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9. 17:25ㆍ신운기원/경칩 편 (알카이드)
신운기원- 경칩편
길을 잃은 이는 왜 자신의 길을 관철하는가?
기억은 집착을 갖고, 그 갈증은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러니 그 갈망을 버려라.
과거를 버림으로서 비로소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으리.
사방이 기괴한 고요로 가득찬 거리를 걷는다. 주위를 둘러보자, 시선이 닿는 곳마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이 푸른 빛에 반사되어 냉랭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무에서 오는 것이 아닌, 군중들의 무관심에서 오는 고요함은 소름끼칠 정도였다. 내 주위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마치 저마다 정해진 궤적이 있는 듯 소리없이 질서정연하게 걸어갔고, 나는 그 사이에 서 눈앞에있는 마천루를 바라보았다. 그 곳으로 한걸음씩 발을 내딛었다.
로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차가운 기계음이 윙윙 울리기 시작했다.
[기계음]
해석 진행률. 90퍼센트.
나는 뒤돌아 소리의 근원을 바라보았다.
얽히고 섥힌 파이프라인과 기계들에 눌린 한 청년의 얼굴에 반사된 불빛이 마치 칼날처럼 그의 피부를 베었다. 알 수 없는 힘이 내 심장을 잔뜩 쥐어매는 듯 해 나는 그만 그의 이름을 외치고 말았다.
[로지타]
알카이드...!
그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대체 무엇이 그를 저렇게 억죄는 걸까? 나는 비틀거리면서도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달려갔다. 그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고, 안도감이 든 듯 그는 가볍게 웃어보였다.
[알카이드]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스카이넷의 권능을 통제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속에 밀어넣었죠. 이젠 제 차례가 된 것도 당연한 이치.
[???]
당신을 파괴하고 싶지 않았지만. ...당신에겐 모든 권리가 있습니다. 해석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알카이드]
거절하겠습니다.
말이 떨어지는 순간, 멈춰있던 로봇팔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날카로운 끝이 그의 손목으로부터 이어진 회로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알카이드]
......
[로지타]
안돼--!!!
내 외침은 공허 속으로 떨어졌고, 단 하나의 파장도 일으키지 못했다. 로봇팔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고, 불꽃은 그의 피부에서부터 튀어오르며 타오르는 듯한 자국을 남겼다.
[기계음]
해석 진행률. 95퍼센트.
[???]
반항의 결과는 언제나 같다는 걸 명심해.
고통으로 더욱 창백해진 그의 얼굴엔 결연한 평온함이 떠올랐다.
[알카이드]
이번에도, 너를 실망시키고 말았네. 내 의식 속 비밀을 원한다면, 이런 기계에 의지해서는 안되는데. 아무리 내 소유였던 것이라지만.
[기계음]
해석 진행률. 95퍼센트.
그 기계음과 함께 작동 중인 모든 기계가 동시에 경보음을 울린다. 적색과 청색 빛이 정신없이 깜박이고, 네트워크 통신음이 세밀하게 울려퍼지며, 어떤 힘을 억누르는 듯 불안함이 가득하다.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알카이드]
로지타...
위험한 직감이 온몸을 휘감고,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로지타]
싫어요... 알카이드, 싫어....
[알카이드]
잘 있어.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마치 파도처럼 뜨겁게 나를 휘감는다. 눈부신 하얀 빛이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광경을 집어삼키고, 모든걸 휩쓸어버린 폭발음이 내 청각을 마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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