가요? 
 
 나는 목소리를 낮춰 조용히 그에게 물었다. 마음속에서 호기심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로샤]
오랜만에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 전부 네 덕분이야. 
 
그의 목소리는 더 낮고, 더 다정해졌다. 
 
[로샤]
내 눈은 틀리지 않았지. 넌 역시 최고야. 
 
 로샤의 말은 선물이자 축복이었다. 프린세스 데이가 1분 1초 지날 때마다, 즐거움을 만드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라는 걸 깊이 깨달았다. 나의 프린세스 데이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으니, 남들보다 운이 좋은 모양이다. 
 
 홀 옆쪽으로 금속과 얼음이 부딪치며 내는 시원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바이올렛 불빛이 읽혀들며 밝고 탁 트인 공간에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냈다. 마치 화려한 궁전 속에 만들어진 정교한 밀실 같았다. 알카이드가 코발트블루 스타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은 소녀들에게 정성스레 만든 음료를 건넸다.

 누구도 그가 초보라는 걸 모를 것이다. 능숙한 그의 움직임은 사람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가져다줬다. 소녀들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느꼈을 기분을 그들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알카이드가 코발트블루 스타를 건네자, 누구도 그 신비한 밤하늘과 그의 초대를 거절하지 못했다. 소녀들은 열대 우림을, 별들의 조각을, 차가운 달빛을 한 모금씩 음미했다. 취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눈 속엔 몽롱한 물기가 어렸고, 뺨은 붉게 물들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나와 알카이드의 시선이 마주치자, 우리는 서로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알카이드]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
코발트블루 스타로 부탁할게요 
 
 그는 내게 또 다른 밤하늘을 따라주었다. 잔을 건네주던 그는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알카이드]
알려줘요, 당신의 시선을 내게만 붙잡아둘 수 있는 방법을. 
 
[나]
...알카이드 선배? 
 
 그는 자신이 한 말에 사과라도 하듯 옅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코발트블루 스타를 내게 건넸다. 
 
[알카이드]
방금한 말은 잊어버려요, 공주님. 오늘만큼은 공주님이 바라는 대로 보내세요.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며, 작은 별들이 몸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곳에서 무언가가 반짝이며 빛을 발했다. 
 

이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노을이 계단에 드리우며 축제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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